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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Aug 18. 2023

우리 아빤

새벽마다 북두칠성을 따라 손으로 짚으며


우리 아빠는 유복자이다. (나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기도 전에 우리 아빠 덕에 이 어려운 단어를 알게 됐다.) 한국 전쟁이 나던 당시 아빠는 할머니 뱃속에 있었고 위로 누나와 형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나이 터울이 진 제일 막둥이로 태어났다. 전쟁으로 남편도, 재산도 모든 걸 잃은 할머니께선 피난을 가야 했고 임신 중이었던 할머니가 하실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할머니는 작은 교회 한편에 터를 얻었고 그 교회에서 소사로 일하시면서 이것저것 교회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고 한다. 쓸고 닦고 청소하고 교회를 가꾸고 음식을 하고, 우리 아빠는 그렇게 교회 안에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읽고 쓰고 배우며 교회 새벽종을 치는 일,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등을 도맡아서 했다. 풍금도 치고 찬송가도 부르고 중학생 나이에서부터 주일 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다. 신앙과 믿음이 근간이 된 삶 속에서 아빠는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했다. 공업 고등학교를 다니며 공부도 꽤 잘하셔서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한다. 전화국에서 일하는 엄마와 만나서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엄마도 교회로 전도했다. 기술도 뛰어나고 일도 잘해서 롯데 그룹에서 아빠를 스카우트해 갈 정도로 아빠는 탄탄하게 경력을 쌓아갔다.






나도 몰랐던 아빠의 아주 어린 시절 이야기,


선재를 임신했을 무렵 10년 전, 그때도 다시 롯데에 재 취업을 하기 위해서 아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검토해 주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때도 만삭의 몸으로 아빠가 일하는 조리과학 고등학교 경비실에 들러서 신랑과 짬뽕 한 그릇을 얻어먹고 경비실에서 쉬다가 우연히 아빠 컴퓨터에 있는 이력서를 보게 됐다. 기술이 있으시니 경비 일보다는 계속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하고 싶어 하셨던 아빠.

 "아빠, 나 중고등 학생들, 대학생까지 자기소개서 엄청 많이 써줬는데 아빠 것도 내가 좀 봐줄까? 재능 기부 해줄게!"

 하면서 그렇게 아빠의 자기소개서를 처음 읽게 됐다.


자기소개서- 소개서는 맞지만, 거기엔 나도 몰랐던 아빠의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교회에서 소사로 일하시는 할머니 얼굴도 생각나고 당시 시계가 없어서 종을 늦게 치면 혼나니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북두칠성을 보면서 시간을 가늠했을 아빠의 이야기가 소개서 시작을 열고 있었다.  고스란히 들어있는 유년 시절의 아빠. 아빠는 유년을 그렇게 불쌍하게 보내셨구나. 결핍된 것들 투성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달려오고 할머니께,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성실하게 달려오기만 하셨구나. 아빠는 그렇게 행복한 유년을 보내셨구나. 교회가 울타리가 되어 늘 성경을 옆에 끼고 성경 이야기를 읽어주고 말씀을 들려주는 할머니 곁에서 자신도 아이면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유년을 행복하게 보냈구나 생각하니 그냥 눈물이 주르륵 났다.
아빠,...



아빠, 이건 자기소개서가 아니야,
근데 자서전으로 아빠 책 한 권 써야겠다.
뭔가 찡하고 감동적이네.

울 아빠의 집이 '교회'라는 것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할머니는 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둘째 큰 아버지가 모시고 사셨는데 어쩌다가 우리 집에 올 때면 곤히 자고 있는 내 손과 머리에서 눈물을 뚜둑, 뚜둑, 할머니 기도 소리가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할머니 뭐 해? 짜증을 내고 무서워서 후다닥 도망가기도 했는데, 알 수 없는 방언으로 내 머리와 손을 꼭 쥐고 할머니는 계속 나를 위해, 기도하고 또 울고 기도하셨더랬지. 그런 할머니 아래서, 기도하는 엄마를 두고 우리 아빠가 자라오신 거구나.

잠든 상태에서 너무도 평온한, 아기같이 말간 얼굴로 조용히 잠드신 상태에서 깨끗하게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사촌 언니 오빠들과 만화책을 키득키득 읽고 있으면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울 할머니.






울 아빠는 낯설면서도 친근한, 경상도 사나이였지만 언니와 나- 두 딸들에겐 또 한 없이 자상하기도 했다. 백화점에서 생일마다 나오는 케이크와 과자 박스와 함께(롯데제과 과자 한 박스로 선물이 채워져 있다) 꼭 선물을 잊지 않으셨다. 어쩌다가 귀여운 캐릭터의 가방이나 옷이 나오면 언니와 내 거를 두 개씩 챙겨 오셨다. 결혼기념일엔 잊지 않고 엄마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셨다. 말로 자상하게 표현을 잘하진 않았지만 엄마와 비슷하게 늘 행동으로 우리에게 많은 걸 채워 주셨던 것 같다. 중3 졸업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놓친 적이 없던 아빠. 갖고 싶었던 장난감 (미미인형)에서 점차 재미없는 책(조선왕조실록 같은;;;)으로 선물이 바뀌어서 실망한 적도 있었지만 아빠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언제나 기다려졌다. 멜로디 카드나, 입체 카드, 세상에 처음 보는 것 같은 명화 카드, 각양각색 화려한 카드들이 정갈한 글씨와 함께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있었다.






선재 5살 무렵인가, 아빠가 유치원에서 신을 아이 실내화를 사주겠다고 같이 문방구에 간 적이 있다. 늘 돈을 버시기에(지금도 일을 하시고 돈을 버신다) 항상 아이 먹을 거며, 소소한 선물 같은 것을 자주 사주셨는데 그날은 실내화도 살 겸 같이 치킨도 먹자고 동네를 한 바퀴 빙 돌고 있었다. 문방구 앞에 도착한 우리는 실내화를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맞는 사이즈를 골랐는데 가격 이야기가 나오자, 아빠는 너무 비싸다며 가격을 굳이 깎아 달라고 하셨다. 평소에도 알뜰, 깐깐한 건 알았지만 그날따라 그런 아빠의 태도가 싫었다.

이미 지정된 금액인데 그걸 깎는 게 더 창피해서 그냥 사겠다고 내가 산다고 하면서 계산을 하려고 하니 굳이 계산을 하는 아빠.

하지만 문방구에서 나오자마자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했다.


-어이구, 너는 등신같이 그렇게 다 부르는 대로가 다 가격이냐, 그걸 그대로 다 내면 어떡해.

-...?!

-무조건 더 깎아야지, 무슨 실내화 하나가 그렇게 비싸?! 이그, 바보, 바보 같으니라고.

-아빠, 아빠는 엄마도 장사를 하는데, 이렇게 엄마가 자기 가게에서 계속 몇 백 원 깎아달라고 하는 진상 손님 만나면 좋겠어? 나는 진짜 싫을 거 같은데. 난 그냥 제시된 금액 있으면 그대로 사고 아님 말면 되지, 그냥 안 사면 되잖아.

-거기서 너 엄마 이야기가 왜 나오냐?


거리에서 핀잔도 모자라 갑자기 구박과 등신 취급을 받으니 열이 화아아악 타올랐다. 


3


2


1


후, 5초도 안 참았던 것 같다. 나는 그대로 길바닥 중앙에서 실내화를 내던지고 선재 손목을 잡아당겨서 걸음을 재촉했다.

-아빠, 나 이거 다 필요 없으니까 아빠가 가져가든 말든 마음대로 해. 다 큰 자식한테 등신도 모자라, 이렇게 막말하고 그거 하나 못 깎은 게 바보 소리 들을 일이야? 그것도 내 애 앞에서?

다 필요 없어!


그 순간, 아빠의 동공 지진이 그대로 보였고 다급하게 아빠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거리 중앙에서 누가 지나가든 말든, 보는 사람이 많든 나는 상관없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그득그득 차올라 이걸 쏟아내지 않고는 나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다 필요 없으니까 가져가고 나 붙잡지도 마.

-야야, 어딜 가냐, 간다고, 선재야, 이리 와! (선재의 팔목을 잡으며)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줄게.

-(다시 선재의 반대쪽 팔목을 잡아 낚아챘다) 됐어! 필요 없다고. 안 먹어, 사주지도 마! 나 지금 기분이 엄청 잡치고 뭘 먹을 기분도, 식욕도 다 없으니까 나 좀 내버려 둬.

-나경아, 나경아, 너 무슨 일 있니?

-... 일은 무슨 일? 지금 아빠 때문이잖아! 아빠가 날 화나게 했잖아. 왜 건드리냐고, 그것도 말로!!

-우울증이나 정신이 어디 아픈 건 아니냐?



너무 불같이 화를 낸 내가 이상했던 걸까, 평소에도 싫은 건 싫은 대로 말했지만 이렇게 길거리 중간에서 아이를 사이에 두고 화낸 일은 없기에 아빠는 적잖이 당황했고 내가 뭔가 우울증이나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셨다.

뭐, 그때 당시 늘 조울증에 시달리고 감정기복이 심하긴 했으니까 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두 번의 상담을 통해 내가 우울과 정상인 범주의 경계에 걸쳐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무슨 기준인지 몰라도 우울의 기질은 다분한 상태.

아이 손을 잡고 씩씩 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데 집어던진 실내화를 다시 툭툭 털어서 아빠가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내가 가는 길을 같이 걸으며 내 눈치를 살피는 아빠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왜 이리, 뭐가, 갑자기 이렇게 화가 난 걸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선, 다툼이 있었던 그 문방구엔 다시는 가지 않으리 다짐했다. 몇 분 지나 걸으면서 생각을 해보니 조금은 내 기분을 알 것도 같았다. 아파트가 두 채나 되는 걸 아빠와 엄마의 성실함으로 일군걸 다 잃고 정작 몇 푼을 아끼려 하는 모습에 나는 화가 났던 거구나. 나는 그게 서운했던 거고, 성인이 다 돼서, 내가 일굴 수 있는 모든 조건과 환경이 열렸음에도 과거의 그만큼의 생활을 누리지 못한 게 늘 불만이었던 거구나. 아빠에게 늘 이렇게 집을 날리던 그 순간부터 화가 났던 거구나, 나의 감정을 그제야 직면했다.

걸으면서 이유를 찾아보니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화를 냈는지 생각보다 쉽게 답이 나왔다. 허무하면서도 허탈한, 나도 늘 알고 있던 정답을 찾았다. 이 어쩌지 못하는 분노에 찬 내 성질은 나도 참 싫지만 그래도 내 행동에 이해가 되는 답을 찾아 잠시 안도하기도 했던 것 같다.


-나경아, 저기 저 미용실 보이지? 저기가 아빠가 가는데야. 저기는 이 동네에서 제일 싸게 머리를 잘라줘.

-...

-저긴, 수건도 팔고, 속옷도 파는데 저 집주인도 나를 알아, 동네에서 제일 싸거든.


아빠는 계속해서 동네 곳곳 가장 저렴하면서도 친절한 가게들을 나에게 소개해줬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아도 민망한지 아빠의 홀로 대화는 이어졌다. 원래도 알뜰하신 분인데 아빠의 무리한 투자로 집도 뭐도 다 잃게 됐을 때 아빠라고 왜 충격을 안 받았을까. 하지만 한 번도 도망간 적은 없으셨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아등바등 일하고 일하면서 버텼다. 명예퇴직을 하라는 권고에도 멀리 포항으로 내려가서 몇 년 더 일하는 걸 선택하셨다. 아빠가 오고 갔을 포항으로 가는 버스를 정희와 함께 타고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고 기사님 운전이 거칠어서 아빠가 늘 밤마다 오갔을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별 거 아닌, 이 어느 날의 일화가 얼마 전 다시 생각났다. 저녁을 먹고 그냥 평범한 수다 중에. 몇 년 만에 본 조카 예찬이와 형부 앞에서, 몇 번이고 이 이야기를 들은 우리 신랑 앞에서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펑펑 났다. 아빠도 그만큼 나이를 드시고 연세도 있으신데 지금도 한결같이 일을 하시고 월급을 타시면 꼭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빵이나 간식을 한 아름 친정 집에 사다 놓으신다. 외출해서 우리가 오는 걸 못 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킥 하나라도 꼭 챙겨놓고 나가시는 아빠. 형부도 나를 따라 울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본 우리 아빠가 새벽부터 일을 나가고 힘줄이 곳곳에 튀어나온 다리가 너무 안쓰럽다며, 형부도 보는 걸 나는 왜 못 보고 살았지, 나는 그때 왜 화가 난 본질에 대해 좀 더 성숙하지 못했을까.


내 학비와 용돈까지 전부 다 대주시고 내가 취업할 때쯤 우리 집 가세가 기울긴 했지만 아빠는 그때도 포항으로 발령받은 것도 거부하지 않으시고 돈을 벌기 위해 포항 롯데백화점으로 내려가셨다. 작아진 집에 한 번씩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짜증 내는 엄마 한 마디에도 포항에서 올라오셔서 다시 냉장고를 고치거나, 두꺼비 집을 손 봐주고 몇 시간 앉아서 물도 못 마신 채 포항으로 내려가셨다. 마음에 뭔가 무거운 짐을 안은 듯, 가족들, 자식들 눈치 보며 죄스럽게 살아오신 건 아닐까.


어린 시절 사람들이 나에게 "아빠 닮았다"라고 하면 그 말이 너무 싫어서 엉엉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아빠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머쓱해했다. 한두 번이 아니고 매번 그러니 어느 날은 아빠가 나를 따로 부르셔서 혼내셨다.


-넌, 네가, 네가 내 딸인데도 날 닮았다는 게 그리 싫은 거냐?

-그럼 싫지! 아빤 남자고, 나는 여잔데! 엄마가 더 이쁘잖아. 아빤 못생겼어! 엉엉엉


내가 늘 옳은 소리를 해서, 내 말이 옳아서 아빠가 다른 사람들에게 잔소리 백 번을 해도 내 앞에선 한 두마디도 안 하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상동오빠가 그러는데 내가 늘 옳기 때문이 아니라 장인 어른 한 마디에 열 마디 덤벼들 기세니 그냥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피하는 걸 모르냐고.

세상은 참 반전 투성이다.








울 아빠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인 바로 '희락'이다.


희락(喜樂) 기쁨과 즐거움


JOY


맞아, 얼마 전 나도 나를 '기쁨이'라고 했지. 그런 글도 썼는데. 나는 아무래도 아빠를 빼다 박았나 보다.

아빠랑 다투고 싫어졌을 때도 아빠가 왠지 이 이름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아빠 이름을 떠올리면 떠올리는 그 자체로도 화가 누그러지는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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