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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Dec 21. 2020

제8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 소감문

안녕하세요, 제8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 정지음입니다. 첫 글이 첫 책이 되는 놀라운 일이 제게도 벌어졌어요. 오래 졸다 한참만에 눈을 뜬 느낌이에요. 이후론 제가 무능하다는 악몽을 깨 준 민음사와 가능에 대한 길몽만을 꾸고 싶습니다. 감사하고도 불안한 기회를 온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아마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원하는 바를 스스로 응원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사실 저는 작가가 될 수 없는 이유로 오래 슬프던 사람이었습니다. ADHD, 즉 주의집중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기 때문인데요. ADHD는 집중하려는 순간마다 과잉행동의 방해를 받는 정신과 질환이에요. 그래서 전 책을 잘 못 읽고, 드라마도 못 보며 여행이나 영화도 즐기지 않습니다. 쓰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뭔가를 쓰려하면 슈가파우더 통에 대고 재채기한 느낌에 가로막혔습니다. 모든 게 아주 가볍고 빠르게 흩날려 한시도 담기지 못했어요.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건 정말 바보 같지요.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인데, ‘열심히’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꿈에 대한 굴종을 자주 느꼈습니다.


ADHD는 타고나지도 않은 재능을 빼앗긴 느낌, 세상이 나를 조롱한다는 느낌, 평생 어디서든 1등이 되지 못하리란 느낌을 시도 때도 없이 주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북 소재도 ADHD가 된 것인데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쓸 수 있는 것과 쓰고 싶은 것이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은 ADHD에 대한 악감정을 정리한 후에만 쓰일 수 있어서, 저와의 빚을 청산하듯 <젊은 ADHD의 슬픔>을 적게 되었습니다.



<젊은 ADHD의 슬픔>을 꾸릴 때 구독자는 30명, 글 평균 조회수는 20-30 내외였어요. 읽는 이가 적고 주제도 마이너하고, 무엇보다 3주 만에 쓰인 글들이라 수상 가능성을 점치지도 않았는데요...... 그래서 응모를 하고 난 후에도 당선을 배제한 농담만 했던 기억이 나요.


"내 글 조회수가 10이니까 글 10만 개를 쓰면 100만 독자야(?)"


소극적인 농담이지만, 앞으로도 뭔가를 계속 쓰겠단 결심이 대범하여 뿌듯했었어요. 지인들도 늘 하릴없이 멍하던 제 도전에 많은 응원을 해 주셨어요. 아마 아래 인사이트에 나타난 독자 90명 중 20명은 지인분들이실 텐데요. 해주신 응원 기쁜 성과로 돌려드릴 수 있어 더 감사한 마음입니다.


집중력이 부족하고 행동이 과잉된 저는 브런치가 작문 집중적이면서도 과잉되지 않은 곳이라 좋았어요. 여긴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의 문체도 아름다워서 감동할 기회가 많은 곳이에요. 주목받지 않은 덕에 온전히 제 자신을 마주 볼 수 있었고, 제 안으로만 향하던 편협한 시선을 조금이나마 타인에게 확장할 수 있었고... 이제까지완 다른 관점에 지불할 용기를 얻기도 했어요.


내 질환과 삶이 나를 기만한다면, 나 역시 일종의 기만을 갖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었어요.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삶에 대한 기만일 거예요. 정신과 질환을 가진 내가 "숨죽여 살아야 하는” 거라면 “숨죽이지 않겠다”는 기만이 가능하겠지요. 미래를 모른다는 것만이 유일한 미래라는 점에서, 깜깜하지만 해볼 만한 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ADHD의 슬픔> 이후 곧바로 <나와의 필담> 매거진을 내고, 전보다 즐겁게 적을 수 있었어요.


저는 지루함을 자주 느껴서 실패에도 실패하곤 해요. 자기혐오를 지속할 수 없어 결국엔 자기 긍정이 돼요. 아무 생각이 없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니 그중 몇 개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결단 없이 결단이 필요한 일을 벌이기도 하고 결단으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부 포기하기도 하면서 지금 여기에 있어요. 멋진 재능은 없지만, 작은 목소리로써 기능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잘못된 존재일까요?

못 고칠 결함을 갖고 있다는 건, 제가 앞으로도 잘못되리란 증거일까요?

혼자 생각할 땐, 나에 대한 오랜 물음에 너무 쉽게 불능의 낙인을 찍었어요. 제 자신은 제게 초라하고 만만하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잘못된 존재냐고 물으면 쉽사리 대답할 수 없게 돼요. 저의 결정에는 더 많은 근거와 확신과 사유가 필요해져요. 그래서 앞으로의 원고는 개인의 불편감을 보다 넓은 공감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수정/증량될 것 같은데요, 이 점에 있어선 민음사 K편집자님께 미리 감사와 죄송을 대용량으로 구하고 싶습니다. 너무 힘드시지 않게 제가 빠르고 온전한 성장을 거듭하겠단 약속도 함께 적어 보냅니다. (제 마음은 하트 하트 하트입니다)


제 책으로 인해 ADHD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전복된다면 좋겠고, 나아가 ADHD가 아닌 분들과도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게 만드는 장벽'에 대해 소통하고 싶습니다. 슬픈 세상이라 ADHD 아닌 장벽도 너무너무 많으니까, 많은 슬픔엔 많은 위로가 필요하니까 미약하나마 가진 능력을 전부 보태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민음사의 최선이었다고 믿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음사를 경외하는 만큼 제 자신을 어여쁘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기뻐서 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오늘을 영영 잊지 못할 거예요. 언젠가 초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으로 제 자신을 정렬하겠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엔 초고보다 훨씬 멋진 책으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민음사와 카카오 브런치를 포함한 모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제 부족한 글에 달아주셨던 응원과 댓글 잊지 않겠습니다.


정지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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