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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Dec 06. 2020

웃음에는 까만 순간이 담긴다

도무지 안 예쁜 웃음들

웃음에는 까만 순간들이 담긴다. 즐거우니 웃는 것 같지만, 사람들이 전시하는 미소엔 낭만 외의 속성들이 많았다. 어쩌면 웃음은 승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쁘게 패배하는 수단일지 모르겠다. 가짜로 웃을 때 눈꼬리와 입만 바쁜 것도 코엔 이미 슬픔이 훌쩍 고여있기 때문인가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기쁠 때보단 화나거나 슬플 때 더 공들여 웃게 되었다. 떠난 친구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때, 부모님의 모든 관절이 동시에 아플 때, 사직서를 내고 통장을 보니 천 년의 희망도 식을 때, 이다지도 돈 없는데 청년주택 대상도 아닐 때 나는 자주 웃었다. 사이렌 같은 박장대소는 대개 이런 의미를 가졌다.


‘난 슬퍼. 근데 모두 합심해서 모른 척해 줘.’

‘전부 다 부당하지만 절대로 충격받을 생각 없어.’


그렇게 따지면 웃음은 비밀이자 부정이고, 도망이자 결심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엔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속설에도 의심이 들었다. 현대인의 박복한 삶 속에선 미소 몇 개로 교환되는 행복이 별로 없었다. 웃음은 마치 로또 5등과 같은데, 본전을 찾아봤자 본전도 못 찾은 거와 같다는 점에선 그조차 아닌 듯했다.


그래도 자꾸 웃으면 행복한 사람 같아 보였다. 불행한 사람은 불쌍한 느낌을 주니까, 난 당당해 보이려고 많이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휘는 것만으로도 “삶이 저를 편애하고 있습니다”라는 거짓을 온 세상에 공표할 수 있었다. 난 가끔 매사 즐거워 보인다는 이유로 미움을 샀는데, 그건 내가 사람들을 잘 속이고 있다는 증명이었다. 시각을 조금만 틀면 그도 자신과 나를 포함한 우리네 삶이 동시에 애틋해질 것이었다.


나 외에도 모두가 필사적으로 웃으며 산다는 점에선 위로를 받았다. 증거는 의외로 사전이었다. 나는 심심할 때마다 옥편이나 국어사전을 보는데, ‘笑 웃을 소’나 ‘웃음’에서 파생된 단어가 생각보다 많은 것이었다. 만약 웃음에 단 하나의 의미, 오로지 ‘즐거움’만 담겨 있다면 그렇게 다양한 웃음들이 지면을 할애받진 못했을 거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지 범지구적 삶의 법칙인 건지 긍정적인 것만큼 부정어도 많았다.


헛웃음, 억지웃음, 찬웃음, 비웃음, 냉소, 조소, 실소, 비소, 독소, 첨소, 가소, 치소.......


의미는 조금씩 달라도 웃음인 척 웃음 아닌 정서로 결국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에선 비슷했다. 많이 웃는다고 자신하던 나의 미소 또한 대부분 헛웃음이나 조소였다. 이제 보니 난 웃음 많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비웃을 사건이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반면 내 것이 아닌 단어들은 부럽도록 아름다웠다.


웃음빛, 웃음꽃, 함박웃음, 뭇웃음, 웃음통, 소웃음, 웃음살, 홍소, 박소, 희소, 함소, 쾌소......


여기엔 웃는 것만으로 빛이 내리고 꽃이 피고, 더 크게 환해질 수 있다는 뜻이 찬란하게 들어있었다. 순간 웃음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과 함께 내가 오랜 시간, 웃음 자체를 멸시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반성이 들었다. 나는 웃음으로 삶을 화이트닝 중이라 착각하면서 매번 블랙 코미디의 주인공처럼 굴었다. 내 정서가 슬프게, 슬프게, 슬프게만 흘러가는 이유는 기쁘려는 시도가 슬프려는 시도만큼 극적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사실 기쁘려는 시도가 뭔지 감도 못 잡는 사람이었다.


“모른다”는 진술이 늘어갈 때마다 내 얼굴엔 다시 냉소나 조소, 비웃음 같은 게 깃든다. 나는 절교할 수 없는 저질 친구에게 휘둘리는 사람처럼 자꾸 나쁜 웃음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언젠간 내 얼굴에도 꽃 같고 빛나는 함박웃음이 소복이 쌓일 것을 믿는다. 원하는 것은 쟁취의 첫걸음이니까 원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세상 가장 환하게 웃을 수 있다고, 나는 대가 없는 신뢰를 무럭무럭 키워 나간다.


언젠가 이 글의 후속 글로 웃으면 복이 온다는 정설을 증명하고 싶다. 제대로 웃었더니 참된 복이 오더란 사실을 100가지의 예제로 설명하고 싶다. 그때쯤엔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고 “와 너 참 쭈글쭈글한 인간이었구나!”라며 창피해할지 모르겠다. 나는 일단 방에 불을 켜고, 기지개를 켠다. 활짝이란 말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나씩 수집한다. 양질의 미소를 위해 세 번째 눈썹이 되어버린 미간의 주름부터 펴려고 어색하게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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