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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19. 2020

무용수로써의 줄리엣 비노쉬

배우 줄리엣 비노쉬 인터뷰_2009년 2월 파리

Juliette Binoche On The Stage 

시간은 80년대 초반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미소년의 분위기를 간직한 앳된 여인에게 “앞으로 배우로써 활동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나긋이 “계획 같은 건 없어요. 난 이미 배우인걸요.”라고 답했다. 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무명 시절 어느 오디션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프랑스는 애초부터 ‘뭐가 달라도 달랐던’ 그녀였노라고 입을 모았다. 영화 <데미지>, <퐁네프의 여인들>, <블루>, <쵸콜릿>, 굳이 더 나열하지 않더라도 ‘줄리엣 비노쉬’라는 배우는 응시하는 눈빛만으로도 마주한 자의 마음을 무너뜨려왔다. 스크린 안에서든 밖에서이든 이 여인만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스크린이 아닌 무대에 올라 무용을 시작한다. 70여분 동안 무용으로써 자신의 호흡을 이루어 내기 위해 잠시 그녀 본연의 삶을 접은 채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내던져 갈망하는 건 인간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사랑과 고통의 몸짓 나눌 자는 2007년 실비 길렘(Sylvie Guillem)과 ‘신성한 괴물들(Sacred Monsters)’이라는 공연으로 내한했던 영국의 안무가이자 무용가인 아크람 칸(Akram Kahn)이다. 2009년의 초입, 서(西)에서 동(東)으로 가로질러 갈 줄리엣 비노쉬와 아크람 칸의 공연 <IN-I>가 이제 막 세계투어를 시작했다. 서울에서도 3월 19,20,21일 세 번의 공연이 ‘LG 아트센터’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부디 이 봄, 다시 볼 수 없을 그녀의 드라마틱한 몸짓과 거친 숨결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2월 7일 정오 무렵, 그날 저녁에 있을 공연을 위해 영국 레이체스터(Leicester)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줄리엣 비노쉬’와 전화연결이 성사되었다. 20 여분 동안 그녀와 나눈 밀도 있는 대화의 시작은 단 세 번의 수화음과 단정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을 가진 그녀의 불어식 인사였다.  


 


박선영:우선, 오늘 저녁에 공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분은 어떤가?

줄리엣 비노쉬:특별히 다른 날과 다르지 않다. 어느 때는 피곤하고 어떤 날은 기운이 넘치곤 하는데, 오늘은 괜찮다.




박선영:이번 공연의 제목이 <In–I>이다.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이야기 해줄 수 있나.

줄리엣 비노쉬:작품의 아이디어에 대한 시작은 각 개인의 내면에서부터 출발한다. <Insaid-I>, 나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한구석, 감추어진 내면 어딘가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은 자신을 타인으로 향하게 하는 방법의 성찰, 고민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흔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문제에 관해 고민한다. 대개 나와 다른 사람, 상대와 나 사이의 문제들을 생각할 뿐 내 안에 있는 자신의 문제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사실은 내 안에 있는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을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어떤 갈등이 생겨나면 그것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상대가 그 갈등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갈등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갈등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만들고 발생시키는 감정이다. 이런 성찰이 나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박선영:어떻게 배우와 안무가가 결합한 형태의 공연이 만들어지게 되었는가? 

줄리엣 비노쉬:처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주제를 가지고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단지, 아크람 칸(Akram Kahn)이 가지고 있는 무용이라는 배경, 내가 가진 배우라는 두 배경으로 무언가 새로운 형식의 창작물을 만들어 보자는 것에서 시작을 했을 뿐이다. 나의 역할은 단지 무용에 다른 분야를 접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나는 동작의 형태나 동작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내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내가 나누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움직임’ 이런 것들이 내가 열망했던 것들이다.




박선영:매우 특별한 무대일 것이라 짐작된다. 물론, 함께 한 아크람 칸에게도 그건 새로운 시도였겠다.

줄리엣 비노쉬:그렇다. 사실 아크람에게도 이런 형식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시도들이 그에게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함께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바라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 아크람은 지금껏 자신의 길을 걸어오면서 치밀하게 쌓아두었던 무용에 관한 지식과 도구들을 잠시 접어두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러한 과정들이 늘 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미국인 코치가 있었다. 사실 무대 안에 있을 때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평가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코치가 밖에서 우리를 봐주면서 많은 조언을 주었다.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박선영:당신의 개인적인 욕구나 의견들이 많이 반영되었지만 결국 ‘아크람 칸’이라는 사람과 만났기 때문에 <In-I>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줄리엣 비노쉬:물론이다. 아크람과 나의 만남은 차이의 대면이면서 동시에 흡사한 점이 많았다. 나는 우리가 가진 열정에 대한 공통점들이 많다고 생각 했는데, 둘 다 호기심이 많았으며, 타인을 필요로 했다. 마치 삶에 목말라 있었던 영혼들처럼 말이다. 예술적 취향에 있어서도 닮은 점이 많았고, 감성적으로도 매우 비슷했다. 단지 다르다면 각자가 자라온 삶의 뿌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이슬람신자이고, 방글라데시 사람이다. 모든 면에서 아주 독특하다. 무용을 하는 도중 때론 나의 행위가 그를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 역시 그가 바랬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면서 내가 그를 끌어내었던 것만큼 그 역시 나를 충분히 이끌어 내주었다. 




박선영:아크람 칸의 다른 공연들을 본 적이 있는가? 더불어, 그와는 어떻게 만났는가?

줄리엣 비노쉬:아크람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런던에서였다. 2006년도에 <Breaking and Entering> 이라는 영화가 개봉할 무렵 런던에 갔을 때 우연히 아크람 칸과 시디 라르비 셰르카우이(Sidi Larbi cherkaoui)가 함께 했던 공연 <Zero Degree> 를 봤는데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마침 나의 마사지사가 아크람 칸의 프로듀서의 아내였기 때문에 소개를 통해 그를 만나게 되었다. 공연을 본 이 후 그들은 나에게 아크람과 함께 스튜디오에서 3일간 연습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결국 마지막 날에 아크람과 나는 함께 무언가를 함께 도모해보기로 결정했다.  




박선영:처음으로 무용이라는 장르에 도전하면서 두렵지는 않았는가?

줄리엣 비노쉬:물론 걱정이 많았다. 내가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워 보였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내 몸이 정말 잘 참고 견디어 주어서 놀라울 정도다. 몸이 그렇게 진화 할 수 있다는 것이 감동스러웠다. 그건 끈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무릎수술을 했었기 때문에 처음에 좋은 몸 상태로 시작할 수 없었다. 내 몸 상태를 관리해주시는 중국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어쨌든 내 신체의 이런 의외의 결과에 모두가 놀랐다. 나 자신도 말이다.




박선영:쉼 없이 70분이나 진행되는 공연이다. 초연이 올라가기까지 얼마 동안의 준비기간이 있었나?

줄리엣 비노쉬:4개월 정도 준비하고서 무대에 섰다. 공연을 올리기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박선영:관객을 마주하면서 쉼 없이 연기해야 하는 무대 공연은 당신에게 더 익숙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줄리엣 비노쉬:무대 위에 있으면 관객과 함께 공연을 하고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함께 순간을 보내는 만남 같은 것이다. 내가 무대 위에 서는 것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어떤 특별한 순간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무언가를 창조하는 순간이다. 영화와는 분명히 다르다. 더 강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나 카메라 앞에서나 내 마음가짐은 언제나 같다.




박선영:무용이라는 분야는 카메라와 다르게 다른 것들을 요구할거라고 생각이 든다. 무용과 당신으로 하여금 어떤 에너지를 더 요구하는가?

줄리엣 비노쉬:나는 전문 무용수가 아니다. 한 1년 정도 나를 무용수로 만들었을 뿐이다. 분명히 내 일을 그만 둔 건 아니다. 전문 무용수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신체를 단련시킨다. 아마도 항상 그런 끈기와 습관이 베어 있어야 한다는 면에서 무용수가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매일 몸의 상태가 다르지만, 춤을 출 수 있도록 늘 몸을 준비 시켜놔야 한다. 어떤 무용을 하는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보편적으로 무용수에게 요구되는 것은 어쩌면 초인간적인 능력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배우도 긴 시간, 쉼 없는 여러 날을 보내야 한다. 하루에 14시간 이상씩 일을 할 때도 있고, 늘 그 감정에 몰입해 있으려면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박선영:아크람 칸은 인터뷰에서 ‘줄리엣 비노쉬에게서 단지 신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극적인 상태에서 어떻게 감정을 끌어내는지에 대한 방법들을 배웠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크람 칸에게서 어떤 영감을 받았으며,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는가?

줄리엣 비노쉬:매 순간 그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같은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동안에도,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에도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아크람 칸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그의 움직임을 통해서 매번 수많은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힘든 클래식 전통 무용계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신체는 그것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고, 그것을 현대 무용 안에 잘 혼합해낸다. 그래서 그가 움직이는 방법들은 상당히 뚜렷하게 다른 양식들을 보여준다. 그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박선영:아티스트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In-I>의 무대디자인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인상은 어떠했나?

줄리엣 비노쉬:그는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나누기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바람이나 연기와 같은 무대시스템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던 중 그의 ‘승천(Ascension)’이라는 작품을 봤는데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바닥에서 연기와 바람이 나와 물체를 공중에 띄우는 작품으로 우리도 그런 형식의 무대를 만들어볼까 했지만 외국 공연 시 매번 그것들을 옮겨 설치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그 시스템들을 옮기기엔 너무 비싸고, 복잡하기도 해서 결국은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쉬웠지만 그와 무대설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함께 의논하는 것이 아주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박선영:당신은 배우이지만, 무용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쓴다. 어떻게 이런 다양한 예술 활동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줄리엣 비노쉬:내가 하려는 항상 같은 표현들을 각기 다른 방법과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내가 그림을 통해서 표현했던 것은 다른 의미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감성을 표출하는 그 본질은 배우라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림은 늘 그려왔었는데 단지 공식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언젠가 내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회고하는 자리에 내가 연기했던 영화 속 캐릭터를 그린 자화상들이 전시되면서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된 적이 있었다. ‘회고전’을 마련해 준 사람들에게 난 그 자리를 통해 무언가 돌려 주고픈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연기했던 영화 속 여인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가 감독의 분신이듯이. 감독이 카메라를 어느 한 곳에 세워놓고 바라보았던 어떤 시선처럼 나도 내가 가졌던 과거의 한 시선을 걸어두고 싶었다. 모든 그림들은 결국 감독과 내가 함께 창조해내었던 인물들의 초상이었다.




박선영:공연 중에 독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상적인 대사 한 구절을 들려주기 바란다.

줄리엣 비노쉬:“I wanna love for 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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