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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구 Jul 09. 2023

기술과 결합하는 여성의 몸에 대하여

-책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저자: 임소연 / 출판사: 돌베개



지금껏 성형에 관한 글은 꾸준히 쓰였지만 이 주제에 관한 목소리들이 대체로 한 방향으로 쏠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성형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상기하게 되듯, 성형수술은 대체로 외모 지상주의와 여성학 담론의 자장 속에서 논의돼 왔다. 많은 글은 ‘무엇’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내게 하는지 조명한다. 하지만 구조에 대한 문제 적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여성이 사이보그가 되지 못하도록 하였는가? 나는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힘을 직면하는 것이 아무런 변화도 자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압박은 개개인에게 각기 다른 무게로 삶에 얹어지며 우리가 지닌 욕망 역시 제각각 다르다. 성형을 구조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글이 여성들의 사이보그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무조건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성형에 대한 일방향적 접근은 분명 문제가 있다. 실제로 성형을 택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위축시키고 그들의 욕망을 비난에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임소연은 여성의 몸과 과학기술이 결합하는 가장 일반적 예이지만 제대로 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분야인 성형을 ‘몸소’ 연구했다. 그는 청담동에 위치한 성형외과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며 현장을 관찰했고, 직접 성형수술을 받아 환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성형과 얽히게 된 자신의 경험을 글로 풀어낸 것이 책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이다. 임소연은 성형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하여 독자에게 권장하지 않는다. 물론, 미용성형이 인종주의와 엮여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고 오히려 분명하게 적시한다. 그는 “인종주의, 즉 인종과 인종 사이의 위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교묘하게 숨겨졌다고 보는 편이 옳다. 표준 아시아 여성의 작은 눈이나 표준 흑인 여성의 뭉툭한 코는 인종적 특성이 되어 제거의 대상이 되지만, 표준 백인 여성의 특성은 백인 인종적 특성으로 명명되거나 제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95-96).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말한다. “그런데 왜 작은 눈과 뭉툭한 코는 예쁘지 않은 것이지? 언제부터?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와 책임은 한국 여성에게 있지 않다”고(98). 요컨대 임소연은 성형을 객관적 분석의 대상으로 두기보다 그것을 택한 이들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몸이 통과한 의례들을 서술한다. 의외로 이러한 글은 결코 흔하지 않다.


임소연은 기술과 결합한 적이 있는 몸을 사이보그라 칭한다. 고로 성형을 받은 적이 있는 몸은 사이보그다. 한데 이 사이보그에 대한 임소연의 설명은, 통상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나는 사이보그란 단어를 들으면 ‘향상’이나 ‘매끈함’과 같은 말이 즉각 떠오른다. 사실 성형에서 연상되는 단어들 또한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은 광고를 비롯한 갖은 매체에서 비롯한 허상으로, 임소연은 자신의 또 다른 책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서 성형에 대한 실상을 말한다.     


사이보그가 되어 본 여성들은 안다. 사이보그란 기술과 몸이 결합하는 순간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끊임없이 타협하고 협상하며 몸을 돌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항생제와 진통제를 먹고, 부기를 내리려 찜질하고, 일부러 베개를 높이 베고 음식을 잘게 갈아 마시는 수고를 다하는 일임을.

현실의 사이보그는 기술을 통해 변화한 몸과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가야만 한다. 수술 덕분에 더 예뻐졌는지, 수술 결과가 내게 만족감을 줬는지, 성형 후의 삶이 행복한지 등은 변화한 몸과 맺은 새로운 관계의 결과물이지 기술 자체의 결과가 아니다. 사이보그가 된다는 것은 성공과 실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객관식 문제 풀이가 아니라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는 긴 주관식 답안을 적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답안은 기술에 충실하면서 기술을 배반하는 깊은 모순의 이야기다. (164-165)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가 불식시키는 가장 큰 오해는 성형이 성공과 실패, 이 두 가지 답안으로 깔끔하게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의 눈과 손, 그리고 각종 기계 장비들 속에서 베이고 잘려 나간 내 몸은 이후 염증의 위험과, 지난한 회복과, 불안과 적응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무사히 치른다 해도 만족스러움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수술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실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술이라는 기술이, 재수 없는 경우만 피한다면, ‘매끈한’ ‘향상’을 보장할 것이라 착각한다. 임소연은 수술 이후의 과정과 그것의 실제 효과를 가감 없이 기술함으로써, 사람들이 성형에 대해 보다 정확한 인지를 갖길 바란다. 때로는 정치적 신념보다 환상의 실체를 직면하는 것이, 성형을 단념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형수술을 통해서 ‘내가 예뻐졌다’고 생각하려면 여러 차원에 존재하는 몸에 대한 평가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 뼈의 위치와 모양이 바뀌었지만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이 예쁘지 않다면 과연 예뻐졌다고 느낄 수 있을까?”(191)     


그러나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가 지향하는 바는, 성형을 권장하는 게 아니듯 적극 만류하는 것 역시 아니다. 책에는 성형을 고려하고 있는 이들이 참고할 만한 조언이 담겨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 책은 강경한 신념을 가진 이들에게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적 시선을 탑재했으면서도 성형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바로 그 혼란스러움을 느낀 당사자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 글의 정치적 입장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읽어내려 애썼다. 그러다 정작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고는 얼마간 혼란스러워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집어 올린 이 책에서 나는 여성 개개인에게 모든 사회적 책임을 지우고 그들을 윤리적 심판대에 올리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임소연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물론 성형수술을 받은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기형이나 원치 않는 사고 등에 의해서 손상된 외모를 복구하기 위한 성형수술이나 심각하게 저해된 신체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용 성형수술을 받은 이들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사람들은 훨씬 더 너그럽다. 그러한 성형수술은 마땅히 행해져야 하는 것이기에 여느 의료행위와 다를 바 없이 성스럽고 윤리적인 것이 된다.

성형미인을 손가락질하는 관객들의 시선은 성형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음에도 받은 이들을 향한다. 그들은 소위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외모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하고,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육화하고자 노력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신체 재건이나 의학적 필요에 의해서 행해진 성형수술에만 너그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많은 관객의 눈은 사실 그다지 심오하지 않다. 그들의 윤리는 얄팍하다. 성형수술을 얼마나 어떻게 받았든 겉으로 보아 자연스러운 외모, 즉 성형수술을 한 티가 거의 나지 않는 외모를 갖게 된 이들이라면 비난이나 우려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다(106-107).


우리의 눈은 심오하지 않다. 때로 우리는 성형 이전과 이후를 분별하지 못한다. 성형의 결과가 다양하듯, 그 목적도 복잡할 수 있다. 치료와 미용에 대한 욕망은 서로 뒤엉켜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욕망을 억누르고 비웃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보다, 그 욕망과 함께 잘 살아가는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무조건 외모지상주의와 사이보그 모두를 비판하기보다 외모지상주의에 저항하는 가운데 사이보그와 공생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기서 공생이라 함은 예의를 보이는 걸 의미한다. 타인의 얼굴에 말이나 손가락을 얹지 않는 것. 이 예의의 시작은 사이보그가 매끈한 향상이 아니라는 걸 깨우치는 데서 시작한다. 임소연의 살 선언(flesh manifesto)은 나의 매끈한 향상이라는 환상에 대한 반박이다. 그의 선언을 이해하고서야, 나는 내게도 붓고 아픈 살이 있음을, 그리고 사이보그에게도 나와 똑같은 살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는 살이 주는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몸과의 연결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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