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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ome Jul 09. 2024

비오는 날 카페에서

비오는 날 카페에서

난 우리 동네의 작고 오래된 카페를 좋아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더께가 느껴지는 나무 바닥과 그 위에 고즈넉이 내려앉은 온화한 조명이 따듯한 카페다. 문이 열리면 어김없이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제각기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책 속에 빠져든다. 무심한 바리스타는 그저 커피를 내릴 뿐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정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주목받지 않는다. 이 무심함은 자유를 허용하는 침묵의 맹세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카페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평소보다 커피 향이 더 진하게 퍼지고, 드르륵 원두가 갈리는 소리도 또렷해진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한껏 과장된 분위기가 연출된다. 보이거나 들리거나 냄새나는 모든 것들이 힘을 과시한다. 소심한 사람들은 평안을 잃고 미세한 불안증에 시달려야 한다. 따뜻한 커피를 주문할 때조차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며 조심스럽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카페의 안과 밖 모두를 살필 수 있는 창가자리는 인기가 많다. 어느 쪽에도 속하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 그 얇은 경계에 모이는 것이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빠르게 안으로든 밖으로든 선택 할 수 있다.


유리창에 빗방울들이 떨어져 만들어내는 작은 물결이 흥미롭다. 마치 분화되었던 세계가 통일되고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것처럼 쉼 없이 자신의 형태를 재구성하며 연결된 전체가 되고자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머리를 단정히 묶고 큼지막한 안경을 쓴 한 여성이 공허한 듯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테이블에는 커피 한 잔과 작은 노트가 '괜찮다, 다 잘 될 것이다'라고 다짐 하듯, 단단한 분위기를 풍긴다. 비는 카페의 사소한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징으로 만든다. 그것은 언 듯 완벽에 도달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완전한 세계는 새로움으로 재구성되는 변화하는 노스탤지어에 불과하다. 늘 그렇듯 묘사는 현실의 반영인 동시에 반드시 지나버린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카페는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이 비현실적이고 상식을 넘는 말은 가능한가? 누구나 경험을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카페는 분명 환상이 아닌 실제 공간과 사물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현상이다. 감각은 분명 세계를 인식하는 통로다. 카페의 익숙한 나무 바닥, 따스한 조명, 커피 향, 사람들과 같은 자극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반복되며 강화된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판단에 도달한다. 비록 사람들이 저마다의 심상을 투영해 그려낸 아련한 흔적일지라도 내가 지금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 인식의 모순은 기어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나는 왜 하필이면 비가 오는 날 카페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만일 내가 비오는 날 굳이 카페에 오지 않았다면, 논리적 경계와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나만의 세계에서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 카페는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를 넘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경험과 기억이 모여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인가? 그렇다면 카페는 내가 경험하고 느끼고 정의하는 곳이 아닌 이미 다른 이의 생각 속에 존재한다. 비가 후드득 내릴 때 비로소 카페는 진짜 자신을 드러낸다. 결국 사람들의 주관이 객관적인 실존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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