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또는 에세이 #19
짧은 만남에 매번 깊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지인이 있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 지인이 무심코 남기는 단어와 언변은 그 깊이가 굉장히 깊고 본인만의 색깔이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그분은 내가 글을 쓰는 일을 매번 응원해 주시면서도, 글쓰기는 ‘자신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레 혀를 내두르곤 했다. 그래서 한 번은 누가 되지 않게 조심스레 용기 내 글을 한 번 써 보시라고 권했다. 지인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으신 것처럼 놀라더니, 자신의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되물었다.
가장 먼저, 당신은 정직하다
누구나 실수하며, 누구나 초심자의 시절을 겪는다. 살다 보면 알게 되지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 인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 제대로 알지 못해도 살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모르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는 것부터가, 내 생각을 의심하고 반성하며 사고하는 일이 시작이다. 글쓰기는 결국 자신과 이야기하는 가장 가까운 방법이니까.
그리고, 당신의 글과 말엔 특유의 느낌이 있다
특히, 문학적인 작품을 쓸 때 필요한 능력이다. 이것을 갖춘 사람이면 꿀과 향을 쫓아 나비와 벌이 날아드는 활짝 핀 꽃처럼 어디를 가나 고유한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진지하다
우리는 요즘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호흡이 빠르고 메시지가 단순한, 일명 숏폼(Short-form) 콘텐츠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대상을 보고 사고하는 능력과 그를 정리해 서술하는 능력은 ‘왜 이렇게 진지해?(Why So Serious?)’는 어떤 영화의 대사처럼 폄훼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혜성같이 등장한 AI 기술은 마치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답을 얻을 수 있는, 일명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에 빠지도록 유혹하는데 탁월하다. 이런 간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대상을 보고 다시 한번 내 생각을 되뇌고 통찰력을 발휘해 다른 영역과 고유한 경험을 버무려야 하는 지적 활동은 점점 등한시되는 추세다.
그래서 진지할 줄 안다는 것은 인간의 자산이다
한편,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인공지능에 ‘네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 뭐니?’라고 물으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답한다. 기존 데이터를 가져와 수식을 활용해 서술하는 것은 이미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더 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이터를 만드는 일, 즉 정보를 생산하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이다. 정보를 생산하는 일. 즉 ‘생각하고 글쓰기’다. 세상이 급변한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사고와 통찰은 여전히 인간, 인문의 영역이다. 나아가 요즘 화제인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앞서 말한 이유를 들어, 지인에게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세상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할루시네이션이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거짓이다. 결국 이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만이 명확하다. 글쓰기는 인간이 가장 오래 가장 정교하고 방대하게 해온 데이터 만들기 작업이다.
당연한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습관이 빠른 속도로 상실되는 요즘, 나는 오히려 지금이 글 쓸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매사를 진지하게 살펴볼 줄 알고, 내가 모르는 것을 발견해 익히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독창성을 발휘한 나만의 데이터, 즉 글을 쓸 때 좋은 삶은 우리에게 다가온다.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당신 생각보다 유일무이하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글 쓰는 것처럼 살고 싶다고. 지인에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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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