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역 Feb 17. 2024

3중일기-미대입시 실패 7년 후, 그림으로 돌아온 이유

무엇이 나를 그림으로 돌아오게 하는 걸까

이렇게 하다간 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3 겨울방학, 자는 시간 빼고 미술학원에서 파스텔로 도화지를 하루종일 문질렀다. 마지막엔 블랙 파스텔을 써서 그림을 마무리했기 때문에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늘 손이 까맸다. 파스텔에서 기름이 묻은 거라 비누로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집에 도착해서도 손이 까맸다. 집에 가서 콧속을 닦으면 콧속에서 검은 파스텔 가루가 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다음 해 1월, 나는 가,나,다 군이라는 세번의 기회를 받았지만 미대입시에 낙방했다. 내 예비번호는 미대 특성상 합격까지 택도 없었다. 그냥 예의상 준 듯한 nn번대 번호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나오면서도 '잘 그렸다', '해냈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후회 가득한 그림들이었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처참했던 것 같다.


미술학원에서는 정해진 시간동안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했다. 불행히도 주제를 받으면 내 뇌는 정지했다.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생각을 그림으로 옮겨오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시간이 끝나면 OMR답안지를 걷듯이 다같이 앞벽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걸어놓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야말로 그 시간은 나에게는 '공개처형'이었다. 내가 봐도 내 그림은 정말 한없이 부족했다. 가까이서 볼 때보다 멀리서 볼때 내 그림은 더 초라했다. 나도 다른 데 있을 땐 그림 잘 그린단 소리 듣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림을 이렇게까지 못그리는 구나. 살면서 그나마 제일 잘 하는 게 그림 그리는 거여서 특기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잘 그린 순으로 줄세우면 내가 뒤에 서야 되는구나... 계획대로 완성한 친구들에겐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을테지만 나에게는 자괴감이 매일 리필되는 시간이었다. 


어느날 같은 반 입시생들 사이에서 내 그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기역이 그림봐. 귀신 그렸어."


주제 중에 '밤 11시'였나 아무튼 내가 느끼기에는 공포가 연상되는 키워드가 있었다. 정말 하다하다 도무지 안떠올라서 귀신을 그렸던 거였다. 아마 그날 같은 반 사람들은 미미했던 내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낙방했다는 사실을 미술학원에 알리고 나서 재수를 하는 게 확정된 어느 주말이었다.

"기역아 당장 지금 학원으로 와. 너 1년 더 하면 내가 만들어줄 수 있다. 너 가능성 있어."

재수를 해야했을 때 갑자기 토요일에 미술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러나 재수를 또 미대입시를 하기엔 그 당시 내가 알기론 집안 형편상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입시미술로 심사위원 눈에 드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문과로 돌아오게 되었다. 대학교 전공도 미술 계통과 관계 없는 학과에 진학했다. 미술을 아예 접겠다는 생각이었다.

출처: https://unsplash.com/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나는 인생에서 그림을 접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도 그림을 그린다. 대학교 때는 아예 잊고 지내다가 졸업하고 나서부터 그림을 그렸다. 다른 사람이 던져준 주제엔 할 말을 잃고 손이 꽁꽁 묶였던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기에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한다. 입시미술 때완 다르게 그림 주제는 문득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그래서 머리가 터지게 고민하지 않아도 그릴 수가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패턴대로 그려내야 하는 그림은 내게 너무 고통이었지만 아무런 제약도 없어진 지금 나는 마음껏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린다. 이젠 귀신을 그려도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이젠 내가 귀신을 그리고 싶지 않다.)


그림을 접었던 적도 있었다. 더이상 그릴 수 있는 게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뭣도 아니면서 아티스트 병에 걸렸던 것 같다. 그냥 세상의 여느 일들이 그렇듯 좋든 싫든 계속 해나가야하는 건데 누가 봐주는 것도 아닌데 큰 의미가 있나 싶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던 게 컸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니 애초에 누가 나한테 그림 그리라고 시킨 사람이 있었나?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리기 시작한 거잖아. 내가 좋아서 하는 활동이고 그래서 기꺼이 하는 것이란 걸 새삼 떠올리고 다시 돌아왔다. 


인생도처유상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언제나 나를 압도하는 대단한 실력자들을 볼 수 있다. 이제는 함께 앞벽에 그림을 걸지는 않지만 미술학원에서 보다 지금은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압도적인 좋아요와 팔로워수 차이가 우리의 실력 차이를 보여주는 듯 해서 더 기가 꺾인다. 아직도 나로 하여금 나는 이거 밖에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고수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느낀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기 싫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그들을 압도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기 때문이다. 그림은 누가 더 잘그린건지 줄 세울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고 싶은 마음은 줄을 못 세운다.


나는 그저 묵묵히 나의 그림을 그린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알아주는 몇몇의 지지를 받으며 창작의 힘을 받는다. 좋아요를 받지 못할 때 그렇게 못 그렸나? 많이 형편없나?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판매 플랫폼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최근에서야 용기를 내 일러스트 외주 서비스를 시작했다. 어딘가에서는 그래도 나를 중수 또는 고수로 봐주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은 저조하지만 다행히 가끔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주기만을 기다렸지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으면 내 발걸음부터 먼저 옮기는 게 시작이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나는 그린다. 좋아요가 없든 그게 몇개든 계속 내 그림을 그린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새기며 2015년부터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3중일기-"몇 살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