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의 의미
내가 취미 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주위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먹고살 만한가 보네”, “자기 계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네가 심심하구나.”, “그럴 시간에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 해보는 건 어때?”, “마음이 허한가 보네. 결혼할 때가 됐나 보다.” 나를 아껴주는 나름의 방식일 테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취미를 바라보는 시선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직장 생활하면서 내 주관이 없을 때는 삶이 어려웠다. 누군가가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에 뿌리 째 흔들렸다.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좋다는 말에 갈대처럼 끌려다닐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자기혐오가 올라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내가 부끄러웠다.
인생에 능숙해지고 싶었다. 얼른 통찰력이 생겨서 삶이 쉬워졌으면 했다. 사람들의 말과 정보에 의존해서 ‘더 좋은 것’을 선별하는 것은 끝이 없는 작업이었다. 내 것을 찾으려면 몸으로 하나씩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취미를 하나씩 만들었다. 인생 처음으로 뚜렷한 목표 없이 순수한 배움을 시작했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서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최초의 시도였다.
시작부터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취미가 있는가 하면, 아닌 것도 있었다. 처음 취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취미가 나와 맞는지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몇 개의 취미를 거치면서 그 시간은 점점 줄었다. 예전에 꽃꽂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자연을 좋아하는지라 꽃꽂이도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막상 꽃을 자르고 다듬고 조합하는 작업은 즐겁지 않았다. 게다가 손재주가 없는 솜씨로 완성한 작품은 어설펐다. 연습하면 실력은 늘겠지만, 내 솜씨를 기르기 위해서 꽃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미안했다. 내가 불편했다. 꽃은 꽃밭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만의 틀이 생기는 것은 축복이자 불행이었다. 가치관이 뚜렷해지면서 삶이 단순하고 편해졌지만, 내가 경험한 것을 삶을 전부라고 여기고 색안경을 끼는 일이 늘어났다. 사람들과 얘기할 때 나도 모르게 그들을 얕잡아보거나 판단했다. 전부일 것 같은 내 틀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취미였다. 이제 취미는 내 틀을 깨고 싶은 시도였다. 새로운 환경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어설픈 아집과 경험을 내려놓아야 했다. 편견을 내려놓고 흰 도화지로 돌아갈 때 배우고 흡수할 수 있었다. 색안경을 내려놓는 데는 만드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배움을 더하면서 시야가 깊어졌다. 예전에는 몰랐던 주위 사람들의 새로운 장점들도 눈에 하나둘씩 보였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연결된 덕분에 취미 부자가 되면서 무언가를 배우면 곧잘 따라 했다. 예전엔 더 많이 알고 하루빨리 노련해지고 싶었는데, 막상 새로운 것이 적어지니까 섭섭했다. 풋풋했던 내 한때를 즐기지 못하고, 조바심으로 하루빨리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것이 아쉬웠다. 한때는 결과에 집착해서 성장하는 과정을 즐기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통해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는 경험이 더 소중했다. 부족함은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어설픈 느낌이 들면 상쾌했다. 초심자의 신선한 감정은 축복이었다.
요즘은 취미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보다 신중해졌다. 예전에는 무작정 부딪히고 봤지만, 지금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몇 번 생각한다. 바쁜 이유도 있지만, 경험하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 시작 전에 취미에 집중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을 만든다. 이게 책임감인가 보다. 얼마가 될진 모르지만, 인생의 여정을 함께할 동료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 그래서 경험 하나하나를 충분히 즐기고 싶다.
취미생활을 하는데 구체적인 이유는 없다. 삶이 여유로워서, 더 나아지고 싶어서, 무료해서, 경력 개발을 위해서, 외로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구체적인 목적이 있으면 취미를 마음 편하게 즐기기 어려울 것 같다. 삶도 취미처럼 너무 심각하지 않게, 즐기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취미의 의미는 앞으로도 계속 바뀌겠지만,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나를 보살피고 세상과 어울려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