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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Aug 18. 2020

Où et Quand?

아티스트 소피 칼 인터뷰_2008년 9월 파리 말라코프 

“언제 파리에 올 거죠? 난 24일에 여길 떠나요.” 소피 칼이 보내 온 첫 번째 답장이었다. 의례적인 인사나 어떠한 부연도 없다. 언뜻 인터뷰 요청에 응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담겼지만 그녀라면 언제, 어떤 이유로라도 단호히 거부의사를 보낼 수 있기에 난 그녀의 짧은 답을 재빨리 부여잡아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컨펌된 일정, ‘9월 22일 오전 그리고 120분의 시간’. 앞으로 3일 남짓 소피 칼을 만나는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30여 년 간의 그녀 작업들을 리뷰 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무렵 성급한 걸음은 이미 퐁피두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작업을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로써 간결하고도 미묘한 텍스트와 사진들로 구성된 그녀의 독특한 책들이 ‘소피 칼’ 이라는 여인의 이름에 부합할 만큼 퐁피두 서가의 No.70”19 라인 하나를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흥분과 무게감 사이를 오가며 그녀의 책들을 살피는 와중 문득 오늘 아침 프랑스 친구와 나눈 통화 내용이 떠오른다. 까다로운 ‘소피 칼’을 인터뷰하는 일이 적잖이 힘들고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는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상관없다. 오롯이 자신을 향해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차 무심할 수 있는, 그런 자아의 예술가를 만난다는 건 편치는 않을지언정 범상치 않은 경험은 될 수 있을 테니까.




1978년,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온 스물 여섯의 소피 칼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한 남자를 몰래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하고, 마침내 그의 여정에 합류해 베니스까지 쫓아가는 것이 그녀 작업의 출발이 된다. 1981년도에는 베니스의 호텔에 3주 동안 메이드로 취직을 해 그녀에게 할당된 객실들을 촬영한다. 벗어놓은 슬리퍼, 옷가지들, 읽던 책과 메모들, 버려진 과일 껍질들이 낱낱이 기록되고 카메라에 담긴다. 예술가의 집요한 관찰로 드러난 흔적들은 결국 이름도 얼굴도 모를 낯선 이의 개인적 취향과 사소한 습관에 직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1984년 10월, 그녀는 동경으로 떠난다. 만류하는 연인이 존재했지만 인도 뉴델리의 호텔에서 재회할 것을 약속하고 그녀는 동쪽의 섬나라에서 이국의 일상을 맘껏 감각한다. 3개월 후, 연인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뉴델리에 도착하지만 그가 병원에 있기 때문에 올 수 없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실은 그가 병원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치명적 사실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 ‘Exquisite Pain(84)’ 이라는 작업이 시작된다. 이별의 고통을 감지한 바로 그 날을 기점으로 너무나 평범했던 D-day 92일의 일상을 담았다. 1992년에 선보인 로드 무비 스타일의 영상 ‘No Sex Last Night’에서는 그녀 삶에서 유일했던 실재 결혼식을 담았다. 연인 ‘그렉 쉐퍼드’와 뉴욕을 출발해 결혼식을 올릴 라스베가스의 작은 교회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각자의 카메라는 서로 다른 시선을 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불어로 말하는 그녀와 영어로 답하는 남자의 묘한 소통을 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작품으로 만들 의도가 없었으며 그녀의 진실했던 삶의 순간을 담았다는 점에서 ‘No Sex Last Night’은 예외적이다. 결혼을 바라는 여자와 그저 사랑을 원하는 남자, 소통의 부재, 그리고 둘이 잤던 빈 침대에 초점을 맞춘 채 “어제 밤에도 섹스는 없었다” 는 소피 칼의 목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렉과 소피는 마침내 라스베가스의 작은 교회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린다.




1992년에는 작가 폴 오스터가 소설 ‘Leviathan’에서 소피 칼의 캐릭터를 빌어 와 ‘마리아’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자 그녀는 응수하듯 폴 오스터에게 ‘당신이 허구의 인물을 하나 창조해주면 그 인물로 살아보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폴 오스터는 “뉴욕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소피 칼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될 교육 입문서(왜냐면 그녀가 요구했으니까…)”라는 지침서를 그녀에게 건넨다. 그가 제시한 지침은 ‘1.사람들에게 미소 지어주기 2.낯선 이에게 말 걸어주기 3.노숙자에게 샌드위치와 담배를 나눠주기 4.하나의 장소를 사적으로 점유하기’였으며 소피 칼은 폴 오스터의 4가지 지침을 ‘Gotham Handbook(94)’이라는 이름으로 실행한다. 뉴욕 해리슨 스트리트 코너의 공중전화 부스 하나를 차지한 그녀는 그곳에 자신의 꽃병, 잡지들, 재떨이와 거울 등을 가져다 그녀의 공간으로 만든 후 사람들의 통화내역과 자신을 향한 뉴요커들의 반응을 기록한다. “아예 창문도 만들어 놓지 그래요?”, “뉴욕에서 본 가장 멋진 모습이예요.”, “사원 같은 곳인가요? 누가 여기서 죽기라도 했어요?” 같은 그녀의 행위를 향해 누구라도 던질 수 있는 사소한 말들을. 그리고 다른 시간에는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샌드위치 혹은 담배를 나누어주곤 그들과 나눈 잡담을 또 기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125번의 미소를 보내고 72번 미소를 되받음 / 샌드위치 22개가 받아들여지고, 10번은 거절됨 / 담배 8갑을 제공했고, 거절은 0번 / 154간의 대화”라는 수행의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 파빌리옹은 소피 칼의 ‘Take care of yourself(2007)’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온전히 채워졌다. 그녀는 몇 해 전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이별 통보 편지를 저널리스트, 변호사, 가수, 작가, 배우, 모델 등 주변의 107명의 여인들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 여인들에게 자신이 준 편지를 읽고 난 이후에 떠오르는 감정, 아이디어를 담은 작업의 결과물들을 주문한다. 우선, 어휘연구자인 어떤 여인은 편지에 나타난 모든 언어들을 분석하여 어휘, 주제, 억양 등을 분류한다. ‘love’라는 단어가 4번 사용되었고, ‘things’라는 단어는 3번, ‘I’를 주어로 사용한 문장들 ‘I am prepared’ ‘I am sure’ ‘I can never’ 등등을 낱낱이 해체 분석하여 문서로 만들어냈다. 저널리스트는 ‘2006년 1월 25일’ 날짜로 ‘지난 화요일 소피 칼이 X로부터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다’라는 제목의 단신기사를 싣는다. 동화작가는 ‘악마의 깃털’이라는 제목으로 백조가 등장하는 동화를 한 편 써냈으며, 성의학전문의는 소피 칼에게 ‘당신은 현재 어떠한 처방도 필요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겁니다’ 라는 진단을 내린다. 한 여인의 감정이 107명의 여인들에게 전이되어 도출된 다양한 분석과 해석 그리고 기발한 행위,그것은 일상적인 사건을 확대, 조작하여 보편적 교감을 창출하는 소피 칼 작업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실재와 허구, 그 안의 규칙, 자신과 타인, 어떤 우연의 상황과 이미지, 그리고 그 곁의 텍스트. 그녀는 이러한 일상적 재구성을 통칭하여 ‘게임’이라고 불렀다. 소피 칼이 제시하는 ‘게임’은 도처에 널린 일상의 도구들과 감정에 그녀가 덫을 놓음으로써 실행되며 그 순간 평범하고 가벼운 일상은 묵직한 인생의 성찰로 변모하여 우리를 자극한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도시에 ‘Où et Quand?’(어디로 그리고 언제?)이라는 여정의 질문을 내걸었다. 예언가를 찾아간 그녀는 언제 어디로 떠나야 하는지를 물은 뒤, 그녀가 정해 준 도시를 찾아가 지시대로 움직이며 그녀가 목격한 것들을 기록한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죽은 그녀의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나 그녀 자신을 더듬어 볼만한 어떤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로 그리고 언제?’ 그것은 세상사 모든 이야기의 틀거리가 되는 필연적인 단서이기에 다시금 그녀가 감행한 ‘게임’ 앞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서성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각자 자신의 기억을 곱씹는다. 




9월 22일 아침, 파리 남쪽 Malakoff 에 위치한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벽돌과 오랜 목조로 이뤄진 프랑스의 전형적인 메종이 아닌 따사로운 중정에 정원을 둔 흰 벽의 모더니즘 스타일 건물, 그 커다란 유리문 앞에서 그녀가 우릴 맞았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중년의 여자에게 적당한 볼륨 있는 몸매.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가 썼다면 우스꽝스러웠을 큰 뿔테 안경이 마치 자신이 주인일 수 밖에 없다는 듯 그녀의 미간에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아직 오전의 예민함이 가시지 않은 헝크러진 머리칼과 건조한 표정. 바로 저 얼굴이었던가? 연인과 함께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여정을 담은 ‘No Sex Last Night’(92)’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앙탈하던 그녀. 파파라치의 앵글 속에서 파리 시내를 누비던 베이지 빛 트렌치 코트의 영락없는 파리지엔. 더불어 폴 오스터의 ‘마리아 터너’로 분한 금발의 그녀 모습까지도, 이 순간 나와 20cm 떨어져 앉은 아티스트가 과거에 보여준 다채(多彩)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향하여는 도통 주지 않던 웃음을 ‘쥐’라는 이름으로 부르던 자신의 고양이에게는 따스히 내보이던 그녀. 인터뷰 도중의 여러 통 전화도 서슴없이 받으며 조급한 필체로 스케줄을 적는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보라빛 캐시미어를 두르곤 벽난로의 불씨를 조절하며 “다음 질문은요?” 라고 묻던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것은 비단 작품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낸 작가들을 만났을 때 휩싸이는 오묘한 감정 때문만은 아니다. ‘소피 칼’의 작업의 모티브는 대개 그녀 안에서 시작되는 것으로써 작가 자신의 ‘사생활임’을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나는 그녀의 움직임과 거실 한 켠의 박제된 동물들과 내 등을 비추던 그녀 집의 핑크빛 조명까지도 주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박선영:‘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는 우리 모두가 묻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이 짧은 여정을 예언자의 지시로 진행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소피 칼:우선, 놀이를 위해서이다. 예전에 한번은 소설 속 인물로 살아보기 위해서 어느 작가에게 내 삶에 관한 시나리오를 부탁한 적이 있다. 흥미로웠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이번에는 예언가에게 어디에 있는 내가 보이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예언가가 내 여행을 조절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 결국은 나를 놀이 안으로 이끌게 하기 위한 출발이었다.




박선영:예언자의 지시에 따라 여행을 하는 것 혹은 소설가의 지시대로 살아보는 것 같은 일종의 ‘복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소피 칼:무언가에 무작정 복종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역시나 내가 조절하는 것이기도하다. 내가 그 놀이의 규칙을 정하면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규칙을 정해 놓으면 그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도 흥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도중 예언가를 찾아가 타의적인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삶의 새로운 의미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복종 역시 일종의 규칙이고, 그것은 어떤 방향을 만들어준다. 




박선영:당신 작품에서는 영상이나 사진과 더불어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이전부터 당신에게 ‘문학’은 매우 특별했을 것 같은데, 작업에 영향을 주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소피 칼: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영향을 받을 만큼 깊이 알던 작가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미리 알았더라면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작가는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 이다.




박선영:당신이 뒤쫓으며 몰래 촬영을 했던 사람이나 당신 침대에서 잠을 잤던 사람들까지. 작품에 등장하는 그 무수한 타인들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소피 칼:매우 심리적인 질문이다. 난 작품을 통해 단지 타인들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난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내 침대에서 어떻게 잠을 자는지 증명하려 하거나 분석하지 않는다. 내가 염두 하는 것은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목적이 아니라 예술적인 목적일 뿐이다.




박선영:관객의 입장에서 당신의 작품은 그저 읽고 보는 것이 아니라 ' 사유' 하며 관객 자신의 삶과 연관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관객이 어떤 감정 혹은 입장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염두하나?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무한 자유로울 수 있나?

소피 칼:관객은 물론 자유롭다. 그러나 반대로 관객을 염두하기도 한다. 특히, 글을 읽기 쉽도록 정리해서 벽에 서서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 관객의 조건들을 최대한 고려한다. 전시장에서 작품의 텍스트를 읽는 것은 침대에 누워 편히 글을 읽는 것과 다른 맥락이다. 때문에 텍스트는 장황하지 않게 간결하고 짧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이것이 내가 관객을 고려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박선영:무엇이 당신의 작업을 결정하게 하고 방향을 주는 원동력이 되는가?

소피 칼:작업을 실행하게 하는 아이디어는 늘 복합적인 상황에서 발생하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 나의 호기심, 글을 쓰는 재미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터득한 살아가는 방법에서도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원동력이 되는 본능적인 부분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저 내게 무언가 와 닿았을 때 이것을 어딘가에 사용할 수 없을까 하고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다.




박선영:남자친구가 약속지인 뉴델리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 결국 이별을 암시하는 그런 순간의 고통은 아마 이 글을 읽는 여자들 모두 겪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통스런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결국 그 슬픔을 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그 절박함을 우린 공감한다. 이 작업을 하면서 당신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고 했는데, 일종의 치유로써의 작업인가?

소피 칼:치유의 양상들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하는 원동력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이작업의 목적은 아니다. 기분전환을 하거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예쁜 원피스를 한 벌 사는 것이 빠르다. 좀 전에도 얘기했듯이 내 관심은 오직 책의 페이지를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지, 전시장의 벽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있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목적이 아닌 방법으로써 치유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박선영:‘No sex last night(92)’ 은 당신이 연인과 함께 뉴욕을 떠나 라스베가스까지 가는 여정을 담은 영상이다. 그는 계속해서 영어로 말을 하고, 당신은 불어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때론 대화가 부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라스베가스의 작은 교회에서 당신들은 결혼식을 올린다. ‘No Sex Last Night’에 담긴 의미를 묻고 싶다.

소피 칼:우선 ‘No sex last night’은 다른 작업들과 아주 다르다. 그것은 진실한 내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정말로 그 남자와 살고 싶었고, 늘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비디오를 찍는 것은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렉(옛 연인의 이름)은 우리가 찍은 영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고 그의 바램이 어떻게 보면 이 작업의 시발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다른 것들과 아주 다르다. 난 진정으로 그와 함께 삶을 살고 싶었고 작품은 어떤 구실이었던 유일한 경우였다.




박선영: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 ‘Take Care of Yourself’는 당신에게 이별을 통보한 남자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다. 당신은 그 편지를 주변의 107명의 여인들에게 보냈고 편지를 읽은 여자들이 각자의 결과물(분석, 코멘트, 노래, 춤 등)로써 당신에게 답했다. 그녀들이 보내 온 결과물 중 예상치 못했을 만큼 당신의 흥미를 끈 작업이 있었나?

소피 칼:당시 나의 중대한 관심은 107명의 여인 중 몇 명에게 답이 돌아오느냐였다. 애초에 그 작품의 규칙은 여러 분야의 여인들로부터 다양한 답신을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각각의 것들이 개별적인 의미로써 존재하지는 않는다.




박선영:사생활을 작업의 소재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혹시 당신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있나?

소피 칼:없다. ‘Take Care of Yourself’ 라는 작품은 불과 한 두 달 정도의 내 삶에 관한 것이었다. 잠시의 이벤트 같은 내 생활을 소개했을 뿐이며 내 삶의 어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내 사생활이기도 하지만 결국 작품으로는 모두가 픽션이다. 주제를 정하고, 소재를 찾아내고,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면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No Sex Last Night’ 을 만들 때, 꽤 오랜 시간 촬영을 했지만 불과 1시간 30분짜리 필름이 되었다. 모두가 사실일지라도 부분만을 취하거나 재구성되면 그것은 결국 픽션이다.




박선영:폴 오스터가 소설 속 인물에 당신의 삶을 이용하게 된 정황이 궁금하다. 당신도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인가?

소피 칼:아니다. 그는 나에게 묻지 않고 소설 속 ‘마리아’라는 인물에 나의 삶을 이용했다. 그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 미리 나에게 어떠한 부탁이나 상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그에게 대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말이다. 




박선영:폴 오스터를 비롯해 당신은 프랭크 게리(건축가), 데미안 허스트 등 많은 사람들과 콜레버레이션을 진행해왔다. 우리에겐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인 그들이다. 당신이 느끼는, 언급한 세 남자의 매력을 말해달라.  

소피 칼:그건 말할 수 없다. 내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친구들에 대해서는 곤란하다. 내가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했다면 각자가 내게 흥미로워서였을 것이다.




박선영:1999년도에 ‘Appointment with Sigmund Freud’ 라는 제목의 전시가 있었다. 제목만으로는 그가 당신에게 특별한 존재인 듯 느껴진다.

소피 칼:그건 아니다. 장소는 프로이드가 말년에 살았던 집이었고, 그쪽에서 먼저 나를 초대를 했다. 그래서 프로이드가 사용했던 물건들이 있는 곳에 나란히 내 인생에서 소중한 물건들을 진열해 나의 자전적 이야기들을 펼쳐보기로 했다. 그 아이디어는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프로이드에 대한 어떤 의미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었다.




박선영:전시라는 형태 뿐 아니라 당신의 작업은 책이라는 형태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작업을 기록하는 것과 전시라는 행위로써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것. 각각의 행위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듣고 싶다.

소피 칼:모두 중요한 일이고 항상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벽이 더 어렵고 더 까다롭다. 책은 어떤 면에서 내게 좀 더 분명하다. 물론, 책 역시 예민하게 다뤄지는 개인적인 오브제이기는 하지만 나의 야망은 벽에 있다. 그래서 늘 먼저 전시를 하고 이후에 책을 만든다.




박선영:‘Double game(1999)’,  ‘Take care of yourself(2007) ' 등 당신 책은 독특한 판형, 레이아웃, 유닉한 구성, 커버 등 모든 것이 특별하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 당신은 어느 정도로 개입하는가?  

소피 칼:모든 일에 개입하고 참여한다. 사진을 고르는 일, 레이아웃을 잡는 일, 커버 디자인 등 모든 과정을 출판사와 논의하고 결정한다. 흥미로운 일이다.




박선영:공식적으로 당신의 작업이 시작된 건 78년도의 ‘Suite Vénitienne’ 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 무렵이 파리로 다시 돌아온 시기로 알고 있는데 작업을 하게 된 상황과 연관이 있는가?

소피 칼:그렇다. 그때 나는 길을 잃었었다. 파리로 돌아온 뒤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어떤 사람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따라가는 행위는 나의 하루에 어떤 목적을 주었다.




박선영:작품에 등장했었던 몽파르나스 묘지에 대한 당신의 텍스트를 읽었다. 그 장소가 당신에게 어떤 깊은 기억을 주었나?

소피 칼:그렇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내가 어릴 적에 항상 놀던 곳이었다. 우리 집은 바로 묘지 옆에 있어서 엄마와 산책하러 자주 갔었고 학교를 가기 위해서 일주일에 4번은 묘지를 지나야 했다. 내 친지들이 그 곳에 묻혀있고, 엄마도 거기에 계시고, 아버지도 그 곳에 묻히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나도 그 곳으로 갈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 집 같은 곳이다.




박선영:다음 당신의 여정은 무엇인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소피 칼:당장 내일 모레 북극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어선을 타게 될 것이다.




박선영:작업을 위해 떠나는건가?

소피 칼:글쎄, 그건 가봐야 알겠다. 그냥 여행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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