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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Choi Oct 13. 2023

수업을 하고 싶어요

1. 경력단절 한국어 강사가 다시 수업을 하게 되기까지 (2)

  새로 온 선생님은 젊고 똑부러졌다. 아이들과 나이차이도 많지 않아 소위 말하는 코드도 잘 맞았고 여러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의 한국어 외적인 학습 부분에도 신경을 써 주었다. 예전의 나도 그랬을까? 내가 감이 떨어진 건 아니겠지, 조급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삭막한 공간에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새로 온 선생님과 아이들의 불화를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내가 수업하는 교실로 와 말 없이 내 옆에 앉아있다 가는 덩치가 큰 아이들은 종종 내게 언제쯤 다시 선생님과 수업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평소 내 수업도 열심히 듣지 않던 아이들인지라 장난스레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늘 바빴다. 수업 시간에 거의 닿아 도착을 했고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자리를 떠나곤 했다. 대학원 입시가 있다며 가방 안에 두꺼운 전공서적을 들고 다니며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이 접근할 수 없게 열의를 다해 공부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아이들과의 거리를 멀게 한 원인이 됐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는 선생님과 함께 하면 아이들에게도 그 에너지가 전달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시에 오전 수업이 끝나면 점심은 센터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중식이 제공되었고 식당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의 손맛도 좋아 아이들이나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모두가 식사를 하러 가는 와중에도 한 아이만이 식당에 가지 않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외부에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아이였다. 부모님도 무심하시지 성장기 아이에게 밥을 굶으라 한 것이었다. 유독 마른 체형에 사용하는 에너지도 많은 아이였기에 더 염려가 되었다. 그렇다고 따로 가정에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해주지도 않았다. 대여섯시간이 되는 수업 시간동안 아이는 주린 배를 감싸고 쫄쫄 굶을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온 아이들이 풍기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나, 그 선생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그 아이 얘기가 나왔다. 나는 혹시 그 아이 부모님과 연락이 가능한지, 내가 직접 아버지께 연락을 취해봤는데 묵묵부답이더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복지사 선생님도 멀찌기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고는 돌려보냈다. 

  "책임지지도 못 할 거면서 자식은 왜 낳았는지 모르겠어요."

  순간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내가 짧게 눈이 마주치며 어색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맞는 말이지, 부모라 하면 응당 아이를 책임져야지. 그렇지 않을 때에는 낳지 않는 게 맞는 거겠지.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 락하지는 않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떼 같은 아이에게 내 원만큼 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지 않을까? 처음부터 굶기고 불행하게 하려고 아이를 낳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선생님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났다. 오래 떨어져 아버지와 지내던 J는 친어머니가 있는 한국으로 '억지로' 불려들어왔다.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하며 이혼한 J의 아버지를 험담하고 재혼해서 낳은 어린 딸만 예뻐했다. 상담하면서 J의 어머니는 사실 J가 낯설다고 말했다. J는 열여덟이란 나이에 학교도, 친구들도, 아버지도, 심지어 여자친구와도 단절된 상태에서 한국으로 왔으니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다. 그런 J는 선생님에게 문제가 많은 아이였다. 본국에서 부모나 양육자에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Z는 열 번을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했고, Y는 쉬는 시간마다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고, A는 수업시간 내내 자기만 보라며 악다구니를 쓰며 관심을 끌었다. 

  한국어 교원이 이 모든 아이들을 감당한다고? 이게 한국어 교원의 현실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대학에서 수업한다고 모든 학습자들이 좋은 태도로 수업에 임한다고 할 수 없고, 초등학교 현장이라고 마냥 소란스럽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 개개인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연들이 존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결혼 후 낯선 곳에 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어 자연히 경력이 단절 된 것처럼. 


  다음 해 수업 형태에 변화가 생겼고 다음 학기 수업은 나 혼자 맡는 것으로 되었다. 아이들에게 그 선생님만큼 열과 성을 다해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진 미지수였으나 어느 순간 아이들의 표면적 행동이 아닌 괄호 안의 사연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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