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 에세이 쓰기 3주간의 여정을 마치며 with 이너조이
늘 나에 대해 궁금했다. 기억은 어렴풋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항상 말랑 푹신한 한쪽 허벅지를 내어주며 귀를 파주었는데 아래로 깔린 손 말고 반대편 손으론 내 귀를 딱 붙잡고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핀셋에 불빛 달린 기계도 없었을 때라 늘 내 손으로 귀를 끝까지 당기면 엄마는 내 속을 환하게 보시곤 귓밥이 엄청 많네, 많아, 하면서 요정이 쓸 법한 작고 긴 티스푼 모양의 귀이개로 꼼꼼하게 귀지를 파주셨다. 그 시간이 좋았다. 내가 볼 수도 없는 귀지까지 말끔하게 파주는 엄마가 있어서 좋았다. 때론 너무 깊숙하게 귀이개가 나를 찔러서 고막까지 닿을 것 같은 통증에 난리를 치기도 했다.
'아아, 아프다고, 좀 그만 좀 해! 귀 후비개가 끝까지 닿아서 고막에 피 날 것 같아!' 했지만 사실은 그래놓고도 또다시 엄마 허벅지에 척하고 눕게 되는 마성의 매력이 있는 귀 파는 시간.
귀지를 파다가 소르르 잠든 기억도 좋았고, 늘 해가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도란도란 엄마랑 밀착되고 가까이 붙어있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또 내 속의 먼지와 엉킨 찌꺼기들이 하나씩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 나는.
서른 살 무렵부터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은 조금 더 많아졌고 형태가 변했다. 내 마음을 일기장에 담거나 친구와 신랑에게 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결혼후보다 출산 후에 훨씬 더 강하게 이런 질문을 자주 했다.
나는 지금 왜 화를 내고 있지? (이 때도 감정 주체가 잘 안 된 모양이다)
지금 내 감정은 어떤 거지?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지?
나는 뭘 할 때 가장 즐거운 걸까?
귀지를 파는 것처럼 내 속을 꺼낸다는 게 결코 즐겁기만 한 경험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때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잘못 들어간 귀이개처럼 비명을 지를지도 모르고, 아프고, 이 정도밖에 안 된 게 나라니, 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에 엉엉 운 적도 많다. 그래도 그 결과가 나를 찾아 헤맸던 그 여정이, 나에겐 후련하고 좋고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프롤. 자기 탐구의 동기, 마음, 시작 ★
강점에세이 - 1. 고유성
강점에세이 - 2. 경험자원
강점에세이 - 3. 벽
에필. 사람과 일을 향해 나아감 (코칭 후기) ★
나를 포함해 6명이 참여했고 첫 시작과 마지막에 한 번씩 줌으로 이너조이님께서 가이드와 코칭을 해주셨다. 앞서 함께 한 '에니어그램 코칭'이 정말 좋았기에 더 깊이 있게 내면을 탐구해 보자 생각하고 선뜻했으나 세 가지 주제는 나에게 즐거우면서도 버거웠다. 왜냐?
▶ 너무 할 말이 많아 끝이 나질 않아서. ㅋㅋㅋㅋ 재밌고 즐거운데 끝은 나질 않아 끝내기 싫어서 아쉬웠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나는 이런 글을 쓴 것도 처음이라 한 챕터씩 다시 따로따로 좀 더 세밀하게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자꾸 생겼다.
Note. 세상에, 이렇게나 길게 쓰고? 뭘 또 쓰냐, 할 수도 있지만 실패 경험 같은 건 대강 떠오르는 사건만도 몇 개가 되는데 따로 모아놓아도 어마어마한 글감인데, 나에겐. ㅎㅎㅎ
이너조이님께선 체계적으로 중점을 두어야 할 사항들도 꼼꼼하고 세밀하게 가이드해 주셨는데 글 쓰는 과정은 즐겁고 쉬웠지만 역시나 주요 맞춤법 띄어쓰기, 오탈자만 체크하는 나에게 다시 꺼내서 내 글을 보고 또 보는 건 버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점 에세이를 쓰면서 이 과정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를 좀 더 촘촘하게 살피고 발견하고, 더 쓰고 싶은 부분이 나온다면 언제든 움직여 보는 건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고.
아앗, 나도 발견했다. 이너조이님의 강점
쑥스러워할지도 모르지만, 이너조이님이 나의 강점을 착착 정리해 주신 것처럼 나도 이너조이님에 대해 몇 자 적어봐야겠다.(아, 즐거워라~)
이너조이님은 자신도 매년 강점 에세이 쓰기에 참여하고 탐구형 글쓰기, 회고 글쓰기를 해마다 척척 정리해 오셨다. 오랜 시간 꾸준히 글쓰기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경험만큼 좋은 게 있을까?)
3주간 주는 친절한 가이드는 이너조이님의 색깔이 분명하다.
내가 필사 모임에 참여했을 때 첫날 첫 가이드 글에도 벌써 눈물이 번질 만큼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 적이 있었다. 아, 이분은 단단하고 오랫동안 읽고 탐구하고 글 쓰기를 갈망하신 분이구나. 필사모임에서 마저 자신의 필사를 공개하며 늘 동참해 주신 리더.
누가 너의 좋은 리더, 선생님이냐고 묻는다면 이너조이님처럼 같이 달려주고 넘어져보고 멀리 갔지만 자기도 거기에서 계속 뛰어주는 사람이라고 답하고 싶다.
코칭 대화는 담백했지만 산만한 내 화법에도 늘 중심으로 돌아왔으며 여러 차례 내 마음을 구석구석 살펴주고 끝까지 봐주었기에 나도 몰랐던 놓쳤던 내 부분을 대화하며 발견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약점 벽, 한계 중 하나가 끈기가 없고 첫 시작만 반짝한다는 건데 실제로 폭발하듯 글이 터진 이 일 년간 10년 동안 멈추고 안 썼던 나의 글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것저것 써보고 싶은 글감도 많고 해보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그만큼 많았다. 그러나 마음 한쪽엔 '언젠가 다 싫증 나서 놔 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도 도사리고 있었다. 흥미가 떨어지면 싫증도 과감하게 빠르게 놓아버리는 편이라. 이런 마음을 한 겹 씩 꺼내다 보니,
-아, 이렇게 폭발할 때 뭔가 기반을 다지고 이런 루틴으로 훈련을 해놓고 바짝 해놓은 걸로 반짝해서 꾸준히 하면 되겠네요, 하는 생각이 파바바바박 (쏟아내고 마음껏 쓴 초반의 글들로 차고 넘치게 쌓아가고 싶다는, 대충 이런 바람)
Note. (아, 이렇게 써놓고 보니 웃기다. 말로는 엄청 간단하고 조화로운 작업 같은데. ㅋㅋㅋㅋ )
내 생각에 맞장구치고 웃어주던 이너조이님, 감사합니다.
함께 '라이프 코칭'을 받으며 맺게 된 작은 인연이 글쓰기 모임으로, 독서 모임으로 더 쫀쫀한 연결을 이어 가고 있다. 멀리서나마 날 응원하겠다고 한 첫 손글씨 편지가 누구보다 든든하게 가까이에서 나를 세워주고 웃게 만드는 크고 귀한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와 닮은 듯 다른 듯 잔잔하고 요동치지 않는 단단함과 강인함을 가진 이너조이님과의 코칭은 나에게 행복한 여름을 선물해 줬다. 3주 차 벽을 쓸 때는 내면에 쉽게 자주 넘어지는 나를 다시 또 바라봐야 한다는 게 괴롭고 싫었지만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됐는가,라는 자괴감이 아닌 한계와 두려움, 불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아간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애정해 주고 지지해 줬던 가족들, 식구들, 든든한 친구들의 모습이, 내가 좋아한 책과 영화가, 기도하려고 모은 두 손이 떠올랐다.
내가 자기애가 높았던 것도 실은 누군가 나를 백 프로 충족시킬 만큼 사랑을 주지 못할 만큼 나는 어딘가 결핍되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냥 나라도 마음껏 나를 사랑해 주고 껴안아줘야지, 나한테 있는 대로 다 솔직해져서 나는 나를 똑바로 봐야지, 두려워도 불안해도 나한테 만큼은 숨기지 말아야지 결심했던 날들이 쌓여갔다. 이제 그 생각은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
난 특별해 딱 너만큼
넌 소중해 딱 나만큼
어느 시인이 강연에서 한 말인데 올여름, 강점 코칭을 받으면서 나의 마음이, 세상을 향한 눈이 이렇게 열리면 좋겠다고 소망했는데 맞아, 세상의 주인공은 나지! 그리고 네 세상의 주인공도 너야!로 또 바뀌는 과정이 있음을 알았다.
P.S. 이너조이님, 가장 추운 날 겨울에 종묘까지 헤매며 걸었던 저를 솔방울 베이커리에서 기다려주셨죠. 함께한 우리 선재와도 헤어질 때 한 번 포옹해 주고. 눈을 빛내며 제 글을 재밌게 읽었다고 한 그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꺼내면 꺼낼수록 어떤 상처는 뼈와 혈관과 맞닿아 있어서 잘못하면 터지기도 한다는데 전 그럼에도 자꾸 이야기가 하고 싶더라고요. 이야기가 많은 사람, 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저라고 이야기해 줘서 감사해요. 행복했던 우리의 삼주도 잊지 않을게요.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앤나우 N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