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경수 Feb 24. 2024

아웃팅 당해봤니?

[경수네 이야기 4]

(영상이 더 편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https://youtu.be/OBS5D1KLnhI?si=6zpWE0w7vlVUXAoc)

안녕하세요. 오늘도 우물파는 목마른 40대 레즈비언 윤경수입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에서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고 들었던 반응, 또 그 전 글에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말씀 드렸는데요. 제가 애인하고 사귄지 6개월만에 커밍아웃을 하게 된 계기는, 계속 에서 말씀 드렸듯이 한국 최초의 오픈리 레즈비언 김규진씨의 영향이 큽니다. 저는 그 분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고, 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멋도 모르고 38살에 직장 동료들에게 무차별 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 직장은 참고로 보수적인 분위기인데요. 지나가다가 친하지 않은 직장동료들, 예를 들면 50대 선배들에게도 지나가다가 마주쳐서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어요. 예를 들면 그 분이 ‘경수씨 요즘 바쁘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드노?’ 이렇게 말했을 뿐인데, 제가 막 ‘아 ~ 저 애인하고 동거 준비해요. 이사준비 때문에 바빠요.’ 이러면 눈이 '띠용'� 해지셔가지고 ‘애인 생겼나?’ 라고 하면 제가 ‘아 근데 제 애인은 여자에요^^’ 막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이불킥 할만한 일들 인 것 같아요. 그분들은 ‘약간 뭐지?’ 이렇게 생각하셨을 거에요. 한 3년 지났는데,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좀 어이 없으셨을 것 같긴 해요. 


아무튼 제가 주변에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제가 어느 순간 ‘아 이러지 말아야겠다.’ 하는 순간이 있었어요. 제 꿈은 제 업계 최초의 오픈리 레즈비언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찌질한 이유로 좌절되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당시 제 꿈은 애인과 공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는데요. 결혼식을 올리면 결혼 휴가를 받을 수 있는지, 또 직장에서 받는 상조회비라는 것이 있는데 그 돈을 받을 수 있는지 그런 것부터 걱정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가 속한 직장에 모임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한 모임의 선배에게 제가 이사를 하고 동성 애인과 동거를 시작할 것이라고 먼저 말했어요. 사실 그 모임에 제가 차차 말하려고 하긴 했었긴 합니다만, 그것을 말하기도 전에 그 선배가 제가 없는 모임 자리에서 ‘경수가 곧 신혼 집을 마련해서 애인하고 동거를 할건데 그게 여자래’ 이렇게 말해 버린 거에요. 근데 제가 말하기도 전에 그 선배가 그렇게 말해버리니까, 제가 말하는 타이밍도 굉장히 어색하고, 뭔가 루머도 아니고, 분위기가 어수선 해진 거에요. 저는 그게 ‘아웃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찬물이 착 끼얹여진 기분이더라고요. 저는 차차 말하려고 했는데, 그 선배가 마치 흥미로운 가십거리처럼 제 얘기를 ‘소비’해버린 거지요. 제가 그때 너무 기분이 안좋아가지고, 그 선배에게 ‘언니, 저 없는 자리에서 제 얘기 하셨어요?’ 라고 하니까 그 선배가 당황해가지고, ‘아..말하면 안되나?’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선배, 그건 아웃팅이라고 부르는 거고, 제 없는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이야기 하시면 안되요. 민감한 이야기니까요.’ 라고 하고 일단락 되긴 했습니다. 원래 커밍아웃하려고 했던 그 모임 멤버들에게는 아예 말을 안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1년간 어색하게 지냈지요. 


이게 김규진씨랑 저랑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김규진 씨는 어렸을때부터 레즈비언으로 자라왔고 그것을 아예 오픈 하고자 해서 직장에서 오픈하고 결혼식 올리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결혼식도 멀었고, 동거 하는 것만으로 모든 사실을 알리는 것도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또 뭐가 걱정되기도 하냐면, 제가 모르는 사람이 이미 제 성적 지향을 알고 있는 것이 솔직히 좀 걱정되기도 한 거에요. 저는 어느 정도 경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친한 지인까지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관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얼굴은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또 제가 직장사람들하고 배드민턴 클럽에 가입해서 배드민턴을 쳤었는데, 거기 제 애인을 가입시키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거기 회원 분들이 같은 직장 사람 아니면 가입이 안된다고 했는데 사실 회원의 가족은 가입이 됐었거든요. 저흰 법적으로 가족이 되지 않으니까, 그것이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거기 제 친한 직장동료가 배드민턴 클럽 총무로 있어서, 제가 그 분에게도 커밍아웃하고 우린 곧 가족이 될 사람이다고 밝히자고 했는데, 애인이 말리더라고요. 그게 나만의 일 뿐만이 아니라, 애인의 일이기도 해서 관뒀습니다. 애인이 자기가 알려지면 배드민턴 클럽 다니는 것이 불편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커밍아웃 하지 않았습니다.


이 것 뿐만아니라, 헤테로 관계보다 동성 관계가 불편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 되는 것은 더 험난하고, 또 김규진씨처럼 아이까지 낳으면 더 일이 많긴 하겠지요. 그만큼 사회의 편견이 크고 특히 우리나라는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인생을 살면서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 인데, 제가 그 불평등에 맞서는 입장이 되니 참 비겁해 지는 것 같습니다. 오픈리 레즈비언이 되어서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도 세상과 싸우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애인과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려가면서 보수적으로 커밍아웃하는 것이 맞는지, 어느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뒤늦게 레즈비언이 되어서 세상의 이면, 뒷모습을 드디어 보는 것 같습니다. 그걸 이제야 코끼리 뒷다리 만지듯이 더듬거리면서 알아가는 것 같아요. 어떤 세상은 그 입장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모두가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서 동성혼이 합법화 되어 저희들도 '정상'성을 부여받고 싶습니다. � 다음 글에서 또 뵐게요!    

작가의 이전글 30대후반 레즈비언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