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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18. 2020

알랭 드 보통의 집에 가다.

 알랭 드 보통 인터뷰_2009년 1월, 벨사이즈 파크 런던 

참으로 길고 찬 겨울이다. 이제쯤 봄기운을 내비칠 법도 하건만 돌연 이 도시에 닥친 폭설과 한파는 십 년 만에 찾아온 것이라는 호들갑과 함께 에펠탑을 폐쇄시켰는가 하면, 내 몸엔 이전에 없던 독감 바이러스가 들어앉아 심신을 괴롭게 했다. 도리 없이 일주일을 드러누워 무기력과 싸우는 동안 “인간은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더욱 생각하게 하는 악습이 있는 모양”이라는 김현 선생의 문장을 되뇌곤 하였다. 그러던 내게 입춘의 신호처럼 날아든 반가운 소식이었으니, 바로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보내온 인터뷰 수락 메일이었다. 돌연 런던 갈 채비로 분주해졌다. 그건 단순히 ‘런던 간다’가 아니라 ‘알랭 드 보통을 만나러 런던에 간다’이기에 마음은 설렘과 무게, 업무와 사적 감정이라는 것들이 결합되어 어느 새 묵직해졌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나는 잠시 파리를 떠난다. 





아침 9시 15분, 런던행 열차에 앉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스듬히 기대어 보통의 책을 펼쳤다. “계절은 사람이 늙는 것처럼 서서히 쇠퇴해간다.” <여행의 기술>의 첫 문장이 절묘하게 시작된다. 그 순간, 불현듯 기억나는 또 한번의 절묘한 만남이 있었으니 5년 전쯤의 어느 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영종도’라는 섬에 잠시 살았던 시절. 모든 것이 까닭 없이 슬프고 막막한 젊음이었던 그 때 난 이따금 인천공항으로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으로 위안을 얻곤 하였다. 그리고 화사한 어느 공휴일 오후, ‘떠나는 자’들로 북적이던 공항 서점을 홀로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눈에 띈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을 집어 펼쳤던 일이 있었다. 바로 그 때 내 눈에 번쩍 읽혔던 문장, “우울할 때면 기차나 공항버스를 타고 히스로 공항으로 가, 2번 터미널에 있는 전망대나 북쪽 활주로 변에 있는 르네상스 호텔의 꼭대기 층에서 비행기가 끊임없이 뜨고 내리는 것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아! 그 절묘함에 되려 황망하여 차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그 순간, 그리고는 곧 이런 기막힌 일치야 말로 ‘독자와 필자’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만남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던 기억. 정황이 이러하니 이 작가를 향한 나의 편애는 마땅하다 할 만 하다. 





이후 섭렵한 그의 책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프루스트를 아시나요?> 그리고 <불안>에 이르기까지. 귀가 접힌 수 많은 페이지들과 두텁게 밑줄 그어진 문장들 모두는 알랭 드 보통 식의 사유와 리듬에 대한 나의 찬탄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장에 매료 당한 자, 비단 나 뿐이 아니어서 그 무렵 이미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의 독자들, 특히 일상에 만연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 만큼이나 예민한 감성을 가진 무리들을 조용히 매혹시키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모든 매체, 에디터들의 글에서 빈번히 ‘알랭 드 보통’이 인용되는 걸 목격하였다. 또한, 내던질 수 없는 일상에 발이 묶여 홀연히 여행하지 못하는 괴로운 자들의 블로그에 발췌된 보통의 “몸은 잠을 이루기 힘들어했고, 더위, 파리, 소화가 안 되는 호텔 식사에 대해 불평했다.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와 같은 문장은 그들을 위로하는 몫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평단의 그 어떤 긴긴 서평보다 보스턴 피닉스의 “보통에게는 독자가 아닌 팬이 있을 뿐이다”라는 표현은 탁월하다. 





그는 분명 ‘전지적 작가시점’으로서의 작가가 아니다. ‘에세이스트 알랭 드 보통씨’는 우리들처럼 갑작스런 불안에 휩싸이곤 하며, 금새 무언가에 싫증을 내는 연인에게서 버림 받을까 두려워하는 범인의 범주에서 문장을 풀어낸다. 바하의 칸타타가 흐르자 ‘소음 좀 꺼달라’고 외치던 여인에게 실망하고, 야자수가 만들어 놓은 그늘에 누워서 조차 밀려 있는 과업을 걱정하는 일상인의 모습은 알랭 드 보통이 어느 날 겪은 삶의 사소한 국면이었으며, 더불어 우리들의 국면이기도 하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방대하게 독서하였고, 우리가 보지 않는 것들을 늘 몇 초간 더 응시하였으며 태생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팔라디오를 맘껏 직조하고, 니체와 보링거, 플뢰베르의 수사들을 우리의 비루한 삶과 ‘상관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예술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을 우리가 정말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발레리의 문장을 알랭 드 보통에게 헌사 해도 무관할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과 플라톤을 들먹이며 사랑을 이해해보려 발버둥치던 20대의 철학도는 이제 두 사내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한밤의 집필을 즐기던 그가 아이들의 기상과 취침에 맞추어 낮 시간에만 글쓰기를 할애하는 전도된 일상을 기꺼이 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지금, 자신은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관한 문제는 삶에서 일단락 되었으며 더 이상 사랑에 관한 글은 쓰지 못할 거라 단언한 알랭 드 보통. 그렇담 우리가 읽은 그의 마지막 책 <행복의 건축> 이후 그는 삶의 어떤 영역에 골몰하며 서재를 어슬렁거리고 있을까. 천천히 열차가 멈춰 섰다. 호주머니에 찔러 둔 작가의 집주소를 다시 한번 꺼내 외워둔다. 생 판크라스 역 플랫폼을 걸어나오니 빨간색 2층 버스가 비를 맞으며 서행하고 있다. 깃 세운 초록 자켓을 걸쳐 입은 청년은 담배를 입에 물고는 우측통행으로 보행하고 있다. 여기는 런던이다. 










박선영:우리가 오기 전까지, 오전에는 무얼 하면서 보냈나?

알랭 드 보통:글을 쓰고 있었다. 봄에 출간될 책이 있어 마무리 중이다. 보통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집필을 위한 시간이다. 



박선영: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리’로 가느냐고 했다. 당신 이름 때문에 프랑스인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기회에 당신의 ‘뿌리’를 확인했으면 한다.

알랭 드 보통:난 프랑스어를 쓰는 스위스 지역 출신이며 12살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인으로 생각하지만 국적은 스위스다. 그리고 내 아버지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나 스위스로 이주하셨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너무 복잡해지는데 간단히 말해 우리 집안의 기원은 스페니쉬 반도 중부의 지금은 사라진 ‘Boton’ 이라는 마을로부터 유래한다. 




박선영:당신의 젊은 시절을 20대로 한정하고, 그 시절에 가장 두렵고 괴로웠던 게 무엇이었는지 들려달라. 
알랭 드 보통:내 20대의 가장 큰 도전은 ‘사랑’과 ‘일’에 대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내 사랑은 늘 불행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나와 삶을 함께 할 멋진 여인을 만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일에 있어서도 내가 과연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는 있을런지, 어떻게 해야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많이 힘들어 했던 것 같다. 




박선영:그래서 23살 때 썼던 첫 번째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낱낱이 파헤쳐 볼 생각을 하게 된 건가?  
알랭 드 보통: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늘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욕구이다. 특히, 20대 시절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고자 애썼던 것 중 하나가 남녀관계다. 우선은 나를 도울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고, 집필은 나에게 자기치료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글쓰기는 내가 당면한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도록 해주어 자연스레 두려움을 덜어주었고, 그 문제 자체가 내 일상을 모조리 지배하는 걸 막아주었다. 러브스토리와 철학적 분석이 조합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독특한 구성 형식은 당시의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박선영:재미있는 건, 당신의 책을 덮은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받아들일 때 복잡한 심경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왜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우리는 혼란스러워할까?
알랭 드 보통:‘사랑의 감정’이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사랑의 감정 때문에 생긴 ‘사랑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거나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다거나 하는 두 경우가 가장 전형적인 혼란스러운 상황의 예다. 두 사람이 같은 양의 사랑을 주고 받는 경우는 참 드물다. 대부분의 사랑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두 사람이 다른 양으로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이해하고 그와 온전히 소통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결국 인간은 자기중심적이지 않는가. 특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경우 우리가 종종 휩싸이게 되는 부정적 감정이나 언짢은 기분을 서로에게 드러냄으로써 사랑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박선영:당신은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그저 운명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알랭 드 보통: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있기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 가능성들을 시험해보거나 탐험을 시도한다. 그리고 때론 잠재된 가능성마저 묻혀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부모로써의 가능성을 가진 남녀가 서로 만나지 않는다면 결국 부모는 될 수 없다.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항상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건 그 누구도 결코 시험해보거나 실행하지 못한다. 삶이라는 건 수많은 가능성들로 점철된 예측 불가능 그리고 혼란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행복한 감정에 잠시 빠져 있을 때에는 그것이 운명이라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박선영:불행한 사랑을 많이 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는데, 사랑의 상처를 남겨준 여인들에게 고마워해야겠다. 젊었을 때 실연하면 대부분 방황을 하게 마련인데, 글쓰기에 착수한 당신은 어쩔 수 없는 글쟁이인가 보다. 
알랭 드 보통:사랑이라는 어려움이 삶에 닥쳤지만 난 그 상황을 정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감정적으로 대처하려 하거나 회피하려 하지만 설득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삶의 어두운 면들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책 밖의 세상이 침묵하는 부분을 책 속에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러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 내가 겪은 사랑의 상처가 책을 쓰도록 동기유발은 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책 읽기와 다양한 어휘들의 뉘앙스를 사랑하고 무언가를 분석해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 난 늘 문장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글을 읽는 걸 즐거워했다. 모든 작가는 결국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이다.




박선영:20때의 사랑과, 지금 40대가 되어서 생각하는 사랑에 있어 차이가 있나?
알랭 드 보통:난 아직 40대가 아니다. 영국 나이로 39살이다. (웃음) 물론 20대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은 많이 다르다. 더구나 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20대의 사랑은 주로 감정적인 차원이었는데 결혼과 출산이라는 상황의 변화가 사랑의 개념을 바꾸게 된다. 결혼을 함으로써 쉬워지는 점과 어려워지는 점이 있는데 쉬워지는 건 상대방이 나를 떠날까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어려운 점은 이별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결혼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예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박선영:인생에 아이가 생겼다는 것도 큰 변화인가?
알랭 드 보통:그렇다. 나의 삶 전체와 작가로써의 인생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변화다. ‘나’라는 개인과 관련된 여러 세대와 역사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나의 부모 그리고 조부모의 삶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그들을 양육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집에서 야생 원숭이들을 기르는 것에 비유한다면 상상이 되나? 집 안은 동물원처럼 소음이 잦아지며 그 때문에 가끔 부부 사이에 스트레스가 발생하곤 한다. 




박선영:글은 습관처럼 매일 쓰는가? 아니면 꼭 쓰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만 책상에 앉나?
알랭 드 보통:가능하면 글은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영감이 오길 기다린다면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달리 효율이나 성과를 가시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결과물보다는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사유하고 다듬어야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박선영:‘여행’ ‘건축’, ‘불안’ 등 당신이 썼던 주제는 늘 당신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글의 소재, 주제는 어떤 식으로 발견되는가?
알랭 드 보통:내 글의 주제는 주로 일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매우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너무 추상적이거나 내게서 멀리 있는 소재들을 찾지 않는다. 나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주거나 반대로 실타래처럼 얽혀 내 삶을 어렵게 하는 것들에 대해 쓴다. 그래서 행복, 불행, 가족, 일 등 삶의 일상적 화제들을 다루어왔고 그런 것들이 흥미롭다.    




박선영:은유가 많은 당신 글을 볼 때 사물과 상화에 대한 탁월한 묘사에 놀라게 된다. 마치 ‘묘사’를 통해 문장과 놀이하는 것처럼.   
알랭 드 보통:나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묘사의 힘이 필요했다. 특히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표현하는데 있어 묘사가 주는 힘은 강력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난 되도록 씨실과 날실처럼 설명과 묘사를 번갈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글의 전체적인 방향을 끌어감에 있어 설명 또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소설가의 묘사성과 철학가의 논리성,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작동한다. 




박선영:아무리 글을 잘 쓰는 당신이지만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어디로 도피하는가? 
알랭 드 보통:대개는 책 속으로 도피한다. 여지가 없다. 나에게 영감과 도움을 줄 책을 택해 그 영웅을 따라가 본다. 때론 사진이나 건축, 그림과 같은 다른 형태의 예술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어떤 영감을 기대한다. 모든 예술이란 결국 통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박선영:독자 입장에서 실제로 ‘공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 앉아 있는 당신을 상상하곤 한다.
알랭 드 보통:가끔은 물리적인 도피를 하기도 한다. 난 목적지와 출발지 사이에 위치한 그러한 ‘사이공간(between places)’들을 좋아한다. 집이 아닌 어떤 특정한 공간은 예기치 않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작가들이 자신의 서재를 떠나 호텔방에서 글쓰기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곳으로부터 벗어나있는 것이 작가에게는 긍정적인 시도가 될 수 있다.  




박선영:살아있다면 교감하고픈 사람. 혹은 죽었지만 당신과 자주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작가나 예술가가 있나?
알랭 드 보통:‘예술’은 그저 ‘예술’로써 교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아직까지는 직접 만나거나 대화를 나누고 싶은 예술가는 없었다. 다만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페인팅을 통해서는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나누었으면 한다. 난 그의 그림 속 외로움이 좋고 감정이입을 통해 어떤 공감을 이루곤 한다.   




박선영:여섯 명의 철학자(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워, 니체)를 등장시켜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알랭 드 보통:<철학의 위안>을 쓰게 된 사소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여섯 명의 철학자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였다. 그들 모두는 어떤 면에서 전통적 서양 철학사의 주류는 아니지만, 삶의 지혜와 인간이라는 존재로써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인 이들이었다. 그 사유들이 서양철학에서 유행하는 사고라기보다 동양철학에 가까운 개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글을 쓰며 그것들을 배워보고자 했다. 삶에서 종교가 너무 멀어진 현대인에게 이제는 철학이나 예술이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박선영:여행은 자주 하는 편인가? 지금 마음 속의 가장 그리운 장소는 어디인가?
알랭 드 보통:런던에 있는 나로써 지금 가장 그리운 건 따사로운 햇볕이 있는 곳이다. 캐리비안이나 몰디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늘 꿈꾸는 곳인데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여행은 꽤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책 프로모션을 계기로 여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올 해에는 새 책의 출간과 맞추어 호주와 미국에 갈 예정이다.




박선영:런던에 제법 오래 살았는데, 다른 도시로 거주지를 옮겨 볼 생각은 없나? 
알랭 드 보통:암스테르담이나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보고 싶다.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모던하고 산뜻한 분위기가 좋다. 샌프란시스코는 그 환한 태양과 바다, 온화한 날씨 때문에 늘 매력적이다. 런던에 오래 살다 보면 좋은 날씨는 거의 축복에 가까운 것이라 여기게 된다.  




박선영:플뢰베르가 그토록 갈망하던 이집트에 가서도 곧 권태를 느끼고 실망하는 것처럼 결국 인간은 어디에서도 온전히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일까?
알랭 드 보통:오랫동안 온전히 만족하기란 불가능하다. 여행이 늘 전제로 하는 문제는 우리가 먼저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서 여행지를 꿈꾸는데 있다는 것이다. 신속히 그 이미지와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만, 실제로 그 여행지를 오래도록 사랑하기는 어렵다. 우리 삶을 만족스럽게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사람의 이미지와 쉽게 사랑에 빠져 실체를 직면했을 때 쉽게 무료해지거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사랑도 완벽한 장소도 없다.    




박선영:‘행복의 건축’을 쓰기 이전부터 건축이 취미였다고 들었다. 인생에 ‘건축’이 어떻게 침투하게 되었나?  
알랭 드 보통:건축은 우리를 물리적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그림이나 조각 등 다른 예술장르를 포함하기에 가장 총체적인 시.감각적 예술이라 생각된다. 때문에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은 내가 건축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런던의 건물들이 늘 완벽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거리를 걷다가 종종 저 흉측한 건축물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물론 실제로 건축 공부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박선영:건축에 대한 책 한 권을 썼으니 적어도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그림은 머리 속에 그려지고도 남을 것 같다. 인터뷰에 보니, 건축가 그룹 헤르촉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알프스에 지은 어느 집에서 가장 살고 싶다고 했더라. 그 집의 어떤 요소 때문이었나?
알랭 드 보통:그 집을 사진으로 본 순간 단순한 형태와 여백 그리고 견고한 느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살게 되면 끔찍할지도 모르지만.(웃음) 가끔 내가 살 집을 상상해보곤 하는데 어느 장소에 짓느냐에 따라 집의 그림이 달라진다. 당연히 런던에 짓는 것과 브리스톨 같은 곳에 짓는 집 모양은 달라질 것이다. 좋은 건축은 주변 환경과 재료를 고려한 것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아직은 상상이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건축 양식들을 다 동원해보곤 한다. 




박선영:이사 오기 전, 이 집의 어떤 점이 맘에 들어 당신 가족의 새 보금자리로 결정했나? 
알랭 드 보통:여러 이유들이 있었는데, 우선 아주 현실적으로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가깝기 때문이라는점과 집필을 하기에 아주 조용한 동네라는 점이었다. 쌓여만 가는 책들을 위해 좀 더 넓직한 서재도 필요했다. 사소하게는 저 창문 옆에 달린 작은 램프 두 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너무 귀엽지 않은가.  




박선영: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서재가 늘 궁금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의 위치가 늘 정해져 있나? 최근 가장 자주 당신 손에 잡히는 책은 무엇인가?
알랭 드 보통:글을 쓰는 작가에 서재는 영감을 전달해주는 공간이며, 일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써의 장이다. 때문에 책들이 항상 내가 원하는 자리에 있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떤 고민을 하며, 어느 예술가나 철학자를 탐구하고 있느냐에 따라 책들의 위치는 달라지곤 한다. 요즘 다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고 있는데, 가장 빠져 있는 책은 로베르토 볼라노(Roberto Bolano)의 ‘2666’ 이라는 소설이다. 
 




박선영:‘진정 아름다운 작품은 좋은 특질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현한다.’는 당신의 말에 백 번 공감한다. 살면서 ‘스스로 체현하던’ 작품이나 건축물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들려달라. 
알랭 드 보통:그런 경험은 흔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빠질 만한 어떤 건축물이나 의자는 사람처럼 개성이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금 내 뒤에 걸린 작은 나무그림 두 점이 최근 내 마음을 빼앗은 작품이다. 무명화가 스티븐 테일러(Steven Taylor)의 작업인데 치밀한 자연 묘사와 내뿜고 있는 시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그림을 보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인상이 내게 다가왔다. 런던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런 고요한 풍경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어디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그리움의 대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박선영:지속적으로 예술을 주목하는 것 같다. 최근 당신의 ‘레이더’에 걸린 예술가나 작품이 있다면? 
알랭 드 보통:최근엔 프랑스 아티스트 소피 칼(Sophie Calle)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사진과 텍스트, 자신의 사생활 그리고 게임의 형식을 작품에 결합하여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텍스트를 만들기 위해 생각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글을 쓰는 작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미술관 전시의 형식 뿐만 아니라 책의 형태로 작품을 보여주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지극히 사적인 내러티브로 출발하는 그녀의 독특한 작업은 나에게 어떤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한다.       




박선영:살면서 누구나 외로움에 직면한다. 당신처럼 예민한 사람은 ‘외로움’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
알랭 드 보통:이번에도 ‘예술’이라고 대답해야겠다. 여러 시도들을 해봤지만 내 경우는 예술로써 외로움을달래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누구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피할 수 없다.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착각일 뿐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다만 외로움이란 건 모양도 각기 달라서 우리는 그 다른 종류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되도록 여러 친구들을 곁에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박선영:<여행의 기술>에 보면 시인 워드워즈가 “위대한 시인은 인간의 감정을 건전하고, 순수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한 문장이 나온다. 비유해서, 좋은 작가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알랭 드 보통:우선 워드워즈가 말한 그 짧은 문장이야말로 위대한 작가의 조건을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좋은 작가란 우리가 일상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면들을 상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즐거움’과 ‘행복감’ 뿐 아니라 ‘죽음’의 문제 같은 상기시키기 싫지만 정작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들을 직면하게끔 만듦으로써 말이다.




박선영:당신은 소설가인가 에세이스트인가? 
알랭 드 보통:에세이스트이다. 글로써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경험한 삶의 영역이며 거기서 비롯된 아이디어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출판할 당시 소설로 소개되어 종종 이 질문을 받곤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에세이라 할 수 있다. 그 책이 픽션의 형식도 취하고 있지만 내 일기를 바탕으로 썼다는 점에서 에세이이다. 당시 출판사 측에서 소설로 소개해야 더 잘 팔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박선영:철학전공자가 쓴 책치고 당신만큼 인기가 많은 작가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당신의 독자들은 대부분 큰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간혹 열혈 독자들도 있지 않은가?
알랭 드 보통:사실 이메일을 통해 프로포즈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국의 여성 독자였다. 물론 난 이미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내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자고 제안한 그 편지가 당황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책을 쓰면서 늘 내 감정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려 하는데 그 때문에 독자들이 ‘알랭 드 보통’이라는 한 인간을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들은 종종 열혈독자로 인해 방해를 받거나 곤란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난 기분 좋은 팬레터를 많이 받아 감사할 따름이다.  





박선영:난 내일 ‘라이(Rye)’에 간다. 오로지 작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가 살았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영국에서 오래 살았고 귀화까지 했다. 신대륙의 사람이 느낀 구대륙의 매혹. 이런걸 누군가 ‘교차매혹’이라고 표현했는데, 결국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들에 매력을 느끼는가 보다.
알랭 드 보통:그렇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나에게는 런던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오늘 런던에 도착한 당신에게는 이 흐린 날씨마저 매력적일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서울에 간다면 그곳의 지하철 티켓 모양이 흥미로울 수 있다. 언젠가 일본에서 일본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그 때 본 사찰이나 신사, 전통 가옥들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다른 세계였다. 인간의 호기심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건 여행을 떠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여행을 통한 ‘낯섦’의 경험은 긍정적인 종류의 것이다.





*12년 전 내가 파리에 거주하고 있을 무렵, 런던 벨사이즈 파크 알랭 드 보통의 자택에서 진행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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