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루카치 & 르네 지라르의 소설 이론과 <시선으로부터> 같이 읽기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334쪽)임을 표방하는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이슈가 촉발된 이래로, 여성작가들의 여성 서사가 주목 받고 있는 현재의 시각에서 불과 지난 세기까지 외면 받거나 억압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 가계의 구성원들을 통해 그려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시선으로부터』는 ‘시선’의 기일 십 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가족들이 그의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이다. 한데 그 배경과 방식이 독특하다. 온 가족이 ‘시선’이 생전에 머물렀던 지역 중 하나인 하와이에 가서, 여행하며 인상 깊었던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제사상을 차리기로 한 것이다. 애당초 이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까닭도 제사 문화에 반대했던 시선의 강경한 뜻에 따른 것이었으며, 그런 모친의 가치관을 빼 닮은 딸들의 결정에 따라 이와 같은 파격적인 제사가 성사될 수 있었다. 그 시절 아들만큼 ― 어쩌면 아들보다 더 ― 딸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위가 장모에게 김치를 얻어 먹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김치를 사먹는 게 자랑인 집”(144쪽)의 시대를 초월한 ‘비관습적 관습’은 모두 심시선 여사의 확고한 탈(脫) 가부장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출판계뿐만 아니라 영화·드라마 등 문화예술 전반에서는 전통적 성 역할에서 벗어난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두드러졌다. 과거에는 이른바 ‘백마 탄 왕자’와 ‘캔디’형 캐릭터로 설정된 남녀 주인공의 관계 양상에 초점을 둔 서사가 보편적이었다면, 여성 캐릭터가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을 그리거나, 경력단절·유리천장 등 여성이 일터 및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 내지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등 성 역할에 관한 인식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서사들을 다양한 매체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된 혹은 배제된 성 역할을 다루는 문학작품 및 미디어의 반복적인 노출은, 진취적이고 주체적이며 ‘여자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는 여성에 대한 대중의 ― 말할 것도 없이, 특히 여성들의 ― 숭배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심시선’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시대적 감수성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는 여성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보인다. 젠더(gender)의 영역을 벗어나 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여성들의 욕망이, 자기 의견을 잘 굽히지 않고 분쟁에 쉽사리 휘말리는 성격 탓에 “대중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집요한 미움을 동시에 받았”(16쪽)으면서도 결국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자”(318쪽)였던 ‘시선’이라는 인물에 투영된 것이다. 지라르(Girard)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시선은 일종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할 수 있다. ‘진취적·주체적 여성’이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오늘날 여성들의 욕망이 여성 서사를 다루는 각종 문학작품 및 미디어 속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들을 중개자 삼아 간접화되고 있는데, ‘심시선’은 바로 그 중개자 중 하나인 것이다.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작중 인물들과 작품 바깥의 독자들에게 수용되는 양상을 고려하였을 때, 시선은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외면적 간접화의 중개자인 것으로 보인다. 중개자와 주체가 각각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가능성이라는 두 구형(球形)에서 둘 사이의 거리가 서로 접촉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떨어져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외면적 간접화’라고 부른다. 가령 플로베르(Flaubert)의 소설 속 엠마 보바리(Emma Bovary)는 삼류소설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여주인공들과 같은 파리 사교계 상류층 여인의 삶을 희구한다는 점에서 외면적 간접화의 범주에 속한다(Rene Girard, 2001). 그러나 오늘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외면적 간접화의 경우 보바리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띠는데, 보바리가 오로지 개인의 욕망 충족을 위한 차원에서 모방 대상을 동경했다면 오늘날 여성 서사를 통한 외면적 간접화가 지향하는 진취적·주체적 인간상의 실현은 곧 이전 세기에서 강요되던 여성에 대한 억압을 해소하고 누구나 젠더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동체로의 진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편, 작품 내에서 여러 차례 발견되는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에 대한 풍자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나, 여성주의의 재점화 그 이후 우리 사회에서 새롭게 요청되는 논제들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작품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일종의 ‘미러링’으로 읽히는 대목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부를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 놨습니다.”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9쪽)
명혜는 태호가 기여하는 것 없이 굴러다니며 논다고 여기는 듯했지만, 모두 바쁘게 제 할일 할 때 다음날 아침에 먹을 빵을 사다 놓고, 물과 주스와 맥주를 냉장고에 채워넣고, 쓰레기를 버리고, 욕실 청소를 하는 건 태호였다. 매일 수건 빨래를 해서 너는 건 누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꾹 참고 생색은 내지 않기로 했다. (274쪽)
이와 같은 풍자는 지난 세기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남아선호사상, 가부장적 성 역할에 대한 비판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뼈 있는 웃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추상화의 위험과 주관성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풍자는 작가에게 선악·시비·미추를 변별하고 대상을 희화화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됨을 전제로 하는데, 루카치(Lukas)에 의하면 이러한 인식의 주관은 자신의 대상이 된 다른 주관들과 마찬가지로 경험적 주관이며 따라서 세계에 사로잡혀 있고 내면성 속에 제한되어 있는 주관이다. 온·오프라인으로 각종 젠더 의제가 범람하는 시류 속 여성 서사의 발전과 페미니즘의 진보를 위해서는, 서사의 형식적 측면이 풍자의 영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변증법적 사유에 입각하여 형식 원리로서의 반어(反語)를 획득할 필요가 있다. 반어는 객관적인 형식을 주관적인 형식인 풍자로, 총체성을 시각으로 좁혀버릴 냉정하고도 추상적인 우월성에서 자유롭게 된다(Georg Lukas, 2007).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 식의 일방적인 조롱이 아닌, 대상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기에 대한 반성이 병행되는 정반합의 과정을 거칠 때라야 페미니즘을 둘러싼 대립적 구도를 극복하고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가 반영된 사회적 합의점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문학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데에서 그 효용을 찾을 수 있다. 문학은 불평등이나 환경, 젠더 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이 평소 관심을 갖지 못했던 문제를 중요한 의제로 제시하고 이를 질문하게끔 한다. 원환적 세계가 붕괴되고 더 이상 별이 우리에게 가야만 하는 길들을 밝혀주지 않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며 모두가 시급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은 어떤 것인지 제시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다른 학문 분야가 해내지 못하는 역할을 해낸다고 할 수 있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그가 건네는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유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