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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Mar 11. 2024

그런데도 니들이 지금처럼 산다고?

매우 흥미로운 세상이다.

"이미 파산한 공장에서 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시장 개혁이라는 의심스러운 구호 아래 

하나 같이 배신자가 될 정치가들을 위해 선거운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말이야

지방도 소멸하고 인구도 소멸하고 일자리도 소멸하고,

여전히 러다이트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정작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말하면서 

낙수효과 경제부양 세금을 줄여준다고 선심 쓰고

일자리가 줄어들면 결국 세수가 줄어드는 사실은 숨긴다.

 

결국 한다는 짓이 실업률을 속이기 위해 고학력 인플레를 유도하거나,

경제가능인구와 경제활동인구를 교묘하게 위장하는 짓이나 하는 게 고작이면서 말이야.


최소한 우리는 언제나 일자리 증가율이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세상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잊은 거지

그래서 현실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과도기의 한 순간 현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은 창조적 파괴를 불러오고 새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는 그 환상과 믿음.

새로운 생산은 AI 로봇에 맡기면 도대체 너는 어디에서 월급을 탈까?

온디멘드 긱이코노미? 

슘페터가 이런 현실에서도 여전히 그리 생각할지조차 의문이다.


지겨운 종교, 인종, 민족의 위대함이 건재하고 그 지긋지긋한 배타주의는 여전히 강력한데

그 틈새에 이데올로기라는 잡스러운 것을 동원해 수많은 쟁점을 만들고 스캔들을 터트린다.


어느새 불평등, 생태위기, 기후위기, 전쟁과 같은 일들을 극복하는 유일한 수단은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어느 세계의 후미진 지역으로 확장될 시장과

금융의 메타시장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해왔던 방식이나 앞으로 할 일들은 대게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노동과 원료를 착취한다는 도식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소 키우는 사람도 소고기 먹는 사람도 사라지는데 참 기이한 믿음이다.


생산과 소비의 모순은 신뢰의 위기를 불러오고 

신뢰의 신뢰를 신뢰로 약속한다는 미래를 위한 수많은 파생상품은

우리의 삶이다. 


그래 비트코인만이 살길이다. 

그래 황금만이 살길이다.


이제 문제는 하층 노동일자리가 아님을 우린 안다.

바로 중간층 화이트칼라 차례가 된 것이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예전엔 그랬다.

지방을 발전시키겠다고 산업단지 조성하고 부동산개발하면

공장이 들어섰고 일자리가 생겨났다.

사람이 이주하니 주거시설을 지어야 했다.

주거시설 다음에는 상업시설은 필수였다.

부동산이 붐이었다.

그래서 때론 주머니에 돈이 쌓였고 소비가 증가했다.

그 맛 잊기 어렵겠지.

그러나 한번 봐라,

산업단지 개발해서 공장이 지어지는지

공장이 지어져서 일자리가 늘어나는지

부동산 경기가 지금도 빤작하는지

상가 공실률 통계라도 보든가


그런데도 니들이 지금처럼 살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뭐냐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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