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도...
아이에게 실패를 너무도 쉽게 말했다. 나는 어디서 보고 주워들은 게 많은 사람이라 성공 이야기, 1등 이야기보다
'실패'이야기에 아이를 더 칭찬해 주고 도전 의식을 높여주는 게 좋다고 해서 뭐든지 시도했다는 의미로, 일단 '행동'했다는 걸 높이 사주는 사람처럼 굴었다.
... 부끄럽다.
막상 해보니 나는 몇 번 응모하지도 않은 글에 (두 번 응모하고 두 번 다 떨어졌는데)
손가락 다섯 개 중 하나에 반 도 안 접힌 두 번 좌절을 맛보고서도 우울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면서(이틀? 이 주일이 멍했던 것 같은데)
아이에게는 도전해라 도전해라, 계속 무한도전을 외쳤던 건 아닐까.
실패하고 포기하라고 말하는 어른도 없거니와
실패해라, 그리고 속상하면 눈물 나고 화났겠다, 때려치워도 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는 세상.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도
성공을 할 때까지 실패를 해보고
그 성공의 목표에만 다가갈 때까지 허용되는 실패가 가치 있다는 걸까.
나의 실패에는 잔뜩 잔털까지 세우고 초조해했으면서도 너의 실패에 둔감했던 나.
달리기에 꼴찌 한 것도 엄청난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실패를 너무 쉽게
괜찮아, 잘했어라고 거창하게 말한 건 아닌지 생각해 봤다.
아니, 대체 뭐가 괜찮은 건데?
대체 뭐가 좋다는 건데?
여러 번 시도했지만 똑같은 결과
변화 없이 멈춰진 결과표
허무한 순간, 멍하게 초점 없는 눈, 축 처진 어깨.
좀 울어도 돼, 굳이 거기에서 교훈을 찾지 말자,
그냥 도전도 좋은데 포기하는 게 또 실패를 말하는 것도 아니야.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선재 : 엄마, 2학기 반장에도 나갈 거예요! 이번엔 앞에서 뭐라고 할까요?
나 : 선재야, 꼭 나가고 싶어? 떨어질 수도 있는 건데. (엄마는 사실 네가 안 나갔으면 했거든, 살짝)
선재 : 그래도 나가보고 싶어요.
도전 도전! 을 외치는 엄마도 관계에 있어선 움츠려 든 걸까, 차마 말리지는 못하고 따로 발표문을 살펴주지도 않고 아이 스스로에게 선택을 하게 했다.
하지만 반장 선거 당일, 집안일을 하면서 차를 마시면서도 나는 결과가 궁금하고 기다려졌던 것 같다. 띠로릭, 철커덕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리고 후다닥 뛰어오는 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었는데 너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엄마, 내가 뽑은 애들이 반장이랑 부반장이 다 됐어!
라는 네 말을 듣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1학기 때 보다 새로운 표도 늘어났고 누군가 나를 찍어줬다는 이야기, 자기는 그 애를 왜 뽑아줬는지 재잘재잘 거리는 네 목소리에 원래 아이 앞에서도 별 거 아닌 일에도 곧잘 눈물이 터져서 잘 우는 엄마인데도 그날은 왠지 울면 안 될 것 같아, 후다닥 화장실로 가서 떨어지는 눈물을 닦았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수습하고 빨개진 코와 눈을 여러 번 비비며 재빠르게 양손으로 탁탁 볼을 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 나는
- 안 속상해? 나라면 속상했을 것 같은데...
아의 등을 몇 번 쓰다듬어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 오후, 숙제를 하려고 꺼낸 아이 알림장과 노트를 확인하는데 뭔가 잘려있는 종이 조각을 다시 붙여놓은 흔적에 눈이 가서 뭐지? 하고 들여다보는데
나름 자기가 짠 소감문까지, 이내 부끄러워 던 걸까? 스카치테이프로 다시 붙여놓은 흔적까지 있었다. ㅎㅎㅎ
9월에 있었던 일인데 이제야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흘려보내는 감정 속에 뭔가 꽉 막힌 게 떠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보다 더 실패에 해맑은 아이에게 내가 그동안 무수하게 했던 말들도 떠올랐던 것 같다.
실패를 대하는 자세에 늘 조마조마하고 걱정했던 건 아이가 아닌 나였구나 하는 마음.
사실, 엄마는 말이야, 떨어지면 괜히 내가 더 속상할까 봐 너에게 나가지 말라고도 했는데 너는 나보다 낫구나, 잘 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기도 했어, 선재야.
별로 노력하지도 않았던 두 번의 도전에 엄마는 집안일을 하다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다가도 우울했는데, 분주한 틈에서도 실패를 곱씹었는데 도전에 실패하는 네 이야기가 너무 깊은 감정이 이입되고 지나치게 슬퍼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웃음이 났어.
엄마, 그래도 선생님이 도전해 준 모든 후보들에게 손뼉 쳐주라고 했어.
도전하는 마음들은 훌륭하고 멋진 거라고
나 오늘 박수도 받았다!
나도 너한테 손뼉 쳐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유년에 남는 건 '정서'뿐이라는데 나는 아이의 상황을 대하는 '태도'에서 반대로 정서를 배우고 감동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1학기 때도 떨어진 반장선거보다 1인 1역으로 칠판지우개 담당으로 칠판 지우기에 뽑혔다는 말에 실망을 했는데 그 뒤에도 너는 나를 멍하게 했었지.
남들이 하는 것보다 뭔가 좀 어려운 걸 해서 나도 보탬이 되고 싶었어.
선재야, 멈춰있다고 해서 성장을 안 하는 것도 아니야.
엄마는 늘 친구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고 떠드는 아이 이름 적는 게 좋아서 설치다 보니 매번 반장이 됐는데(사실 엄마가 제일 말이 많기도 했어;;ㅋㅋㅋ) 그걸 떨어지면 너무 좌절스럽고 슬플 거라고 상상만 했던 것 같아. 웃기지? 전부 엄마 기준인데 말이야. 사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은 흘러가고 또 내가 달라진 것도 아픈 것도 아닌데 말이야.
언젠가 네가 《실패도감》이라고 도서관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 기억나?
누군가의 성공 이야기, 실패를 통한 성공 이야기만 거기 적혀 있었던 건 아니라 엄마도 너랑 같이 재밌게 읽었잖아. 안데르센은 연이어 사랑에 실패하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만든 회사인데도 쫓겨난 적이 있었어. 어디 사람뿐이야, 동물의 왕 사자도 매번 사냥에서 실패서 쫄쫄 굶고 입안 가득 도토리를 넣어도 자기가 숨긴 또 다른 도토리를 찾지 못해서 헤매는 다람쥐 이야기는 어떻고? 실패해서 혹은 실수로 죽는 사람들, 실패해서 그게 자연스러운 또 다른 작품이 되는 이야기까지... 엄마는 그냥 이 책이 좋더라고. 성공 이야기 대신 실패와 실수 가득 이야기로 채워진 걸 보면서 누구나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다른 일에선 좌절을 맛보고 실패하고 그렇게 지나가기도 하면서 사는 거라고 말이야.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고 미루는 걸 자꾸 후회하기보다는 두려움을 덜어내고 조금씩 한 걸음씩 나가는 네 모습을 통해 엄마가 실패도감을 읽었을 때 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었어.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가장 어려운 '꾸준함'을 기르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대충'이란 마음도 하나 장착하고 엄마도 도전해 봐야지.
꾸준히 하기 위해선 대충이라도 '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실패가 두려운 나는 어쩌면 대충이라도 내 성에 안 차는 게 더 싫어서 회피하고 모른 척했던 건 아닐까.
*오랜만에 돌아온 브런치,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들도, 가끔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내 글을 기다렸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에게도 돌아온 기분이 든다. 나는 글 쓰는 근육을 좀 길러보고 싶다. 밀린 글을 읽어볼 생각에도 신났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