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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n Jul 05. 2021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하듯 글을 써보자

  내가 가장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때에도 매일 빠지지 않고 했던 루틴이 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시는 일. 카페인 원두 두 스푼과 디카페인 원두 한 스푼을 섞어 갈아내고, 물을 끓여 여과지를 한 번 적시고, 곱게 갈린 커피가루를 드리퍼에 털어 넣어 그 위로 뜨거운 물을 붓는다. 원두가 신선할수록 처음 물을 부었을 때 커피가루가 부글부글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여과지를 통과한 커피가 유리 서버로 똑똑 떨어지는 소리. 느긋하게 물이 얼추 내려왔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물을 붓기를 반복한다. 내 전용 노란색 머그를 뜨거운 물로 한 번 씻어내고, 따뜻해진 잔에 커피를 따른다. 곁들이는 간식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지만 최근에는 주로 초콜릿 한 조각을 같이 먹는다. 그렇게 아침을 시작한다.


  커피를 매일 내려마시는 것처럼 공부도 매일 꾸준히 할 수 있었더라면. 아쉽게도 공부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공부가, 논문이 손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일상의 다른 부분들도 놓치기 시작했다. 건강이 나빠져 자취를 포기하고 본가로 돌아와야 했고,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변인들의 연락도 피하게 되었다. 원래도 외출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더더욱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고,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집중력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탓에 삼시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었고 비교적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종국에는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한 상태가 되었고 종종 숨이 가빠왔다. 그래서 멈추었다. 숨을 고르고 고단한 다리를 쉬기로 했다. 병원을 방문했다. 내 상태를 점검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공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일단 옆으로 미뤄두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제일 만만한 일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지쳐버리고 말았는데, 결국 또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회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 의문, 내가 정말 이 일과 학문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 지적 허영심으로 맞지 않는 옷을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 같은 두려움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외면해왔던 질문들에 대한 답도 천천히 얻어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더니 해왔던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약을 커피와 함께 먹어도 되는 것일까 걱정이 되어 선생님께 여쭤보자,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섭취하지 않는 편이 좋지만,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많으니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다고. 가능하다면 연하게, 오전 중에. 대신 알코올은 절대 안 된다며 못 박으셨다. 이 또한 원래의 내 일상과 다를 게 없었다. 매일 아침 카페인과 디카페인 원두를 섞어 내린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술은 전혀 마시지 않으니까. 결국 내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매주 월요일 아침 나는 병원에 가고, 기나긴 진료 대기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때 읽은 책에 대해 <월요일의 책>이라는 제목 아래 글을 쓴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하듯>에 써나갈 글들은 그와는 궤를 달리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 나의 세상과 시각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을 하듯>은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느꼈을 때에도 매일 아침 커피 한 잔은 마셨듯이, 다른 일은 못하더라도 일상적인 생각을 풀어놓는 글은 꾸준히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제목이다. 그러므로 이 글들은 더욱 형식도, 분량도, 주제도 제멋대로일 것이다. 책과 종이와 노트가 어지러이 쌓인 내 책상 위처럼 이런저런 글들로 이 작은 공간을 채워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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