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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 Mar 10. 2024

3중일기-친구 결혼식 축사 준비와 이병헌

축사를 준비하며 울지 않으려 내가 했던 것

많은 일들이 예측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다가와 있다. 

갑자기 날아든 친구의 결혼 소식도 그렇다.


아주 오랜만에 온 친구의 연락에서 나는 이미 친구가 어쩌면 결혼이란 걸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했다. 

역시나 이번 예상은 맞았다. 


친구에게서 짧게나마 들은 이야기로 친구가 최근에 만난 남자친구가 예전에 만나던 분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결혼하면 축사를 해주겠다는 건 내가 친구에게 했던 약속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축사를 해줄시 넌지시 물었더니 친구는 내가 축사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축사를 준비할 시간이 두달 정도가 있었지만, 결혼식 일주일 전에야 완성했다.

게을러서 데드라인이 임박할 때까지 쓰지 못한 것도 있지만, 사실 축사를 쓸 수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축사를 쓰려고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다음에 써야지 하다보니 시간이 지나 버렸다.


친구와는 17살 때부터 친구였다. 지금까지 산 인생의 반 이상을 친구였다.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연이 닿았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의지했지만 나를 져버린 사람도 있었고 나 역시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을 스쳐오면서 지금도 친구로 남아있다는 건 내게는 의미가 컸다.

기억은 이미 많이 휘발되었지만 오랜 시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사를 잘 끝내고 싶었다. 축사를 읽다가 울고 싶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보니 다른 분들은 축사를 울면서도 마치시던데 나는 우는 순간 끝이다 싶었다.

평상시에 감정 스위치를 닫고 살다보니 눈물이 나면 나는 눈물 샘이 아니라 눈물'댐'이 개방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클래스101에서 이병헌의 연기 강의를 봤다.

울지 않고 축사를 해내려면 상황에 대한 내 과몰입을 걷어내야 했다.

친구를 이제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에 잠겨서 축사를 하면 울겠구나 생각했다.

그래, 축사 전문가인척 연기해야겠다. 

여러 결혼식을 다니며 축사하는 사람처럼 연기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의 결혼식 당일 축사를 하며 나는 과연 울었을까 안울었을까

다행히도 나는 무사히 축사를 마쳤다. 

물론 축사전문가처럼 읽지는 못했지만, 눈물 흘리지 않고 다 소화해냈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감정이 흔들리는 약간의 위기는 있었지만 읽어보는 연습으로 그전에 이미 많이 울었던 것+이병헌의 연기강의 덕에 울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다 읽고나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마지막에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는데, 무대(?)에서 내려와서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

많이 읽어서 입에 붙게 만드는 게 유튜브에서 봤던 축사 팁이었는데 정말 효과적인 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누군가의 축사를 해주는 경험은 나도 처음이었다. 

귀한 경험이어서 오랫동안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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