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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Kim Dec 24. 2022

왜 고민해요? 인생 한 번이잖아요

우유부단함이 지체시킨 나의 도전

벌써 브런치에 첫 글을  지도 2 아니 이제  3년이 다되어간다.  후로 글은 많이 썼지만 실제로 발행은 하나도 하지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무엇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까,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나 선택은 하나만 할 수 있기에 우리는 고민이라는 것을 한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까지 수많은 생각과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그러다 결국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이런 종류의 성격을 의미하는 '우유부단함'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최근 들어 생겼다. 근래 감상한 두 가지 스토리 작품에서 발현되었는데, 하나는 영문 고전 <햄릿> 그리고 한때 핫했던 넷플릭스의 시리즈 영화 <오징어 게임>이다. 시대도 다르고, 문화도 내용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작품에서 나는 어떻게 동일한 영감을 받았을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

먼저 <햄릿>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학교의 영어 수업에서 수업 자료로 쓰게 되면서 읽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전하는 이 비극적인 내용의 모든 출발점은 주인공 '햄릿'의 우유부단함으로 의해 시작되고 진행된다.


햄릿

주인공 햄릿은 극 내에서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고민은 바로 자신의 원수인 '클라디우스'를 자신의 손으로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놓였을 때 벌어진다. 클라디우스는 햄릿의 삼촌으로, 권력을 위해서 햄릿의 아버지, 덴마크의 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권력을 차지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햄릿은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데, 그러던 와중 기회가 왔지만 그는 결국 행하지 않는다. 당시 클라디우스는 기도를 하고 있었고 지금 당장 죽이게 되면 그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햄릿은 기회를 놓쳤고 다음 기회를 노리지만 극 중에 적절한 다음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에서는 한 가지 장면이 이에 대한 영감을 받고 생각을 확장시켰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형, 그리고 여주인공만 남기 직전 게임인 유리 밟기 게임에서, 규칙을 알려주지 않은 채 참가자들이 선착순으로 번호를 하나씩 직접 고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때 주인공은 발 빠르게 나서서 번호를 선택할 기회가 많았는데, 작은 숫자를 선택할지 큰 숫자를 선택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어떤 규칙의 게임이 나오는 것일까, 어떤 번호가 게임에 유리할까.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 사이 다른 참가자들이 이미 번호를 다 골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만 하느라 그는 선택의 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결국 마지막에 남은 두 가지 갈래에서 하나를 고르게 된다. 다행히도 주인공은 게임이 룰에 유리한 번호를 선택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어떤 번호를 고를지 고민하고 점점 선택지가 줄어드는 장면을 보여준 것은 분명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것을 위해 기획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이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않고 고민하다가 결국 죽이지 않는 장면과 유사함을 찾았으며, 이 <오징어 게임>의 장면 또한 '우유부단함'이라는 테마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일치함을 발견했다. 일단 행동해야 한다는 것. 고민하다 보면 시간은 흐르며 선택지가 점점 사라진다. 일단 해보며 경험을 해보고, 이게 아닌 거 같으면 아닌 거지,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며 온갖 고민 속에 잠겨 행동을 보류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징어 게임>의 장면에서 또 다른 관점 또한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앞서 설명했듯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늦게까지 선택을 하지 않다가 얼마 남지 않은 선택지에서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선택을 했지만, 다행히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해당 게임의 룰 또한 가장 늦게 가는 사람이 유리한 룰이었다. 먼저 가서 행동하는 것이 경험과 교훈을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이 만약 죽을 정도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뒤에서 다른 이들의 경험을 지켜본 이들이 뒤늦게 출발하여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메시지였다. 선택지가 많은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선택지가 많은 만큼 지뢰 또한 많을 수 있다는 것. 다르게 보자면 많은 선택지가 놓인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고 부르기 힘든 것.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그렇게 나는 두 가지 가치관에서 고민하게 된다. 먼저 나서서 행동하며 직접 경험하며 끊임없는 실행과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듯이, 뒤에서 천천히 지켜보며 조심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맞을까? 쉽게 말해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리고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사이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


내가 이 주제를 갖고 고뇌를 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여태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으나, 첫 글을 올린 후 약 일 년 동안이나 다른 글을 올리지 않았다. 첫 글을 발행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후로 아무 글도 발행하지 않았다. 내 브런치 서랍에는 과거에 작성을 완성한 글들이 분명 여럿 있지만 한 번도 발행을 해본 적이 없다. 부담감 때문이었다. 정갈하고 깔끔한 좋은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일종의 갈망이자 부담감.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기에 이렇게 가다가는 아무 글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 채로 나의 서랍장 안에 숨겨둘 것이 뻔했다. 나의 건강하지 않은 완벽주의 성향이 여기서 또다시 비친 것이었다.


나는 약 2년 전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가끔 인생에 크고 작은 시련이 찾아오고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때 가끔 옛날에 쓴 일기장들을 꺼내 읽어본다. 대부분의 글들이 나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적은 솔직하고 담백한 글들이 가득 채워져 있고, 당시 나의 기분과 감정 등을 세세하게 알 수 있다. 보다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다.


브런치에서도 이런 감정,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글들로 나의 프로필을 채우고 싶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다. 가끔은 과할지라도 나의 감정을 새로운 단어들로 표현해내어 사람들에게 감동 또는 공감을 일으키고 싶다.


그래서 결심했다. 일단 써보기로. 써보고, 발행하고, 무엇이든 해보자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숨기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여주고 싶고 사람들에게 나의 글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싶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어도 괜찮다. 글을 써 내려감과 동시에 그것 또한 나아질 것이고 어쩌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 또한 나의 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많은 글들이 브런치에 발행될 예정이다. 캐나다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 나의 짧은 사색 이야기들, 그리고 그전부터 쓰기로 했던 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책 감상평 등이 채워질 예정이다.


앞으로 나의 여정에 대해 응원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또한, 모든 분들에게 답변을 드리지는 못했지만 글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그리고 저를 구독해주신 분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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