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디올보다 갖고 싶은 것
지루한 점심시간. 여느 때처럼 스크롤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보기만 해도 예쁜 가방들을 구경한다.
가방을 환히 비추는 조명에 흰빛을 내는 가죽의 광택과 흠집하나 없는 금장 로고가 반짝인다. 정말 예쁘다.
'조만간 성과급 들어올 텐데, 뭐 하지?'
'명품백 하나 질러? 너 열심히 살았잖아.'
'물건은 남는 거랬어...'
생각은 이렇게 하지만 늘 나는 물건을 구매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삼만 원짜리 치킨은 잘만 시키고, 한 병에 이만 원짜리 일품진로는 그것도 토닉워터와 세트로 두세 번을 주문하면서. 4만 원짜리 카디건, 5만 원짜리 반팔티는 왠지 모르게 조심스럽다. 무료배송이 아닐 시엔 더더욱
하나 더 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이건 비단 술, 음식뿐만이 아니란 것이다. 모든 무용한 것은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뼛속깊이 본받은 것인지, 물건은 하나 사는 걸 발발 떨면서도 모은 돈을 몽땅 털어 뉴욕과 발리로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났고, 저녁을 굶어서라도 30분 동안 뉴욕 상공을 보는 30만 원짜리 헬기 투어는 해야만 하는 인간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어느덧 회색의 직장인이 된 지 삼 년. 9 to 6의 안정적인 삶을 꿈꾸던 나는 모순적이게도 그 삶에 제대로 싫증이 났다. 제발 붙여만 주신다면 노예처럼 일할 자신이 있다던 간절했던 그녀는, 오전시간은 오전이라며, 오후시간은 오후라며 일을 미루고 PM6:00 해방만을 기다리는 진정한 노예가 되어있었다.
우울증이 도졌다.
취업을 하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직무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내 색깔을 온 천지에 펼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나르시시즘이 원인이었을까. 회사라는 곳에서 나라는 존재는 회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나의 고집이 문제였을까.
나조차 이유도 모르지만 "어떡해... 어떡하지?"를 입에 달고 살았고,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이내 "나 왜 한숨 쉬고 있지?" 라며 스스로도 모르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치는 나날을 보냈다. 혹시나 하며 해본 우울증 자가진단테스트에서는 고위험군이라는 결과를 받았고 상황의 심각성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친구의 일이었다면, 가족의 일이었다면 곧바로 정신과에 치료받으러 가라고 말했겠지만 막상 내 일이 되어버리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이 모든 것의 원인이 '회사'라는 것은 명확했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받을 진료, 원인에 대한 해결방안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요가를 찾았다.
매일매일, 퇴근을 하면 부리나케 요가원을 찾았고 하루 한 시간 어쩌면 두 시간, 세 시간 연달아 수련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들이쉬고- 내쉬고-. 생각을 비워내자 비로소 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려면 누군가의 목표를 나의 목표라며 착각하며 살아선 안 되겠구나. 그들의 목표는 그들의 것으로, 나의 목표는 내 것으로 온전히 가져가야겠다고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온 요가인생은 어느덧 15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멈춘 적은 있어도 한 번도 외면한 적은 없던 나의 요가. 그리고 위태로웠던 어느 순간, 나에게 안정을 선물한 요가. 문득, 요가로서 온전한 나의 목표를 세워보고 싶었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내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고,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어 반드시 노력해야만 하는 그 무언가를 가지고 싶었다.
드르륵 스크롤을 굴리며 남들 다 사니까 하나 사볼까? 했던 디올백보다 훨씬 갖고 싶은 게 생겼다. 4만 원짜리 카디건에 망설이고, 5만 원짜리 반팔티엔 기함했던 윤슬은 350만 원짜리 요가 지도자과정 신청버튼을 단숨에 누르고 결제를 완료했다.
그렇게 그녀는 초봄이 막 시작되던 3월, 갓 나온 뜨끈한 성과급을 요가 지도자과정에 부워버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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