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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연습하기

'입'코칭보다 효과적인 '응원하기'

by 앤나우

이번 주 월요일부터 둘째 아이의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월요일 아침부터 수저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엄마, 엄마, 빨리 산책 가자! 산책! 산책! 놀이터!


일관되게 집이 아닌, '바깥'으로 몸과 마음이 향하는 아이. 또 시작이구만, 이주를 어떻게 버티나, 하루가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이는 요즘 푹 빠져있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모양이다. 월요일은 줌 수업이 12시가 넘어 끝나기에, 우선 약속을 지킬 테니 TV를 틀어주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 한 뒤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대충 푹 눌러쓸 모자와 차가운 물만 후다닥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하;;; 왜 이럴 때만 빠른 실행력이 나오지. 날씨도 제대로 체크하고 파라솔은 아니더라도 커다란 우산 정도까진 챙겨야 할 만큼 찜통 날씬데 T_T 준비는 허접하고 늘 급한 성미가 문제인 것 같다.) 역시나, 나오자마자 든 생각은,

'약속을 괜히 지켰나, 꼭 지금 지킬 필요가 있었나?'


으악! 덥다, 덥다, 더워~~!!!


필이면 가 중천, 가장 쨍쨍거린다는 12시다. 챙겨 온 물은 10분도 안 돼서 이미 다 마셔버렸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햇볕을 가리기 위한 모자인데 더워서 자꾸만 모자를 벗어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아이의 온몸도 땀이 줄줄줄, 등까지 흠뻑 젖었다. 그래도 열심히 페달을 굴리고 공원을 끝까지 한 바퀴 돈다.


-엄마, 여기 오른쪽이 잘 안 밟혀, 이쪽이 계속 안 눌려. 여기가 맨날 어려워.

관찰해 보니 페달을 밟는 다리가 살짝 짧다. 안장을 조금 더 낮춰주는 것도 귀찮아서 아이에게 그만 타라는 신호를 준다.

-힘을 더 꽉꽉 줘서 밟아야지, 다리가 짧아서 그래. 다리가 양쪽으로 좀 더 늘어나면 밸런스가 맞을 거야.(아무 말 대잔치 엄마) 키가 크면 움직이고 누르는 게 더 쉬워질 거야. 자자, 이제 그만 타자!(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거든;;;)


뒤에서 잡아주기도 하고 발 위치도 대어주고 요리조리 '입'코치를 해준다. 입으로만 연신 말하는 입코치는 나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전문성과 노하우가 없기에(사실 나도 자전거를 잘 못 탄다 ^^;;;아니, 타긴 잘 타는데 운동장에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잘 탄다. 뭔가 장애물이 없어야만 가능한 주행이다.) 일단 입만 움직여 요리조리 어떻게 하라 말하기만 하면 되니까, 아이들 앞에 나의 이런 허울뿐인 코치를 스스로 '입'코치라 이름 붙였다. 역시나,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그럼 누구랑 이야기하느냐 혼란스러운 내면과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아이는 반응이 전혀 없는데도 말은 멈출 줄을 모른다.


아이가 어어, 하다가 넘어지는 순간에, 다치기 싫어서 몸을 쓱 뺐다. 그때마다 자전거를 다시 세워주는 건 내 일이 된다. 아직 자전거 하나를 일으키기엔 좀 커다란 사이즈와 무게이기에 몇 번 일으켜주다가 자전거, 하면 정석의 말이 떠오른다.


선율아, 피하면 안 돼.
자전거는 무조건 많이 넘어져야 돼. 넘어져야 잘 탈 수 있는 거야.
그래야 안 넘어지려고 요리조리 또 균형을 잡고, 전방 30m를 주시하고(이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피하지 마. 다리가 까져도, 넘어져봐야 해. (아닌가? 다리가 까지면 나도 아플 거 같은데, 더위를 먹은 건지 아무 말이나 막 나오는 것 같다)


아아, 뭔가 이상하다. 넘어지는데, 안 다치려고 피하려는 애한테 굳이 이런 소리를 했어야 했나, 또 잠시 머쓱해진다. 대꾸하지도 않고 그냥 끝까지 가고 싶은 길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 이런 말이 멋있을 줄 알았는데, 실전에는 영 도움도 안 되고,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더위 속에 땀을 삐질거리면서도 자전거와 옥신각신, 엄마는 시원한 카페나 갔으면 좋겠구먼 아이는 그저 땡볕에서 한 시간을 넘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어제도 아빠랑 나와서 자전거 탄 이야기를 해준다. 재잘재잘, 이제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빠랑 자전거 타러 어딜 갔고 재밌었다는 이야기가 꺼내는 선율이. 흥미 있게 듣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서 물어봤다.

-선율아, 그럼 아빠도 엄마처럼 이렇게 잘 가르쳐줬어?


아이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생각보다 한참 생각하더니)




음... 엄마, 아빠는 나한테 어떻게 타라고 말을 안 하더라.

그냥 나를 응원만 해줬어.

엄마는 자꾸 넘어지라고, 그런 게 잘 타는 거라고 했잖아.
아빠는 그런 말도 안 하던데?

그냥 나한테 잘하고 있대!
계속 잘하고 있대.

그게 좋았어!




아, 순간 머리에 자전거 체인이 우두득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에게 '입코칭'의 결과가 허무하게 하얀 구름처럼 뭉게뭉게 떠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냥 응원만 해주는 거, 잘하고 있어. 잘 안 돼도 잘 될 거야,라는 말이 사실은 아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구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은, 발도 닿지 않는 페달을 밟고 무거운 체인을 도르륵 가볍게 움직이는 마법은 이리저리 '노하우'에 대한 전술이 아니라 사실은 이거 한 마디구나.


잘하고 있어! 와! 대단한데!


조금 삐뚤빼뚤 가도, 가다가 넘어져도, 넘어진 아이에게 넘어져봐야 한다는 둥 하는 말이, 뭔 소용이 있을까.

다치진 않았어? 아팠겠다. 도와줄게, 일어나 보자, 먼저 필요한 말, 내밀어주는 손은 입코칭보다 먼저여야 했구나.


결국 힘겹게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고 그걸 움직이는 건 '내' 다리가 아니라 '네'다리니까, 네가 끌고 가는 자전거엔 네 몫만큼의 응원만 필요했던 거구나. 논리적인 원리를 찾아 자꾸 말해주려는 습관보다 아이가 잘 못 타더라도 더 오래, 재밌게 기억에 남을 '정서'를 고르는 '응원하기'는 어쩌면 내가 그토록 바라고 듣고 싶었던 말이데, 아이 덕분에 나를 들여다본다. 아이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어진다.





느리지만, 부족해보여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고 성장하고 있는 널 응원해! (사실 부족한건 엄마인지도 모르겠다)


#한여름에도자전거바퀴는굴러간다

#장이싱아에게선물받은자전거

#엉아들고마워

#여름쨍쨍

#응원이필요한순간

#입코칭스탑

#몹시쓸모있는글쓰기

#몹글18기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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