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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May 09. 2024

책방 <서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



_가좌역에서 내리면 가깝지만 합정역에서 내려서 걸었다. 누가 나이 들수록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던데, 나는 그 말에 해당하는 것 같다.

 거주지의 가로수는 키 작은 이팝나무인데 서울의 가로수들은 키가 큰 양버즘나무들이 가득하다. 나무기둥을 얼룩덜룩하게 아크릴물감을 덧바르고 덧바른듯한 모양이 아름다웠다. 벌써 그들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내 키만 한 새빨간 우체통을 보고 저기에 편지를 얼마나 담고 있을까 생각 하는데 좀 더 걸으니 공중전화도 보였다. 반가운 것들.

 곳곳에 옮겨 심지 못한 은행나무가 삐딱하게 서서 나를 보고 어딜 가냐고 하는 것 같았다.


 합정에서 책방서로를 가는 길. 주택가에는 담장밖을 쏟아져 나온 붉은 장미들이 흔들흔들. 대문이 마치 그 집의 얼굴인 마냥 깨끗하게 관리들을 하셨다. 우리 지역에서는 다 죽어버린 낡은 제본가게가 반가웠다.

 금은방 모서리에 가져다 놓은 수국은 이제 여름 시작인데 벌써 만개해서는 어여뻤다. 어떤 집은 담장 위에 카랑코에 화분을 주렁주렁.


 도착한 책방의 책들은 출판사별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지런하게 그릇별로 차곡차곡 담아둔 반찬들처럼.




 책방을 왔으니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책을 고르는 일이다. 오늘은 시 쓰기 수업이 있는 날이고, 남지은 시인 시집을 훑어보니 재미있어서 '그림 없는 그림책'을 골랐다. 병렬독서 자리를 전부 비워둔상태라 단편소설집이 보고 싶었다. 책방지기님한테 이주란 작가의 소설 '별일은 없고요?'를 추천을 받았다.






 태어나서 취재는 처음이다. 등 뒤로 식은땀이 났다.

 "SNS에서 어제 아는척했던 사람이 저예요."

 다행히 기분이 상하시지 않은 것 같았다. 시간을 잠깐 내주십사 부탁드렸다. SNS에서 친구들이 책방지기님들한테 궁금한 질문들 모아 온 메모를 켰다. 친절히 답변해 주셨다.



서점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요?

 이중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 보시는 간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라는 뜻도 있지만 글 서(書), 길 로(路). 글로 이루어진, 활자로 된 길에서 만나자. 이런 느낌으로 지었습니다.




책방을 열게 되신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A.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책방을 한 지 8년 넘었으니까, 14년도부터 설명해야겠네요. 회사에서 퇴근하면 시청에서 종로로 가는 사이에 영풍문고가 있었고요, 종로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교보문고가 있었어요. 책을 읽고 또 읽는 게 낙이었는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매대에 책이 올라오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지만 그때는 그 매대가 중요했잖아요. 오프라인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떡하니 북노매드 출판사의 "우리 독립책방"이라는 책이 올라와있더라고요. 14년도인가 15년도인가 그랬을 거예요. 서점지기님들 인터뷰를 보고 흔들렸죠.





그리고 가수 요조 씨도 15년도에 서울에서 책방을 시작했었는데, 그 책방자리가 친구네 상가 자리였거든요. 좋아하는 가수가 친구네 가게에서 책방을 연다니! 뭔가 신기하기도 해서 보러 갔어요.

 서점이 정말 작은 규모였거든요? 그런데 엄청 바글바글한 거예요 사람들이.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도 책방 하고 싶다.'

 16년도 회사에 개인적으로 위기가 찾아왔어요. 직장상사가 교체되면서 너무 힘들어진 거죠. 그런데 나는 책방을 마침 하고 싶고. 2차 위기가 왔어요.

 

 스토리지 북 앤 필름 있잖아요. 거긴 정말 독립서점이에요. 해방촌을 갔습니다. ISBN 없는 자비출판서적들이 많아요. 산 중턱 정말 말도 안 되는 위치에 저기에 서점이 있다고??? 하는 곳에 있어요. 충격받았죠.


 그 후에, 지금은 폐업한 만일서점을 좋아했거든요, 땡스북스도 아시죠? 네. 만일대표님이랑 땡스북스 대표님, 여러 대표님들이 강의를 했었어요.




다들 하지 마라. 정신 차려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땡스북스 대표님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하고 싶으시면 해야죠.




 그 뒤로는 서울 곳곳을 누비며 집이랑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Q. 도서정가제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당장 해결이 나오지 않는 문제지만 동네서점을 방패막이로 쓰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반대로, 공급율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정말 죄송하게도 아니요. 저는 평범한 일반인이에요. 대형서점들은 공급율이 낮습니다. 공급율이 낮다는 건 책을 저렴하게 구매한다는 거예요. 작은 책방은 달라요. 대형책방보다  더 높게. 현금매입이고, 반품불가 조건을 걸기도 합니다. 덕분에 이번 생에는 책을 원 없이 사봤어요. 서점이 도서관인 것처럼 책을 쫙 펼치고 훼손시키시면 그건 저희가 자비로 사야 합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박태원이 쓴 중편소설 반년 간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 생각났다.


 "어디 잠깐 들어가세."
조는 한 책사 안으로 들어갔다. 벌려 놓인 책들을 두리번 둘러보더니 서부전선 이상 없다. 를 집어 들고 준호를 돌아보았다.
"이게 요새 유행인가 보더군."
"유행이라? 하하."
"하여튼 많이들 읽는 모양 아니야?'"
"그는 그렇지."
조는 점원이 서있는 곳으로 갔다.
"얼마요?"
"고맙습니다. 네, 70전입니다."
"50 전만 합시다."
"그렇게는 안 됩니다. 이 책은 잘 팔리니깐 어디서든 70전 덜 주고는 못 사실 것입니다. 정가는 1원 50 전이나 하지 않습니까."
"누가 정가를 모른댔나. 하여튼 70전은 비싸니 50 전만 합시다."
"안됩니다."
"그럼, 내가 다 읽고 나서 거저 갖다 줄 테니 50 전만 합시다. 헌책하나 며칠 세 주고 50 전이면 땡 아니야?"
"헤헤.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꼭 나는 50전에 살 작정인데..."
"글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은 미안합니다마는, 이 책에 한해서는 에누리할 수 없습니다."
조는 점원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래도 나는 꼭 50전에 사고 말걸. 그 대신 당신 서점을 위해서 따로 20전은 기부를 하기로 하지."
"헤헤헤헤. 결국 마찬가지 아닙니까?"
조는 책을 사 가지고 나왔다.

 이는 막무가내로 책값을 할인해 달라는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서점 직원의 고충이 느껴지면서도, 반전 문학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당시에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에게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이라는 작품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의 심리를 독특하게 그린 실험적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문화계의 핵심 인물인 그가 <동아일보>에 연재하며 삽화까지 그린 반년 간은 본인의 도쿄 유학 시절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책방지기님들이 생각났다.



 학원 가야 하는 일정만 아니었다면 전부 메모해 왔을 텐데, 너무 아까웠다.

 다음에 친구랑 놀러 올게요. 인터뷰 너무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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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토 12:00-20:00
일요일 정기휴무(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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