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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진 Aug 12. 2024

기억력과 인성

학부시절에 생리학을 배웠었는데,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치과임상보다는 기초의학인 생리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한번 마음이 꽂히면 몰두하는 타입입니다. 요령 같은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알아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생리학에 재미가 붙으니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면 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도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한 챕터를 송두리째 암기해 버렸습니다.


중간고사가 다가왔습니다.

당시의 시험은, 아무것도 인쇄가 안된 A3 용지를 두 장 정도 나누어 주고, 교수님은 칠판에 시험문제를 적으시는 방식이었습니다. 


여섯 문제가 나왔는데, 그중 한 문제가 내가 완전히 암기했던 챕터였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들어 있던 챕터를 그대로 옮기기 시작을 했습니다.

한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한 문제에 답을 쓰느라고 나머지 다섯 문제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만큼 정확하게 교과서를 암기했으니, A+ 주시겠지"라는 기대를 했지요.

그런데, 재시험을 주시더군요.

이렇게 요령이 없이 공부를 했습니다. 골고루 공부를 해야 하는데 편식을 한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완전히 암기했던 내용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교과서에 어떻게 인쇄가 되어 있었는지 정도는 기억이 났지만, 내용은 거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뇌에 관한 공부를 시작


우리들이 경험하는 두려움이나 걱정 등등은, 뇌의 변연계라고 불리는 구조물의 작용 때문에 일어납니다.

두려움이 일어나면 그것을 잘 관리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중요한 데, 스트레스로 가득 찬 현대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뇌생리학을 공부해 보고자 책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뇌의 구조, 뇌세포의 구조, 시냅스 등등의 공부를 시작했는데, 하도 오랜만이라서 다소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용어등이 아주 낯설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읽어나갈 수기 있어서, 노트에 뇌의 그림도 그리고, 내용을 요약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해 놓고, 바쁜 일에 쫓기다 보니, 3주간은 그 책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 노트를 꺼내 놓고 다시 시작을 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기억에서 많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변하기 어려운 인성


좋은 책을 읽으면 감동이 가슴에 차오르는 일이 많습니다.

그 감동은 계속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그리고 읽었던 내용 가운데 자신에게 적용해서 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마음에 새겨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에서 사라지고,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생각보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 선배님이시던 분이 윤리 교사로서 수업을 해 주셨습니다.

첫 수업 내용이 조금 기억납니다. 


삼강오륜이었는데,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을 배웠던 기억입니다.

신기하게도 수십 년 전에 배우고, 긴 세월을 한 번도 기억해 낸 적이 없는데

군신유의만 빼놓고는 모두 기억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이 첫 수업시간에 저희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 인성이 계속 변할 것 같지? 지금까지는 계속 변해 왔겠지만,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 동기들을 만나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인성이 변하지 않는다."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계속 성장하는데 변하지 않는다니, 선생님도 참......


그런데 오랜만에 동기들을 만나면 놀라는 것은, 얼굴은 나이가 들어서 변했지만, 말하는 투나 내용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개인의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선생님의 기억이 났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나중에 동기들 만났을 때 실망하지 말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일까?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우리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일관된 인성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초등학교 6년간, 중학교 고등학교 각각 3년간, 한 울타리 안에서 일관된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는 그런 교육은 없습니다.

스스로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을 하면서 공부는 하지만, 한 울타리 안의 인성을 함양하는 교육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긱 개인이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사람은 교육이 없으면 전혀 발전을 못합니다. 정말로 변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헤르만 어빙하우스(1850~1909)의 망각의 곡선 생각이 났습니다.

100여 년 전의 그의 연구에 의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반복학습을 하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말씀에서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배우고 자주 익히면 즐겁다.

왜 즐거울까.

반복학습한 것이 자기의 것이 되기 때문에 즐겁다는 의미입니다.

기술도 늘었지만, 반복학습이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경험으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는 뜻인 것이죠.


책의 한 챕터를 달달 외우는 것도 즐거웠지만,

기억되었던 것이 사라져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당시에 재시험을 주지 않으셨다면 혹시라도 그 밑으로 들어가서 생리학을 전공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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