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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23. 2021

연애가 취미

5. 함께하는 취미

  “어디서 만나요?”

  어쩌다 연애 얘기를 나누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다. 직장생활을 하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이직이나 회사 내 조직 이동을 하지 않는 한 만나는 사람들은 고정되어있을뿐더러, 연령대가 비슷 사람은 그중에서 또 추려진다. 인맥에 기대어 소개팅을 노려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호의를 기다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종종 지인들에게 취미를 추천한다. 


  연애를 쉬면 불안할 때가 있었다. 한때는 연애하지 않으면 삶에 의욕이 없었다. 연애하지 않으면 여자로서의 가치가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남자 친구가 없을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가면 좋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허전했다. 나 혼자로는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연애하지 않으면 썸이라도 타고 있어야 했다. 


  주위에서 몇 번 소개를 해줬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지만, 분명한 목적이 정해진 만남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는 한정적이었다. 다른 계기로 만났다면 이성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가깝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아쉬운 적도 있었다. 게다가 관계로 이어질 때도, 이어지지 않을 때도 소개팅이 혹시 주선자와의 관계에 흠집이 날까 봐 신경이 쓰였다. 만남부터 마무리까지 조심스러웠다.


  편한 마음으로 연애 상대를 찾으려고 데이트 앱에 가입했다. 실물보다 잘 나온 사진을 고르고 프로필을 작성하는 것까지는 갖은 정성을 들였지만, 이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매일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상대방의 프로필과 넘쳐나는 대화창의 알람에 초반의 간절함이 사라졌다. 잠깐 마음은 풍요로웠지만, 실체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을 가볍게 여기고 관계를 소모했다. 4시에 만날 누군가를 생각하며 3시부터 행복하기를 꿈꿨지만, 연락이 와도 시큰둥했다. 비슷한 맥락의 반복되는 대화에 지쳐갔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게다가 어쩌다 앱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매칭이라도 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땐 연애가 취미였다. 그렇게라도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재미있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서 연애까지 이르더라도, 연애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연애 욕구는 관계가 시작하는 순간 짐이었다. 평소에 차곡차곡 쌓아 온 기대들을 관계에서 당연하게 요구하면서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내가 연애에서 기대한 것들이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과 내 기대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연애를 그만두고 취미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취미에 입문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자든, 여자든 잘 통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일부러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만나는 횟수나 상황에 따라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기도 하고, 편한 관계가 되거나 이성 관계로 바뀌기도 했다. 소개팅처럼 기한이 정해진 만남이 아니라서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상대방을 알아갈 수 있었다. 관계가 연애로 이어지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가졌던 좋은 감정은 관계 속에 그대로 남아서 좋은 인간관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연애에서 취미는 둘만의 공통의 언어와 같았다. 오해나 갈등으로 싸우거나 관계가 멀어져도, 취미생활을 하면서 좋은 감정을 나누면 갈등이 사르르 녹았다.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 돌아올 길이 있었다. 게다가 취미는 관심사나 가치관과 이어져서, 같은 취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취미 뒤에 숨겨진 관심사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관계가 깊어진 후에야 관심사나 가치관의 차이가 피부에 와 닿지만, 취미가 맞으면 상대방의 성향이나 가치관도 허용 가능한 수준일 때가 많았다. 


  연애하면서 성장하는 선순환이 좋았다. 연애하는 시간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남자 친구라는 역할 외에도 취미생활의 동반자이자 경쟁자로서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었다. 이성 친구와 취미생활을 같이하면서 밥 먹고 영화 보는 틀에 박힌 데이트 코스를 벗어났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데이트가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면서 관계도 깊어졌다.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하는 취미생활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연애 후에는 취미 실력이 월등히 늘었다. 


  주위를 보면 취미생활을 하다가 이성 친구를 만나면 미리부터 헤어진 후를 고민한다. 헤어지면서 취미를 그만두는 때도 있고, 헤어진 후에 불편하게 마주치는 일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취미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에 헤어질 때도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성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양자택일을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한때 가까웠던 누군가가 이따금 마주치는 한 사람으로 돌아간 것일 뿐이다.


  취미로 만나는 사람은 취미생활에 가끔씩 주어지는 깜짝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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