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85280_34936.html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에 제정되고 10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지는 벌써 5년이 지났지요. 지난 주말엔 국가공인민간자격 수어통역사 시험의 1차시험인 필기시험이 있었는데 접수자가 천 명 가량 되었다니 농인과 수어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는 점이 더욱 화가 나는 기사를 봤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글 하나에 정리를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먼저 하면서 글을 시작해봅니다. 가능한 한 하나의 글에는 하나의 주제만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위의 기사는 하나의 사건에 농사회, 그리고 농사회를 넘어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많이 달려 있기에 부득이하게 글 하나에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저는 특히 지난 주말 막 필기시험을 치고 와서 기억이 생생하신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에 나오는 한 줄짜리 지식들이 실제론 이런 모습으로 나오는구나 하고 체감하셨으면 해서요.
오늘은 이 글에서 장애인 보호작업장 자체의 문제, 그릇된 장애 인식과 이로 인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차별의 실제 사례 및 그 구제절차, 정당한 편의제공의무와 수어통역, 통역현장에서 차별을 겪은 경우 수어통역사의 역할 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복지법 제58조 제1항 제3호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 중 장애인 보호작업장은 장애로 인해 직업 수행능력이 낮은 장애인에게 직업적응능력 및 직무기능 향상훈련과 같은 직업재활 훈련을 제공하고,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면서 장애인이 경쟁고용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시설입니다(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41조, 별표4 장애인복지시설의 종류).
이러한 작업장에서는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이유로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데(최저임금법 제7조 제1호), 임금의 하한이 없으며 인가율이 2017년 기준 98.3%로 매우 높은 편입니다. 결국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장애인은 하한이 없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됩니다. '보호작업장 최저임금'으로 검색했을 때 이 점을 지적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인을 대할 때의 에티켓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이 있지요. 인식개선교육 등에서는 '농인과 이야기할 때는 눈을 바라본다, 조명을 등지지 않고 이야기한다, 구화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입모양을 명확하게 한다' 등 시각언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특성을 고려한 에티켓이 소개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농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 때 농인을 부르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요? 농인의 시야 안으로 손을 살며시 뻗어서 부르는 방법이 가장 정석입니다.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시야각 안으로 움직이는 게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인은 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보게 됩니다. 농인이 기척을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거나, 친밀한 관계라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서 부르기도 합니다.
의자를 흔들거나, 주위 사물을 쾅쾅 두드리거나, 몸을 거세게 두드리는 등 청인이 당했을 때 기분나쁜 방법은 농인도 기분이 나쁜 방법입니다.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연습부터 해라.
가장 화가 났던 대목입니다. 장애인복지시설 시설장이나 종사자라 해도 장애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시피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볼 때마다 분노를 금할 길이 없네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시설장의 자격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련분야에서의 일정 수준의 경력과 전문성을 요구합니다만, 위 발언은 과연 그 경력과 전문성이 시설장으로서의 자질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줍니다.
청능훈련은 전문적인 훈련방법을 익힌 청능치료사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청각장애 아동에게 구화 훈련을 하는 경우 청능훈련->발화법 훈련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입니다. 청각을 통해 음성언어를 익힌 뒤에야 말을 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기니까요.
해당 시설장이 정말 장애인 근로자의 재활을 위해 선의로 이런 지시를 했을까요? 여러 사람 앞에서 책을 읽으면 언어장애가 '나을' 수 있고, 들리지 않았던 귀가 갑자기 들릴 수 있게 될까요?
말하는 연습이랍시고 국어사전을 읽게 하는 것은 농인의 업무능력은 물론 직업재활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해당 근로자가 장애로 인해 수행할 수 없는 일을 시키고 이를 통해 모멸감을 주기 위한 지시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훈련, 교육과 같은 어떤 미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에게 직업훈련과 근로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이렇게 공공연하게 장애인에 대한 괴롭힘이 일어나는 것을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할까요.
장애인복지법에서는 국가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실시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현재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곳은 공공기관/교육기관 등이 있는데요, 교육을 받는 대상이나 관리자, 사업주같은 사람들은 법정의무교육이 왜 필요한가 의문이 들 수 있어요. 어차피 집중해서 듣는 것도 아니고, 귀찮은 업무가 하나 늘어난다고 짜증을 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농아인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거 설명하는 게 우리 회사 업무 방해하는 겁니다." "입모양을 보고 (이야기)하고 필담을 해서 몇 년동안 그렇게 근무를 했었고, 안 되는 게 아니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계시기 때문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이 필요한 것이겠죠. 통탄스러운 것은 이러한 발언이 누구보다 장애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할 장애인보호작업장의 시설장에게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개인의 일탈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비슷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 혹은 부려먹기 좋고 저렴한 노동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꽤 자주 봤습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까지 법으로 엄격하게 통제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런 생각을 말로 내뱉으면 주위의 분위기가 경직이 된다거나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적 흐름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교육을 몇 번 듣는다고 해서 우리사회의 장애인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학령기의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처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전방위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서서히 바뀐다면 적어도 위와 같은 차별적 언사를 공공연하게 한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수 있을 거예요.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뿐만 아니라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관과 시설, 더 나아가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업까지 인식개선교육의 확대가 시급해 보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직접적 차별, 간접적 차별,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 광고에 의한 차별 등 네 가지의 차별 유형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조기기, 편의시설, 수어통역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을 우리 법제에서는 '정당한 편의제공'이라고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서비스제공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고용영역과 관련한 사용자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농인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필요한 경우 수어통역사를 배치해야 하는 의무가 사업주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국립국어원의 2020년 한국수어 활용 조사에 따르면, 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에서 농인(수어를 주된 의사소통 방법으로 사용하는 응답자)은 업무관련 의사소통과 직장 내 구성원과의 의사소통에서 주로 필담, 수어를 사용하며, 원하는 의사소통방법으로는 수어로 소통을 원한다는 응답이 많았습니다(82.0%).
구화나 필담을 할 수 있는 농인들도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모든 영역에서 동료들과 구화나 필담으로 소통하기는 어렵습니다. 필담의 경우 다른 구성원들의 '배려'가 필요하지만 이 배려가 근무시간 내내 지속되기를 기대하기 어렵고, 불편함을 이유로 직장 내 의사소통과정에서 농인이 배제되기 쉽습니다. 이를 농인들도 체감하고 있기에 위 실태조사에서 원하는 소통 방법 중 수어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을 것입니다.
농인 근로자 한두 명을 위해 사업주가 수어통역사를 따로 고용하여 사업장에 배치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는 점을 우려하여 정부에서는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근로지원인 제도는 중증장애인 근로자가 핵심 업무수행능력은 보유하지만 장애로 인해 부수적 업무 수행이 어려울 때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원활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장애 유형별로 근로지원인이 지원하는 업무는 상이합니다만 청각장애인에게는 수어통역 근로지원인이 업무를 보조하게 됩니다. 수어통역 근로지원인의 경우 수어통역이 가능할 것을 조건으로 선발하고 일반 근로지원인에 비하여 추가 시급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장애인 근로자가 사업주의 동의를 얻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근로지원인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 심사를 거쳐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농인의 경우 수어통역 근로지원인이 배정됩니다. 이 경우 사업주는 부담금을 내지 않고, 근로자가 시간당 300원의 본인부담금을 부담하면 신청한 업무 시간 동안 근로지원인이 근로자의 근무처에 파견되어 수어통역, 문자통역 등 장애인 근로자의 의사소통을 지원하게 됩니다.
수어통역 근로지원인제도에도 명암이 있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통역 서비스가 필요하다, 필요없다라는 점을 판단하는 주체는 농인이 되어야 합니다. 위 기사의 영상을 봤을 때 사업장에 수어통역 근로지원인이 이미 배정되어 있었던 것인지, 혹은 공론화 과정에서 수어통역센터 등 외부 기관의 수어통역사가 파견되어 통역을 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농인 당사자가 원하는데 상대방이 통역을 거부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수어통역 근로지원인이 배치되어 있었다면 사전에 사업주의 동의가 있었다는 뜻이고, 신청 과정에서 근로지원인 서비스의 필요성을 공단이 검토하므로 근로환경에서 의사소통지원이 필요함을 검증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경우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1조의 정당한 편의제공의무 위반이 됩니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분쟁 과정에서 수어통역사의 통역을 차단하려는 시도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 제1호 및 제3호, 제5호를 위반한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통역 이론에서도, 실무에서도 많이들 듣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통역사는 해결사가 아니다."
수어통역사가 단지 통역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농인의 문제 상황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농인이 수어통역사에게 지나치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막고, 수어통역사의 소진(burnout)을 막는 수어통역사의 중요한 직무 윤리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서 '나는 인간 파파고다'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수어통역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통역을 해야 할까요? 많은 수어통역사들의 딜레마일 것입니다.
수어통역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사회통역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는 정보가 적고, 지식이 주로 청인에게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기계적인 통역만으로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대등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의 조정을 위한 수어통역사의 촉진자 역할이 중요합니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결사 역할과 촉진자 역할의 중요한 차이점은 농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지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불균형이 있는 상황에서 해결사는 이 정보를 독점하거나, 농인에게 최소한의 사항만 공유한 채로 "A가 있고 B가 있는데 지금 상황에선 B가 좋으니 B로 합시다."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의사결정은 통역사가 하게 되겠죠.
반면 촉진자는 "지금 상황은 ~~한 상황입니다. 당신이 A라고 결정하면 a가 될 것입니다. B로 결정하면 b의 결과가 나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하면서 클라이언트인 농인이 결정하도록 할 것입니다.
해결사 역할을 하지 말라는 것은 농인의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해서 통역사가 농인의 의사를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지, 의사 결정에 필요한 부가적 정보까지 제공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위의 Ⅲ-4에서 본 바와 같이 통역 현장에서 수어통역을 방해하거나 농인의 의사에 반하여 수어통역사를 배제하는 것은 위법한 차별에 해당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발생한 경우에
1)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38조)
2)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동법 제46조 제1항)
3) 악의적 차별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처벌(동법 제 49조 제1항)
위 세 가지 방법으로 피해자에 대한 구제절차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이 중 피해자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고, 비용 부담이 없는 절차는 1)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는 것입니다.(간혹 경찰에 고발하고 싶다는 농인이 있는데 차별사건은 폭행/협박 등 범죄행위가 있지 않는 한 경찰서에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여 받아들여질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1) 합의 권고(국가인권위원회법 제40조)
2) 구제조치 및 제도개선의 권고(동법 제44조 제1항)
3) 진정내용이 범죄에 해당할 경우 수사의뢰(동법 제34조 제1항) ,고발 및 징계권고(동법 제45조)
4) 피해자를 위한 법률구조요청(동법 제 47조)
5) 긴급구제조치의 권고(동법 제48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는 것은 차별의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개인 또는 단체 모두가 가능합니다. 절차를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인권위 진정은 방문, 전화, 우편, 팩스, 홈페이지, 이메일 등 일반적으로 접근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 가능합니다. 또한 소송과 달리 반드시 피해 당사자만이 진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비용이 들지 않으며, 내용이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 법률구조 서비스와 연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수어통역사가 통역을 할 때 농인과 대화하는 사람이 농인에게 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는 통역 필요없으니 꺼지라는 식으로 나온다면요?
일단 농인에게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통역부터 해줘야겠죠. 농인이 그에 맞대응을 한다면 농인의 이야기를 통역하면서 대화를 이어나아야 할 것이구요. 만약 농인이 화가 나거나 당황스러워서, 모멸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통역사의 본분은 통역 그 자체인 만큼 통역사는 최대한 중립적으로, 전면에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윤리를 따라서 나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농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대방의 발언을 지적하는 분도 있겠죠.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는 대화자들의 사회적 지위, 대화하는 상황, 장소, 대화의 전후 맥락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상황이 종료된 뒤, 농인이 부당한 대우에 화가 나서 상대방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통역사에게 물어 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 때 통역사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이 농인의 입장에서는 해결할 수 있는 루트 하나가 차단되는 것이겠지요.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바로 위 Ⅳ-2에서 구제방법을 구구절절 써놓은 것입니다.
청인들은 오며가며 귀동냥이 가능하지만, 농인은 이 '귀동냥'을 할 수 없어서 놓치고 지나가는 정보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물론 진정을 넣을 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진정의 모든 과정을 통역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정이라는게 있다더라, 생각보다 간단하다더라 정도로만 이야기해도 농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혹은 통역사라면 통역 현장에서 부당함과 차별을 맞닥뜨렸을 때 이것을 지적하고 맞서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괜한 일에 휘말려서 시간과 심력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뭔가 기분은 나쁜데 저사람이 확실하게 뭘 잘못한 것인지 단언하기 어려워서 망설이다가 혼자 화를 삭히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까지 개입할 지는 각자 저마다의 판단에 따르겠지만, 저는 이번 글을 통해 적어도 이 사건에서 어떤 지점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같이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을 짚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