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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Feb 15. 2021

'정체성'을 찾아 한국으로 향하는 교포들

한국으로 유학 갔어요 

9년 전 한국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으로 언어를 배우거나 혹은 시야를 넓히고 색다른 경험을 위해 유학을 가겠지만, 많은 교포들은 성인이 된 후에 한 번쯤 본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향한다.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를 통해 봐 왔던 가까운 듯 먼 나라였던 한국은 나에게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너무나도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렇게 6살 때 이민 와서 단 한 번도 한국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23살이 되던 해, 17년 만에 내 의지로 혼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남미에서 거의 한평생을 살았던 나에게 한국은 너무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공항에서 도착하자마자 한국에 왔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게 한 것은 바로 공항에 온통 한국사람들로 가득했다는 것. 공항 직원도 모두 한국인, 여길 봐도 한국인 저길 봐도 한국인...! 물론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동양인이 늘 소수였던 나라에서만 살던 나에게는 가장 처음으로 피부에 와 닿았던 변화였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는 너무나도 평범한,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해외에서 오래 살았지만 한국 TV 프로그램 마니아였던 나는 요즘 쓰는 한국말에 꽤 익숙한 편이었다. 우리가 자주 보는 한국어에 어눌한 교포들과는 달리 나는 먼저 말하지 않으면 교포라는 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몇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한국말을 구사했기 때문에 더더욱 한국에서 튀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교포 대우를 받고 싶을 때는 외국에서 왔다고 '신분'을 밝히고 그럴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는 굳이 말하지 않게 됐다. 교포라는 것을 밝히면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먼저, 대부분 교포라고 하면 꽤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가장 먼저 내가 살던 나라에 대해 물어보면서 왜 굳이 한국에서 유학을 선택했냐고 묻곤 했다. 처음에는 그냥 '한국이 좋아서 내 고향이니까 오고 싶었다'라고만 얘기하다가, 언젠가부터 내가 왜 한국에 왔을까라는 생각을 점차 깊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에 왜 왔을까?

여기서 나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내가 살던 남미 브라질과 파라과이와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나는 어디서 살고 싶은가?

나에게 고향은 기억이 희미한 한국인가 쭉 살아온 남미였던가?


이런 수도 없는 질문들과 이에 대한 나만의 답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꽤 오랜 시간을 소비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런 것들이 한국인으로서 또 1.5세 교포로서 겪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난 내가 교포라서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들이 많았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내가 정의하는 교포들은 이렇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온전한 한국인도 온전한 외국인도 아닌 사람으로서 혜택을 받는 동시에 양쪽으로부터 차별을 받는 그런 존재."


한국사람들은 교포들을 동경하면서도 차별한다. 기본적으로 언어를 2-3개를 자연스럽게 취득했다는 장점과 해외에서 살며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포들은 끈기가 없고 돌아갈 곳이 있으니 노력을 하지 않는다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경쟁이라고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한 학창 시절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경쟁의식이 몸에 배어온 사람들과 같은 마인드로 살고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에서 돌아와 한국계 파라과이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그때 직급은 일반 사원이었지만 통역이 주 업무였고 고위층 직급은 대부분 한국에서 파견 온 주재원들이어서 지시를 내리거나 회의를 할 땐 늘 통역이 필요했다. 그들은 매일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지 매 회의 때마다 현지인 직원들을 혼내는데 통역인 나는 그 나쁜 에너지들을 다 흡수하며 통역할 때 직역을 하기보다는 조금 순화된 버전으로 말을 전하곤 했다.


어느 날은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난 주재원이 순화된 통역하는 나를 보더니 "야 통역! 너 이거 제대로 전달해"라며 말을 쏟아부었다. 또 어느 날은 "너희들은 한국 사람이니까 얘네들과는 달라..."라는 말을 하더라. 이런 일을 종종 겪으며 나는 깨달았던 게 하나 있는데, 사실 그들은... 아니 적어도 그 회사의 주재원들은 나를, 교포를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퇴사를 했지만 아직도 거기서 겪었던 몇 년동안의 간접적 한국 사회 체험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차별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특별'하다는 뜻도 된다. 한국에서 나는 한국사람들과 같아지려고 할 때 가장 자존감이 낮아졌고 한국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가장 자존감이 높아졌다. 한국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넘쳐난다, 하나같이 다 능력자 같다. 자기 계발의 천국, 정말 별별 자격증이 다 있으며 유학도 많이 다녀와 언어도 잘하고 고학력자가 넘쳐난다. 그런 곳에서 내가 특별해질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살지 않지만 내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 한국에서의 생활은 참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한국인이든 교포든 외국인이든 나는 나로서 나를 더 이해하고 나 자신을 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에 만족한다. 성인이 된 후의 한국으로 향하는 교포들의 이유는 분명하고 대부분 해답을 찾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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