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선영 Aug 19. 2020

마틴 파의 재미난 여행

사진가 마틴 파 인터뷰_2009년 2월 파리 

무채색이 감지된 파리의 초겨울은 ‘파리 포토(Paris Photo)’의 개막과 함께 분주하게 시작되었다. 금년으로 열 두 번째를 맞는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사진이 차지하는 자리가 넓어져가고 있음을 확인하듯 ‘루브르 카루젤’의 나흘은 각국에서 온 사진계 인사들과 관람객들로 내내 인산인해였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는 150여 년 전 사진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싸늘한 오전이지만 정오 무렵이면 난 오늘 아침 유로 스타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왔을 사진작가 마틴 파를 만난다. 그는 이번 ‘파리 포토’에서 뉴욕의 ‘자넷 보든(Janet Borden)’ 갤러리를 통해 ‘파노라마_마틴 파’라는 솔로 쇼를 선보이게 된다. 백 여 개가 넘는 부스들로 빼곡한 넓디 넓은 전시장에서 그가 일러 준 번호만으로 약속지점을 찾기란 애초에 수월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 외로 금방 목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19세기 중반쯤의 흑백사진들 사이에서 섬광처럼 눈에 띈 마틴 파의 ‘컬러사진’들 때문이었다. 황망하게도 우리들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안경 쓴 마틴 파의 모습은 흡사 영국 어느 소도시의 중학교 문학선생님 같았다. 귀에 설은 강한 영국식 악센트는 늘 그의 문장 끝에 붙던 ‘Ladies’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유를 둔다. 굳게 다문 입술엔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선 종국엔 촌철살인의 ‘농’을 날리는 사람의 긴장이 담겨 있다. “파리 포토는 아주 흥미로운 장소예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매해 변해가는 사진경향들을 경험할 수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마켓이기도 하죠. 게다가 저는 하루 만에 왔다가 갈 수 있으니(웃음)”




‘마틴 파’라는 이름은 반사적으로 ‘여행’이라는 단어를 뒤따르게 한다. “나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낯선 곳의 사람들과 장소들이 오버랩 되어 새롭게 사진으로 표현되는 것이 저에겐 가장 흥미로워요. 촬영이 아닌 휴가를 갈 때도 카메라는 지니고 다니는데, 그건 일종의 취미로서이죠. 어쨌든 제 취미이자 열정인 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니 그건 늘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여행시리즈’ 사진 속에는 우리가 당도한 여행지의 적나라한 정황들이 포착되어 있다. 그러나 그 포착된 여행지는 우리가 바램 하는 휴식과 평안을 주는 거처가 아니라 마치 여행의 초입에서 응당 겪곤 하는 택시기사와의 요금 흥정과 같이 너무나도 리얼한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다. 1986년의 시리즈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1986)에서는 해변 휴양지로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희망하는 ‘한 여름의 휴식’을 담보하기 위해 사투하고 있다. “<마지막 휴양지>는 휴양지가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 상품화로 퇴색해버린 정황을 표현해보려는 시도였지요. 돌아보면 제가 ‘뉴브라이튼’에 오래 살았었기 때문에 그곳의 역사와 거길 찾아와 기어이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때문에 저에게 가장 애착을 주는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인파로 넘쳐나는 비좁은 해변가, 천진한 아이 손에 들려 녹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 줄을 길게 늘어선 휴양지의 지저분한 간이 매점, 그리고 공사를 멈춘 포크레인이 만들어 놓은 그늘아래 엎드린 남자의 모습은 마틴 파 만의 과감한 프레임과 더함도 뺌도 없는 즉물적인 컬러로 인해 너무 사실적이다 못해 연극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 휴양지> 이후 영국을 벗어난 마틴 파는 7년 동안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돌며 여행의 의미에 ‘글로벌리즘’이란 화두를 덧붙였다. 장대한 알프스를 뒤에 두고도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는 부부, 로마제국의 옛 건물들 주변에서 마주치는 조악한 미니어처들의 향연 그리고 총체적 인간신화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 신전 앞에서 포즈를 취한 단체관광객들에 이르기까지 마틴 파의 사진 속 풍경들은 그저 작품으로 관조하기엔 심적으로 너무나 ‘우리들’과 가깝다. 몇 해 전, 해발 3천 미터쯤 되는 알프스 산맥에 올라 멋진 설경과 입맛에 맞는 식사에 만족스러워 하면서, 문득 오늘날 여행은 더 이상 차이와 다름을 긴장하는 경험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낯선 곳에서 더 이상 낯설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가야 할 곳과 먹어봐야 할 음식들로 정연한 ‘론리 플래닛’ 덕분에 모두가 똑같아 지는 여행의 행보야 말로 말로 마틴 파의 사진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이 아닐까.




언젠가 어느 사진작가가 말하길 좋은 사진가가 되려면 적어도 13살 이전에 부모에게 좋은 카메라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했다. 선택 보다 강력한 필연의 힘을 지지한다는 의미일게다. 그렇다면 마틴 파는 그 한가지 조건에는 오롯이 부합하는 것이 된다. “제가 13살 때 할아버지께서 카메라를 하나 주셨어요. 그 사진기를 들고 매우 흥분했었죠. 이후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카메라를 조작하고 현상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늘 그 사진들을 모아 놓곤 했었는데 그 때 전 이미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카메라를 계기로 자신의 삶에 ‘사진’이라는 세계를 흡수했던 유년기 이후 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진을 찍어왔다. 그리고 70년대 초, 8달러에 팔곤 했다는 사진 가격이 지금은 내가 모르는 큰 액수이다. 이제껏 출판된 작품집도 수십 권이며, 사진작가에게 명예의 전당쯤 되는 ‘매그넘’에도 속하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요즘 가장 많은 시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저는 힘이 남아 있는 한 계속 작업을 해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 가고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마치기까지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싸움, 시간과의 싸움을 위해서 늘 계획은 더 치밀해져요. 그래서 시간이 나의 적이고 가장 큰 고민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그는 늘 ‘열정으로 하라, 그것이 전부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열정 때문에 지구를 몇 바퀴 돌았으면서도 여전히 그는 세상이 궁금한 것이다.





마틴 파와 인터뷰를 하던 내내, 부스에 몰려든 관람객들의 절반은 그의 유명한 ‘마지막 휴양지’ 시리즈를 카메라에 담아 가려는 사람들이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유명한 ‘마틴 파’를 찍으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가 인터뷰를 끝내고 자신이 앉았던 의자 위에 올라가 카메라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을 때 조심스러워 하던 사람들은 마침내 마틴 파를 향해 플래쉬까지 터뜨려가며 즐거워했다. 긴장을 풀고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우리 중 절반 이상은 마틴 파의 사진을 보면서 새로운 여행지를 갈망하거나 과거에 다녀온 유럽의 옛 도시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사진들이 비록 고단한 여행의 댓가를 담고 있을 지라도 말이다. “저는 제가 보는 세상을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사진이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죠. 제 사진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확대 해석하자면 ‘보는 것은 자유’라는 그의 답변에 왠지 마음이 놓였다. 늘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많았던 여행지, 일례로 파리에서 프랑스어보다 영어를 많이 들었던 쓴 기억이 있을 지라도 이 겨울, 다시금 ‘여행’이란 말에 설렌다. 요절했다는 모짜르트가 너무나도 천진하게 웃고 있는 금색 포장지의 ‘모짜르트 초콜릿’을 먹으며 ‘잘츠부르크’를 추억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된 일상에 대한 가역반응이기 때문이다.  글/박선영 









작가의 이전글 무용수로써의 줄리엣 비노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