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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진 Apr 14. 2021

50대, 파마머리는 싫습니다만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유

50대 전후부터 70대까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기관에서 여러 해 강의를 해왔다. 수강생 대부분이 내 또래 거나 인생 선배였지만 내가 가진 아주 작고 사소한 재주를 기꺼이 존중하며 열심히 강의를 듣고 배우고 질문했다. 몇 주 동안 이어지는 강의에도 결석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참여하는 분들도 많았다. 가끔씩 수강생들과 현장실습, 종강파티 명목으로 식사를 함께 하거나 커피 브레이크도 가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수강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자진하여 나이를 공유하고 친분을 쌓았다. 요즘 2030 세대에서는 안물 안궁이지만 이 세대는 이렇게 친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 강사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갑분싸. 보통은 수강생이 강사의 사적인 정보인 나이를 묻지는 않지만 더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기도 한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 분위기가 좋던 참이라 더 난감했다. 수강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 대학교수였다는 한 중년 남자는 사적인 걸 왜 묻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파마머리 여자는 말을 이었다. 


"저도 원래 이런 질문 잘 안 하는데, 강사님 강의를 듣다 보면 젊으신 분이 이런저런 경험을 하도 많이 한 것 같으니까. 어떤 때는 우리 또래 같기도 하다니까요. 그런데 어떨 때는 막 우리 딸 같기도 해서 그래요. 그 애도 강사거든요." 


내가 또래라는 걸 알게 된 수강생들은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제 화제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엄청 동안이네요. 결혼은 안 했죠. 아, 아이가 없으면 그렇더라. 긴머리는 불편하지 않아요? 나도 처녀때는 머리가 길었는데 이젠 파마가 편해요. 모두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당시는 나도 별 신경쓰지 않았지만 칭찬인지 빈정거림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말들이 오갔다. 


파마가 편하다는 말.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50대 아줌마 헤어스타일은 대동소이하다. 파마머리. 단발 정도 혹은 그보다 약간 짧은 기장에 펌을 한 머리다. 웨이브가 크면 쉽게 풀린다. 웨이브를 적당히 안 풀리게 말아줘야 안심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짧은 쇼커트 머리였다. 이모나 고모도 짧은 파마머리였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은 아주 옛날처럼 우스꽝스러운 파마머리는 아니지만 50대로 추정되는 여자들의 대부분이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바로 그 헤어스타일이 50대로 추정하게 만드는 것일른지도. 


방년 48세. 나는 양갈래 머리를 좋아한다. 왼쪽 아래로 느슨하게 묶어 고정한 포니테일, 정수리 상단에 머리를 묶어 얹은 똥머리는 평소 내가 즐겨하는 헤어스타일이다. 간혹 극심하게 머릿결이 상해 단발로 잘라버릴 때가 아니라면 현재까지 전 생애에 걸쳐 긴 머리를 고수해왔다. 여성성이 돋보이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관리가 편해서. 두 번째는 나의 체형과 얼굴형에 긴 머리가 짧은 머리보다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파마가 편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긴 머리는 손이 많이 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긴 머리인 사람들은 알겠지만 관리가 세상 편하다. 머리를 감고 말려주기만 하면 끝이니까. 짧은 파마머리라도 그 정도는 해야 할 테고 그 이상의 관리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헤어 에센스를 바르거나 헤어 겔, 왁스 등을 발라 줄 수도 있겠다. 


나는 대체로 감고 물기가 흐르지 않을 정도로만 닦은 후 자연바람에 말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게 긴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시간은 머리 감는 시간 10분이면 충분하다. 두피까지 바짝 말려줘야 한다는 둥 이런저런 정보는 많이 알고 있지만 뭐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다고 여긴다. 


긴 머리가 치렁치렁하게 느껴져 귀찮으면 묶어버리면 된다. 검정 고무줄 하나만 있으면 어떤 헤어스타일이든 금세 꾸민 듯 안 꾸민 듯 예쁘게 연출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더우면 똥머리로 목덜미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추우면 묶지 않고 귀부터 등까지 따뜻하게 덮어 체온을 유지하는데 보탬을 줄 수도 있다. 긴 머리는 기능성 아웃도어처럼 매력적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60을 갓 넘긴 배우 황신혜가 밝은 갈색의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를 쓰고 끈 나시 블라우스에 쇼트 팬츠, 적어도 10cm는 족히 넘을 하얀색 샌들을 신고 그녀의 외동딸과 함께 공방으로 모녀 데이트를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뜨거운 여름날, 비슷한 패션의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방송되었는데, 나는 '60을 갓 넘긴 황신혜'라는 자막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예쁘고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작위적인 모습은 어딘가 불편하다. 하지만 황신혜에게선 그런 모습이 없었다. 황신혜가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그 매력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이 타령은 세대를 불문한다. 20대 내 친구는 19세의 동생을 보면서 한탄했다. 내가 한 살 만 어렸어도 저렇게 할 수 있을 텐데. 30대 회사원은 대학생을 보면서 말한다. 참 좋을 때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가 들어간다. 나이가 찼으니 결혼해야지. 결혼했으니 아이 낳아야지. 아줌마니까 아줌마답게 살아야지. 파마머리는 그렇게 대한민국 아줌마의 상징이 되었다.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살아. 글쎄. 원래는 원래 없다고 믿는다. 그 '원래'라는 말속에 담은 의미는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라는 보이지 않는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황신혜처럼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그것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라는 편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고하고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이래야'하고, '그래야'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50대 아줌마, 미에 대한 우리들의 관념도 조금은 바뀌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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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진

여행작가가 본업인 취미 소설가. 50을 바라보는 40대 후반의 삶을 기록합니다. 2019년부터 직접적으로 '노화'라 부를 수 있는 몸의 변화를 만나는 시시콜콜한 삶의 변화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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