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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제 Sep 05. 2021

나도 봤다, 헤드윅

<헤드윅> 내용 요약(스포주의!) + 이런저런 덧붙임들

신당역 9번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골목을 꺾어 들어가면 곧바로 나오는 충아센. 김밥천국에서 밥 먹고 걸어가다가 너무 빨리 도착해서 좀 놀랐다.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헤드윅> 봤다.


내 자리는 2층이었고 얼마 전 <레드북> 보고 나서 구매한 오글(아이비노두잉 10배율) 첫 사용한 날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매우매우 잘한 일이었다. 트위터에서 누가 헤드윅은 그냥 언니만 따라가면서 보면 되니까~~ 라는 식으로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맞는 말이었다. 1인극인 줄도 모르고 본 셈이다. (이츠학도 나오긴 하지만 비중 차이가 9:1에서 8:2 정도 되는 듯하다.)


예매하는 인터파크 창에서, 무대 배경은 성전환수술에 실패한 헤드윅의 일기장이라는 소개 문구만 보고 나머지 배경 정보 없이 봤는데 내용 이해에 큰 어려움 없었다. 써놓고 보니 당연한 거긴 한데… 하여간 헤드윅이 말하는 엄청난 분량의 대사에 집중하다보면 인물의 생애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역시 당연함)


헤드윅으로 입덕 완료한 것 같다…


1차 티켓팅 때는 헤드윅의 공연 소식을 아예 몰랐고(…) 많은 머글들이 그렇듯이 조승우 배우의 유퀴즈 출연을 계기로 <헤드윅>을 알게 되었다. 헤드윅이라는 작품 자체를 알고는 있었지만 올 여름방학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연극이나 뮤지컬 관련해서는 초 문외한이었어서… 조드윅을 보고 말겠다는 신념으로 2차 티켓팅과 4차 티켓팅을 용병을 구하고 피씨방에 가서 시도했지만 둘 다 가뿐히 실패했다. 그리고 2차 티켓팅 때 오드윅 2층 9열 (A석) 으로 예매하고 오늘 본 것이다.


나는 오만석이라는 배우를 이름과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나온 작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뮤지컬이나 연극을 전혀 모르더라도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워낙 왕성하게 한 배우라(조승우 배우와의 공통점인가?) 머글인 나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하여튼 공연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배우 연기력에 전율 느껴진 건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8월 초에 봤던 소극장 뮤지컬 <유진과 유진>에서도 배우 연기력에 폭풍감동했었지만 결이 다른 느낌이다.) 왜 tv나 영화관이 아닌 무대 위 공연을 보는지 알 것 같다!!


공연 끝나고 집에 온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장면은 아무래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헤드윅이 드레스와 속옷까지 모두 벗어던지고 가슴에 끼워 두었던 토마토를 양 손에 쥔 채 가슴을 두드리며 터뜨리는 모습이다. 그 표정이 계속 생각난다.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환멸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애인과 토미,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담아내는 표정 같았다. 일단 물리적으로 옷을 다 벗어 던지는 장면이 나올 줄 전혀 모르고 있어서 그 자체에 놀라기도 했고 길고 긴 극의 절정이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가 멋있었다. 멋있다는 게, 보통 내가 연예인이 멋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스타일링과 잘생긴 외모로 매력을 어필하는 걸 보고 좋아하는 식이다. 배우의 경우라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상대역 인물을 비롯한 시청자들을 설레게하는 캐릭터의 모습에 잠깐 반하는 그런 식이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무대 위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이 멋있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관객으로서 캐릭터 자체에 빠지느라 정신 없다기보다, 온 몸과 정신이 캐릭터에 몰입해서 배우가 연기를 해내는 그 자체가 눈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배우라는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느낌을 더 일찍 더 많이 느꼈겠지. 공연을 보면서, ‘내가 만약 모든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나이였다면 방금 그 장면을 보고 배우를 꿈꾸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분 늦어서 못 산 MD가 아른거린다. (저녁 7시 공연의 경우,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만 구매 가능하다)


그리고 이영미 배우 역시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 봤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음색을 듣고 한 번 놀라고 가창력 듣고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놀랐다.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싶었고 귀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 어휘력과 문장력에 애도를 표하고 싶어진다……. 엄청 파워풀한 목소리였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부른 장면이다. 맨 처음 도입부의 허밍부터 (일단 내가 아는 노래니까) 더 반가우면서 이걸 이렇게 잘(이렇게 짧고 성의없는 부사를 갖다 붙이기가 죄송해진다) 부른다니!!! 하면서 반가웠더랬다.


처음에는 컨테이너 형태로 숨겨져 있다가 도중에 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헤드윅의 방. 포토존에서 열심히 찍고 무대를 본지라 괜히 반가웠다.


나는 장의존형 학습자다.

장독립형 학습자에 비해 어떤 글이나 정보의 전체적인 내용을 구조화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헤드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는 걸 시도해보자면…


1. 헤드윅은 어릴  아빠에게 성폭행을 한다. (3살에서 7   일기장의 그림이 배경 스크린으로 나온다)

2. 헤드윅은 어릴  오븐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낸다. 그러면서  음악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경하게 된다.

3.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이면 엄마와 헤드윅은 아빠 없이 침대에 둘이 누워 곤 하였다. 엄마는 어린 헤드윅에게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인간은 원래 머리   팔다리가   달려 있었고 지금은 원래의 합체되어 있던 몸이 나뉘어져 존재하는 것이라고. 동독과 서독, 여자와 남자가 나뉘는 것처럼. (헤드윅은 동독 출신이다.)

4. 대학생 때 헤드윅은 자동차 위에 누워 있다가 애인을 만나게 된다. 애인은 헤드윅처럼 예쁜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애인은 헤드윅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헤드윅은 애인을 집에 데려가 엄마에게 소개한다. (여기서 애인과 엄마의 역할까지 헤드윅이 전부 1인 다역으로 소화한다. 유퀴즈에서 대사량이 너무 많아 곤란했던 일화를 들을 땐 그런가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대단하다.) 헤드윅은 엄마에게, 애인과 결혼하면 그가 자신을 미국에 데려가 시민권 자격을 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동독에서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신체검사가 필요하다. 그렇게 헤드윅은 성전환수술을 하게 된다.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며. 그리고 엄마의 것을 빌려 헤드윅으로 이름을 바꾼다.

5. 그러나 그의 수술은 실패로 끝난다. 성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1인치의 살덩이가 남은 것이다. 1년도 채 안 되어 애인은 헤드윅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채 미국에서 헤드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본다. 1989년이라는 이영미 배우의 나레이션. 내가 동독에 있을 때 무너졌다면 좋았을 거라고 헤드윅은 중얼거린다. 그리고 어쩐지 엄마가 생각난 헤드윅은 엄마에게 연락을 할까 하지만, 엄마는 따뜻한 우즈베키스탄으로 이민 갔다는 사실을 이내 떠올린다.

6. 먹고 살기 위해 헤드윅은 몸을 파는 일을 한다. 토미는 헤드윅이 일하는 가정집의 아들이다. (헤드윅이 토미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경위나 관계가 명확히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가정집을 간 게 맞는지?) 어느 날 토미는 헤드윅이 일하러 오는 날 보란듯이 욕실 문을 열어두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헤드윅은 토미의 성기를 손으로 잡고 사정시킨 뒤, 이따 저녁에 자기가 일하는 음식점에 (이름이 생각이 안나ㅠㅠ) 놀러오라고 말한다. 토미는 과연 올까?

7. 음식점에서 헤드윅은 노래를 한다. 원래 하려던 곡 대신 즉흥으로 불러 봤다는 헤드윅. 그리고 나서 토미를 발견한다. (여기서 토미는 1층 앞좌석에 앉아 있는 남자 관객이 그 역할을 대신 한다..! 2층에 있는 관객들이 다 같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서 아래를 봤다.)

8. 토미에게 헤드윅은 기타를 가르치고 락 음악에 대해 알려주고 자신이 써 준 곡을 연습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토미가 헤드윅에게 자기 엄마 아빠가 자기더러 뭐라고 했는 줄 아느냐고 울부짖는다. (뭐라고 말했는지 대사로 나오지는 않고 곧바로 토미를 위로하는 헤드윅을 연기한다.) 헤드윅은 토미에게 키스해달라 말한다. 토미는 헤드윅의 성기 쪽을 만지고 흠칫 놀라 표정과 몸이 굳는다. 이내 집에 가 봐야겠다고 말하고 도망치는 토미를 보며 헤드윅은 상처 받는다.

9. 여기서 이츠학은 누구인가? 이츠학은 헤드윅이 일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카페 공연이 끝나고인 듯하다) 자기를 살려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며 다가온다. 인종 청소를 당할 것 같다며. (엇, 그럼 동독에서 만난 건가?) 동독 사람인 헤드윅과 유태인인 이츠학.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헤드윅과 여장을 하는 남성 이츠학은 결혼의 형태로 묶여 있다. 이츠학이 헤드윅의 가발을 몰래 쓰려 하거나 이츠학이 거슬릴 때면 헤드윅은 “네 여권은 나한테 있”다며 윽박지른다. 그리고 “정신교육”이 필요하다며 사이렌을 울린다. “이미그레이션, 이미그레이션-” 사이렌과 외치면 밴드 세션의 모든 사람들이 무대 뒤로 도망친다. 밴드 세션은 모두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10. 극 초반의 “정신교육” 때와는 달리, 극 후반부에서 다시 한 번 사이렌을 울릴 때에는 아무도 도망치지 않는다. 헤드윅은 사이렌 장치를 집어 던진다. 코트도 벗어던진다. (두 번째 정신교육 전에 코트를 먼저 벗어던졌는지 기억이 안 난다)

11. (이 부분이 매끄럽게 기억나지 않는다) 은색 스팽글이 붙은 블랙 드레스도 벗어던진다. 브래지어도 벗는다. 몸에 걸친 건 검정 숏팬츠와 앵클부츠. 브래지어 안에 가짜 가슴을 위해 넣어두었던 토마토를 손에 한 개씩 거머쥐고 가슴을 두드린다. (처음에는 그냥 빨간색 공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가슴을 두드리면서 터지는 걸 보고 토마토라고 유추했다. 극 초반에 토마토가 맛있다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12. 그리고 암전. 다시 나타난 헤드윅은, 아니 오만석 배우는 토미를 연기한다. 화려한 가발은 쓰지 않고 탈색모의 짧은 머리. 극이 시작될 때부터 계속해서 도중에 탑스타가 된 토미가 문 너머로 공연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는데, 감사를 표해야 할 대상으로 단 한 번도 헤드윅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헤드윅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관객들에게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노래를 들을 수 있게 조용히 해 달라고 당부한다. 노래가 끝나고, “헤드윅”을 나지막히 부르며 토미의 무대는 끝난다. 암전.

13. 헤드윅과 이츠학이 노래를 부른다. 이츠학은 밝은 갈색의 웨이브진 긴 머리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쓴 채 여장을 한 이츠학. 헤드윅과 이츠학은 화합의 모습을 보여준다.

14. 배우들이 인사를 하고 다시 헤드윅과 이츠학이 노래를 한다. 이츠학은 드레스는 그대로이고 가발은 벗었지만 원래 머리를 묶지 않고 푼 상태이다.

15. 오만석 배우의 짧은 인사말과 함께 9월 4일자 공연 끝.



사실 오늘 공연을 보러 가기 전만 해도,

공연 한 번 보고 나면 아무리 배우가 달라도 굳이 또 한 번 안 봐도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을까 - 라고 생각했었다.

푼수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발랄하고 사연 있는 헤드윅이라는 캐릭터를 보고, 내 예상이 완전히 틀렸구나 싶었다.

공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5차 티켓팅이 언제 열리는지 알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공연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기록해두길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다.

(피켓팅을 뚫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된다..!)


+ 아래는 2차 티켓팅을 어떻게 망했는지의 모습이다.

이선좌 당할 것도 없이 클릭할 포도알이 없었던… (눈물)


어쨌거나.

뮤지컬 첫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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