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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08. 2024

서점의 시대

강성호



_조선에 반전사상을 심어준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경우, 독일에서는 출간 당시 금서였으나 조선에서는 길을 걷다가 마주친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책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소설가 박태원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어디 잠깐 들어가세."
 조는 한 책사 안으로 들어갔다. 벌려 놓인 책들을 두리번 둘러보더니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집어 들고 준호를 돌아보았다.
 "이게 요새 유행인가 보더군."
 "유행이라? 하하."
 조는 점원이 서있는 곳으로 갔다.
 "얼마요?"
 "고맙습니다. 네, 70전입니다."
 "50 전만 합시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이 책은 잘 팔리니깐 어디서든 70전 덜 주고는 못 사실 것입니다. 정가는 1원 50 전이나 하지 않습니까."
 "누가 정가를 모른댔나. 하여튼 70전은 비싸니 50 전만 합시다."
 "안됩니다."
 "그럼, 내가 다 읽고 나서 거저 갖다 줄 테니 50 전만 합시다. 헌책하나 며칠 세 주고 50 전이면 땡 아니야?"
 "헤헤.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꼭 나는 50전에 살 작정인데..."
 "글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은 미안합니다마는, 이 책에 한해서는 에누리할 수 없습니다."
조는 점원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래도 나는 꼭 50전에 사고 말걸. 그 대신 당신 서점을 위해서 따로 20전은 기부를 하기로 하지."
 
 이는 박태원이 쓴 중편소설 반년 간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막무가내로 책값을 할인해 달라는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서점 직원의 고충이 느껴지면서도, 반전 문학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당시에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에게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이라는 작품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의 심리를 독특하게 그린 실험적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문화계의 핵심 인물인 그가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삽화까지 그린 반년 간. 은 본인의 도쿄 유학 시절을 소재로 삼은작품이다.



 
 어린이 전문서점이 전국각지에 세워진다. 언론에서는 1998년에 60여 곳의 어린이 전문서점이 들어섰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어린이 전문서점은 일종의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확산되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수원에서는 초방의 영향으로 '꿈의 나라'라는 어린이 전문서점이 생겼는데, 이곳을 아지트 삼아 그림책 읽기 모임인 '해님달님'이 꾸려진다. 그리고 모임의 멤버 중 하나가 부산에 '책과 아이들'이라는 서점을 차린다. 초방→꿈의 나라→해님달님→책과 아이들로 이어지는 그림책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셈이다. 어린이 전문서점의 붐은 흡사 2010년대 이후의 독립서점 열풍과 견줄 만했고, 서점 전문화의 불을 지피는 계기도 되었다. 이때부터 서점은 지역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초방의 경우 분기마다 그림책 전시회를 열었고, 정기적으로 추천도서 목록을 발간했다. 각 지역에서 '작은 도서방열기운동'을 추진한 점도 이채로운데, 서점 공간이 문화운동의 구심점으로 활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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