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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Jul 03. 2023

약과 욕과 히스테리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사회적 격차에서 비롯하는 폭력과 ‘스튜어디스 혜정이’ 같은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더 글로리>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아리가 ‘가빈회’로 명명되는 인플루언서 그룹(=부와 권력을 가진 무리)에 복수를 가한다는 설정 역시 <셀러브리티>와 <더 글로리>가 겹치는 지점이다. 하지만 패거리에 직접 얼굴을 내밀고 “멋지다!”를 외쳤던 동은과 달리, 아리는 사망한 뒤 유령처럼 돌아와 핸드폰 뒤에서 복수를 감행한다. SNS를 통해 폭로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셀러브리티>는 또 다른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겨낼 수 없는 부피로 자라난 루머에 시달리던 해나는 끝내 자살하지만, 생전의 진실을 녹음테이프로 남겨 자신의 죽음에 연루된 모두에게 전한다. 매 에피소드는 모든 것에 해탈한 듯한 해나의 냉소적인 내레이션과 함께 과거 사건들을 펼쳐 보인다. 마찬가지로 <셀러브리티>는 매회, 죽음에서 부활한 아리의 뼈 때리는 코멘트들로 시작해 과거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녀가 간직했던 비밀과 진실은 가해자를 비롯해 SNS에 접속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 녹음테이프보다 확실한 응징이다. 하지만 <더 글로리>보다 빠르고, <루머의 루머의 루머>보다 확실한 복수가 결행됨에도 <셀러브리티>는 통쾌함보다 씁쓸함을 남기는 드라마다. 마지막 회차인 12화가 끝날 즈음, 드라마는 자칫 유쾌함을 가장하며 긴장했던 시청자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이입하지 못하고 스크린 밖에서 여자들이 서로 질시하고 끌어내리고 폭로하며 자멸해 가는 과정을 지켜본 나는, 전혀 개운하지 못했다.


<셀러브리티>의 스토리는 단순하게 축약된다. 셀럽의 세계에 우연히 발을 디딘 서민 여성이 있다. 허영과 오만, 그리고 범법과 거짓이 횡행하는 그곳에서 무시와 모욕을 당한 그녀는 성공을 결심한다. 주인공답게 타고난 미모와 센스 덕분에, 그녀는 성공 가도에 쉽게 오른다. 물론 외부자였던 그녀의 빠르고 높은 성취가 내부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을 도리는 없다. 질투는 화살처럼 날아와 그녀를 바닥에 내리꽂는다. <셀러브리티>는 한마디로 외부자가 내부자들의 검은 세계 속으로 침투해 그곳을 내파시키는 이야기다. 하지만 미리 언급했듯, 이 파열은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중 첫 번째 이유는 극 중 주인공의 위치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디처럼, 아리는 메이크오버를 거쳐 인사이더가 되고, 곧 자신이 우습게 보던 세계의 완벽한 일원이 되어 자신을 조금 잃어버린다. 하지만 앤디와 다르게 아리는 보는 이들의 호감을 쉽게 사지 못한다. 그녀의 욕망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했는지, 애초에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을 끝마치지 못하고 여러 일을 전전하다 서른한 살의 화장품 방판원이 된다. 하지만 가난은 그녀에게 조금의 흠집도 내지 못한 듯, 아리는 씩씩하기만 하다. 많은 로맨스물의 여주인공처럼 윤리관이 뚜렷하기도 한데, 그런 그녀가 대체 왜 사람들을 협박하면서까지 성공하려 하는지 의문이다. ‘개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나, 스스로 인정하듯 평탄하지 않았던 삶을 산 아리가 왜 그 단 한 번의 개소리로 흑화 되는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허영심이 넘치는 엄마와 친구가 명품에 호들갑을 떨고 셀럽 파티에 들뜰 때, 아리는 그들로부터 선을 긋는다. 그녀는 분류하자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유의 사람이다. 자기 것이 아닌 옷을 ‘내 거’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없는 가운데 자존심만은 챙겨야 하는 유형이라 1,200만 원이나 되는 옷값을 굳이 갚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마약으로 사람이 쓰러진 광경을 보고도 신고를 미루는 사람이며, 메이드가 신발까지 벗겨주는 재벌남(사지가 멀쩡한데!)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리의 모순은 그녀를 입체적 캐릭터로 완성하기보다 모호해서 알 수 없는 인물로 느껴지게 한다. 아리는 자신의 가난을 창피해하지 않고, 돈 있는 자들을 오히려 경멸한다. 한데도 오로지 ‘호기심’이라는 변명에 기대어 셀럽들의 세계에 발을 디딘다. 이는 돈이라는 구체적 물질과 그것이 약속하는 안락함을 욕망했던 <작은 아씨들> 속 인주의 투명함과 대비된다. 사실, 아리는 처음부터 인주와 똑같은 서민은 아니었다. 외모라는 매력 자본과 18년 동안 부잣집 딸로 살았던 세월이 남긴 남다른 패션감각은 누구나 겸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리는, ‘부’라는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것은 아리에게 과거에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것이면서도  결핍으로 자리하지 않은 듯하다. 짧게 등장하는 고등학교 회상 신에서, 아리는 준경과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돈에 너무나 무심한 나머지 주위 사람들의 ‘없음’을 초라하게 만드는 모습으로. 그랬던 그녀가 어떤 세월을 걸쳐 왔기에 인경이 되었다가 다시 인주 혹은 인혜가 되려는 것인가. 드라마가 말해주지 않으니, 시청하는 내내 나는 아리에게 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의 스토리에 완전히 탑승하지 못한 시청자에게 남은 건 가빈회 멤버들이 악을 쓰며 서로를 할퀴어대는 모습뿐이다. 드라마는 SNS로 셀럽의 자리에 오른 이들을 등장시키지만 <언프리티 소셜스타>처럼 허상과 현실의 격차나 외로움을 파고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제목 그대로 ‘셀러브리티’라는 지위에 천착한다. 요컨대 <셀러브리티>는 특권층에 관한 이야기다. 때문에 드라마가 아무리 인스타 셀럽들의 생태계를 묘사한다 해도 극 중 펼쳐지는 사건들은 다소 낡고 고루하다. 소위 있는 자들은 욕심만 많고 생각이 없으며 질투심이 강하다. 이들은 악의 화신이다. 아리는 ‘궁금해서’ 셀럽들의 세계에 들어가지만 정작 드라마는 무언가 새로움을 보여주기보다 특권층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확신을 얹어준다. 가빈회 멤버 중 시현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얼굴과 계급만 다른 스튜어디스 혜정이다. 이들은 ‘더 높이’, ‘내가 제일’의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더 글로리>가 사라와 연진과의 관계에서 누적돼 온 혜정의 열등감을 그녀가 가진 욕망의 동력으로 얼마간 설명해 준 것에 비해, <셀러브리티>의 셀럽들에게 그런 설명은 따라붙지 않는다. 그들은 그냥 허영이 넘치고, 그래서 내가 제일 잘 나가고 싶으며, 그래서 나보다 잘난 X는 짓밟고 싶다.


<셀러브리티>가 답습하는 또 다른 오래된 편견은 명품에 환장한 의리 없는 여자들이다. 최근 어두운 톤의 한국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클럽과 마약이라는 소재는 이 드라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사실 셀럽과 클럽, 그리고 마약이라는 단어들에서 연상되는 성별은 여성보다는 남성이다. 혐오 콘텐츠로 인기와 부를 누린 남성 BJ와 유튜버들이 있음에도, 더불어 슈퍼카와 명품시계로 수많은 팔로워를 얻은 남성 인플루언서들이 있음에도, 드라마는 굳이 여성들만을 그 생태계의 부정적인 면을 대표하는 얼굴로 세웠다. 어쩌면 이는 여성들이 보이는 것에 더 예민하고 피드를 신경 써서 관리한다는 사실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권층 남성들이 양복을 입고 음지에서 돈을 굴릴 때, 그 안에서 약과 욕과 히스테리를 곳곳에 뿌리며 길길이 날뛰는 여성들의 모습은 견디기가 어렵다. 여성 캐릭터가 부도덕해선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런 나쁜 여성 캐릭터는 이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결국 계급을 다루고 있는 이 드라마가 주요 인물들을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실제 2030 여성들의 생활고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마지막화에 등장하는 선영의 존재가 그러하다고 말한다. 나는 한없이 비틀린 심사를 지녔지만 어떠한 자원도 갖지 못한 그녀가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아픔은 ‘모르는 사람 얘기는 하지 마라’라는 어느 형사의 배려보다 더 큰 배려를 받아야 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더 넓은 차원에서 고려되고 주목받아야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녀의 처지에 주목하되 그녀의 악행을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만 남겨둠으로써,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찰은 피해 간다. 같은 맥락에서 드라마는 스폰이라는 문제를 여성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으로만 다룬다. 매우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셀러브리티>는 2030 여성들의 고민을 건드리면서도 이들에 대한 편견을 공고히 한다. ‘여자들은 쉽게 돈 번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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