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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24. 2021

사람을 글로 배워서..

심리테스트의 명과 암

 사람 마음을 읽기 쉬운 세상이다. TV,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뿐만 아니라 식탁 위의 대화 주제로도 심리테스트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별다른 배경 설명이 없어도 다들 상식으로 알고 있고, 자신의 유형을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그중에는 일명 ‘심리 덕후’도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심리테스트를 직접 해주고 간단한 해석을 해주기도 한다. 나 또한 심리 덕후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지만 관계가 서툴렀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거나 분위기를 띄우려고 한 말이 선을 넘거나 대화의 흐름이나 맥락을 벗어날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거나 내 말과 행동이 오해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주눅 들고 상처 받았다. 혼자 낙심하고 분노하다 피곤하고 지쳤다. 사람들이 어려웠다. 사람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있지만 통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무리 속에서 분위기를 잘 이끄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다. 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하는 법, 적재적소에 멋있는 말을 하는 법, 센스 있는 행동을 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책, 강연, 수업을 찾아다녔다. 학교 공부처럼 사람을 글로 배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때 접한 게 심리테스트였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에니어그램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함께하면서도 내가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욕망과 결핍, 사고방식이 에니어그램으로 설명이 되었다. 그때 만나던 이성 친구나 가까운 친구들은 짠 것처럼 나와 같은 유형이었다. 세상에는 나와 잘 맞거나 맞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과 대화가 겉도는 이유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었다. 성향에 따라 언어가 달랐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있던 죄책감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되었다. 나와 주위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컨디션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이해했다. 사람들도 나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을 이해하면서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에니어그램이 익숙해지고 난 후 MBTI를 접했다. MBTI는 에니어그램보다 구체적인 4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MBTI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좀 더 큰 틀에서 직관적으로 이해되었다. 동시에 내가 어떤 부분이 발달했는지, 혹은 치우쳤는지 드러났다. 


  사람을 해석하는 도구들을 도장찍기처럼 에니어그램, MBTI, DISC, 기질 테스트, 강점 진단, 사상체질, 명리학까지 하나씩 배웠다. 테스트마다 목적과 사람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달랐다. 사람들을 크게 크게 보는 법을 배웠다. 쓸 줄 아는 도구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사람이 점점 입체적으로 보였다. 


  한창 심리테스트에 빠졌을 때는 만나는 사람들을 도구에 대입했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할 것 없이 최소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테스트를 해주고 결과를 모았다. 나중엔 테스트지를 들이대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사람의 결이 느껴졌다. 


  심리 도구를 잘 다룬다고 해서 사람을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분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부류라고 해서 완전히 같지 않았다. 여러 가지 도구를 써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었다. 사람들을 애초에 사람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사람은 저마다의 환경과 역사 속에서 얽매이고 성장하는 고유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리 도구에 의지해서 사람들을 쉽게 단정 짓고 판단하다가 스스로 생각의 덫에 빠지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을 잘 안다고 인간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이해한 후에도 내 감정을 다루는 것이 어려웠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받아들 일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관계에 문제라도 생기면 사람들을 미워하고 피하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심리테스트는 도움이 되었다.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머리로나마 이해했다. 심리진단은 좋은 가이드였다.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당장 바뀌는 것은 없었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머리로 이해한 상대방의 시각과 가치관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좋은 상황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가벼운 배려였지만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시각을 존중하는 것은 의지가 필요했다.


 상대방의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면서 나의 일방적인 호의가 상대에 따라서 강요나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사람들에게 강요했던 나의 기대와 의도치 않게 사람들에게 준 상처들이 보였다. 그리고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받았던 상처들이 보였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겸허해졌다. 비로소 사람들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상대와 갈등이 생기거나, 밉거나 외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혼자만의 노력이 쌓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트러블이 줄었다.


  심리테스트를 배운 것은 주위 사람들과 가까워지려는 내 나름의 시도와 노력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도구는 없었지만, 도구와 씨름하는 동안 내 시선은 사람들을 향했다. 심리테스트는 내가 지치지 않고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에게 관심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기술을 원했지만, 관계는 기술보다 시간의 영역이었다. 관계는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려는 관심과 노력으로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었다. 관계는 감정과 느낌의 교류였다. 말이나 행동은 수단이었다. 수단이 어설퍼도 진심은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상, 지금도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사람들이 편하다. 글로 사람을 배우려고 했던 예전의 나에게 잔잔한 격려를 건네고 싶다. 그것 또한 과정이었다. 괴테의 말처럼 모든 일은 쉬워지기 전에는 어려운 법이다. 등산길은 다르더라도 정상에서 만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심리테스트가 지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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