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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삼이와 데븐이 Feb 01. 2023

나 혼나는 거 좋아하네...?

춤추며 배우는 인생철학, 몸짓에 녹아있는 성격

어느 댄스컴퍼니에서 프로반으로서 레슨받은지 어언 4~5주가 되어간다. 나는 예술고등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대학교를 무용과로 가지도 않았고 지금 인생에서 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이다. 앞으로도 무용수로 나갈 뜻도 없고, 무용으로 주로 먹고살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왜 무용이 배우고싶었냐면, 


첫째, 춤출때만은 나의 장점들(감정표현, 힘과 스피드 등)이 많이 보이고 내가 예뻐보인다.

둘째,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춤을 추면 그사람의 인생관 성격 등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어릴땐 잘 몰랐다. 선생님들이 괜히 아는척하나 싶었고 무시했다. 근데 어느덧 30대가 되어 내 춤을 내가 보고있자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서서히 보인다.


고백하자면 나는 춤을 출 때 호흡을 쓸 줄 모른다. 고등학교때는 레슨선생님이 마구 윽박지르며 혼냈기에 어떻게든 숨쉬는 흉내라도 냈지만, 대학에 들어와서 내 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그 방법과 느낌을 잊어버렸다. 


'춤출때 다 숨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숨은 쉰다. 그러나 힘이 들어 거친 숨을 몰아 쉬는 것과 작품과 동작에 맞는 호흡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무용에서 호흡은 가장 기초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호흡이 없는 춤은 추는 이도 힘들고, 그 춤을 보는 이도 힘들다. 춤을 출 때 호흡하면서 움직임과 힘을 조절할 수 있고, 작품과 음악에 동화될 수 있다. 

즉 호흡을 하지 못한다면 여유가 없고 급한 춤을 추기 쉽상이다. 

특히 호흡을 내려놓을 줄 모른다면 계속 붕 떠있는 춤을 추게 되고, 춤의 깊이는 떨어진다. 

보는 이는 그러한 춤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추는 이는 의미없이 힘들기만 하다. 


춤을 출 때 호흡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호흡 자체가 춤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춤 동작은 결과로 빚어지지 않는다. 특히 곡선을 사용하는 한국무용은 더더욱 그렇다. 

힘으로 동작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 동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면, 

그 선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무용의 동작은 몸의 부분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행위다. 

호흡과 과정을 생략한다면 어떠한 동작을 흉내내기 바빠 어떤 부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그저 모양을 흉내내는 춤이 되고 만다. 

그런 무용수는 정작 한 음악을 틀어놓고 즉흥 춤을 추라고 한다면 춤을 출 수 없다. 


일례로 한국무용의 연풍대라는 동작이 있다. 제비가 날아와 앉는 모양을 연출한 연풍대는 무용수가 빙그르르 돌면서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작이다. 

나는 이 동작에 특히 약했다. 

앉는 각도, 손과 몸의 특정 모양을 흉내내기 바빠 몸이 내려가면서 내뱉는 호흡을 전혀 신경쓰지 못하고 힘으로만 춤을 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만드는 각도를 흉내내 인위적인 각도를 만든다.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의 반복인데 힘으로만 몸을 컨트롤 하려하니 관절이 아프다. 

연풍대만 하면 온 몸에 멍이 들었다. 전혀 호흡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춤출때의 호흡과 과정을 무시하는 나의 문제점은 일상생활에서의 문제점과 맥락을 같이한다. 들숨과 날숨의 조절을 하지 못해 즉 힘조절을 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매 순간 힘들어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에 일의 막판에 집중하지 못해 뒷심이 약하다. 호흡을 내려놓으라는 소리를 들으면 호흡을 아예 놔버리곤 하는데, 이는 일을 쉽게 포기하는 나의 성향이 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마치 쉼표와 마침표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 하다. 또 동작의 디테일을 무시하고 실수만 하지 말자는 결과 지향적인 성격도 춤에서 드러난다. 춤을 출 때나 일상 생활에서나 과정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 나는 어떤 일을 하였을때 디테일에 매우 약하다.


춤을 추면서 나의 단점들이 보였다. 그래서 프로 클래스에 춤을 배우러 갔다.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춤을 추는 스타일에서 나라는 인간이 투영된다면, 제대로 배워 춤을 매개로 내 삶을 변화시키싶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지금의 무용 프로클래스와는 결이 다른 면이 있다. 

이 프로클래스는 무용단, 안무가 등 무용으로 먹고살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듣는 수업이며, 나처럼 일주일에 하루 춤추는 것이 아닌 매일 춤과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제자로 존재한다. 

또한 춤과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큰 선생님이 이끄는 클래스로 무용에 대해 진심인 사람만 제자로 취급하는 그런 클래스이다.


인정한다. 나는 지금 무용으로서 어떤 무대에 오르고 싶거나 주역이 되고싶거나 단체에 들어가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클래스를 듣는 이유 

1.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 2. 매 시간 던져지는 선생님의 철학적 질문들 3. 그냥 좋아서


1번에 대해 앞서 얘기했다면 이제는 2번에 대해서 풀어본다. 


선생님은 매 수업마다 많은 이야기를 하신다. 

이게 강연인지 무용클래스인지 헷갈릴정도로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업(춤)에 대해 깊게 사고하는 사람은 빛난다. 철학수업을 무용을 통해 듣는 기분이다. 약 4시간동안의 클래스가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특히 무용계를 위해 스스로 꼰대가 되기를 자청하여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과 그것이 초래하는 부정적 현상들에 대해 정확히 간파한다.


오늘은 요즘 애들이 분산투자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도 찔끔 저것도 찔끔 그러면서 무엇을 바꿀 수 있냐고 말이다. 

누군가는 꼰대라고 생각할 법한 말이지만 나는 다르게 들었다. 본인의 삶에 대한 프라이드다. 

한 우물만 파서 살아봤기에 분산투자보다 하나에 제대로 투자하는 게 삶에 있어서 얼마나 큰 가치를 낳는지 잘 아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분산투자를 하며 결국 이도저도 아닌 포지션에 처하는 무용수들이 '무용계는 끝났다'고 욕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겨냥하기도 했다. 


나도 어렸을 때 무용계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여 그 세게를 떠났던 입장에서 귀가 쫑긋했다.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의 말은 내 뒷통수를 강하게 쳤다. "니들이 끝내고 있잖아" 


항상 어떤 일에서 남탓, 상황탓보다는 나에게 원인을 찾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을 노력해야 할지 고민해왔다고 생각해왔는데, 정작 고등학생때부터 나는 상황탓을 해왔던 것이다. 

나는 집안에 돈이 부족하여 무용계에서 소외되었다고 생각했고, 춤을 추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이 들면서 내 춤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무용으로부터 도망쳤고, 지금 내 인생에서 무용은 단 한줄도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는 과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결국 아무것도 한게 없으며 그저 '탓'만 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무용계를 끝냈던 인물 중 한명이었던 것이다.


클래스를 들으며 참 많이 혼난다. 지금까지 나열한 나의 문제점들은 모두 선생님께서 지적하시고 말씀해주신 것들이다. 그런데 너무 기분이 좋다. 누군가는 변태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나는 선생님께 혼나는 요즘 정말 기분이 좋다. 더 많이 혼날 수록 좋다.


고등학교때는 혼나면서 춤추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 저 사람은 뭔데 나를 혼내나 싶어서 매순간 스트레스였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 대학에 입학하고 현재까지 나는 혼나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마음가는대로 살았고 마음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았다. 

하고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과거에 지금 이 선생님처럼 옆에서 옳은 말을 강경하게 해주시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매 레슨마다 생각한다. 


힘든 이 시기에 어떻게보면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따뜻한 위로보다는 따끔한 충고와 지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철학책 10권을 읽는 것보다 더 와닿고 아프고 좋다. 클래스와 결이 맞지 않아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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