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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랑 Mar 03. 2023

야구는 사람의 종목이니까

'야구의 인문학9'를 읽고


야구는 다른 구기 종목들과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공의 움직임으로 점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으로 들어와야 점수가 쌓인다. 그래서일까, 이 사람냄새 진하게 나는 종목은 우리 인생으로 빗대 표현되곤 한다.


야구와 관련된 동화같은 이야기가 왜 우리에게 더 와닿을까 생각해봤다. 그것 역시 야구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출전하는 선수가 그날 심리상태가 어떤지 우리는 타석에 서면 경기장에서 볼 수 있고, TV로도 느낄 수 있다. 다른 종목은 적어도 그에게 공이 전달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야구는 다르다. 선수의 심리와 감정이 고스란히 타석에 느껴지고, 이는 하나의 작은 스노우볼이 되어 경기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야구의 인문학9]는 '미담 모음'으로 읽혔다. 시기가 빠르게 지나면서 2023년에는 재평가 받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또 그때는 미담이었지만 지금은 미담이 아닌 이야기도 있었다. 저자가 당시 관점에서 야구의 따뜻한 면을 부각시켜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좋은 문장과 좋은 글을 위해 이야기가 맞춰진 부분도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어떻게 질 것인가'라는 책 안에서 두번째 챕터 아래의 이야기들은 많은 공감이 됐다. 나 역시도 한 시즌을 운용하는 구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포인트가 '어떻게 잘 질 것인가'라고 생각하니까.


이 책 내용과 별개로 요즘 야구선수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야구면 운동일 뿐, 사람 사는 이야기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아쉬울 때가 있다. 야구장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옳고 그름, 상식, 공감할줄 아는 능력 등은 절대로 주입식으로 배울 수 없는 부분이다. 운이 좋게 본인이 야구를 하면서 생긴 일들로 인해 좋은 교훈을 얻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매일 '공보고 공던지기', '공보고 공치기' 하는 것이 야구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2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 담당기자의 요청으로 인터뷰 약속을 잡은 핵심 선수 A가 있다. 낮 시간에 운동 중이기 때문에 오후 늦게 인터뷰를 하자고 선수가 먼저 요청을 했다. 먼저 질문지까지 기자가 모두 보내줘 선수를 배려했다. 하지만 약속 시간에 선수는 그대로 '잠수'를 타버렸다.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면 마감을 앞두고 있던 그 기자는 다른 내용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선수의 연락은 '까먹었다, 끝나고 자고 있었다' 라는 말과 함께 저녁 늦게 돌아왔다.


A 선수의 사과는 몇달 뒤에 받을 수 있었다. 이 선수가 어떤 사고를 일으켜 팀 내에서 신임을 못받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했을까, 담당기자들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했다. 그 중에는 몇달 전 있었던 인터뷰 펑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펑크'는 그 때 한 번 우연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A 선수는 본인이 사고를 치고 나서야 이전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의 옳고 그름, 상식, 예의가 나의 야구와 연관지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 공감을 잘하는 KBO리그 감독 B가 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비활동기간 중 새해가 밝으면 로스터에 등록된 선수들에게 모두 안부인사를 돌린다. 베테랑 선수들 혹은 1군 주요 선수들은 비교적 감독에 대한 거리감이 없을 수 있지만 신예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 그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이 B 감독은 1, 2군 선수들과 신인 선수, 외국인 선수들과도 소통한다. 외국인 선수와는 꼭 화상통화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시즌 중에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상태를 모두 체크할 수 없다. 코치들과 전력분석, 트레이너들의 보고를 1차적으로 받고 그것을 종합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갑작스런 선수들의 돌발적인 액션이나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은 감독으로 하여금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특성을 한 발 앞에서 볼 줄 아는 리더가 있다면 조금 더 완충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밖에서 보여지는 카리스마는 전략의 하나일 뿐이지 절대적 정답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고작' 안부 인사일 뿐이지만, 소통의 벽을 미리 허물어준 B 감독의 리더십은 많은 이들이 참고해야 할 인문학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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