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을 읽고
편견이 있었다. 당연히 올드스쿨로 분류했던, 그리고 그 올드스쿨 이미지 때문에 지금 지도자를 못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선동열 전 감독의 이론이 들어있는 책이라고 생각해 기대치가 낮았다. 그렇지만 그 편견은 금방 깨졌다. 책 목차를 보니, 웬만한 메이저리그 인사이트가 없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 야구에 대한 여러가지 흐름, 고찰 등이 담겨있었다. 선동열 감독 역시 해외 야구에 대한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시도하시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들을 바르게 맞춰나가려는 뜻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선동열 야구학'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선동열 감독이 현대 야구에 대해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지를 제 3자에게 보여주는 일기가 아니다. 선동열 감독 스스로가 먼저 이론을 정립하고, 그것에 대한 사례를 이론에 넣어야 그것이 '야구학'이 될 수 있다. 제목에 낚였다.
이 책은 말미에도 쓰여있지만, 선동열 감독이 미국에 연수를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로 무산돼 자신의 기자 지인들과 스터디를 꾸려 그 공부 과정들을 모아서 발행한 책이다. 2019년~2021년 사이에 메이저리그의 흐름이 이 책 안에 들어있는데, 그 때 주로 나왔던 이슈들이 그대로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을 제작하신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그 시기에 메이저리그에서 나오는 여러 현상들을 눈으로 봤다면 체득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야구팬들이 그 현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을 이 책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 '선동열 야구학'으로 정리된 것에 대해서는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내용 중에는 타구속도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뜬공과 발사각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인식하고 있는 와중에 '크리스티안 옐리치'라는 선수가 등장해 낮은 발사각 속에서도 타구속도로 인해 많은 장타를 생산했고 그 또한 답이 될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발간된 시점부터 2023년 지금까지의 옐리치는 'MVP 이후 몰락하는' 평범한 타자로 불린다. 영원히 남을 책에 박제될 만큼, 야구의 개념과 패러다임을 바꾸진 못했다. 만약 현 시점에서 4~5년 전 그 현상을 다시 본다면 이렇게 책을 쓸까? 못 쓸 것이다. 야구 이론에 대한 책의 내용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반론에 부딪히더라도 자신의 확실한 개념에 사례를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내용이 알차지 않더라도 에세이 형식의 책에 대해서도 좋은 후기를 많이 남기곤 한다.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라는 것을 책을 보기 전에 독자가 이미 알고 있고, 독자들이 느꼈던 현상과 작가가 본 내용을 공유하는 것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 인사이트를 알려주는 책은 그래서는 안된다. '수학' 이라는 명확한 개념을 바닥에 깔고 야구를 알려줬던 수학을 품은 야구공 책이나, '기록' 이라는 확실한 테마 아래 저술된 기타 야구 인사이트 책들 많다. 이들은 각 작가의 전문분야의 지식이 어느정도 더해져 대체될 수 없는 인사이트를 야구팬들에게 알려주는 책이었다. 이번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3~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야구를 보는 관점에서 '야구'를 공부했을 때 나오는 현상들이 담겼을 뿐이었다.
선동열 감독이 자신의 과거를 개선하고 앞으로 좋은 지도자, 행정가 등이 되기 위한 변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당연히 좋은 취지라는 점에 공감한다. 단, '책'이라면 이런 전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