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19년도 말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를 팬데믹에 빠트린 코로나. 놀랍게도, 건강을 잃은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슈퍼 면역자로서 활약 중이다. 그렇다면, 나의 퇴사에 가장 큰 어퍼컷을 날렸던 전염병은? 바로, '대상포진' 이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속에 잠복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젊은 사람에게서는 드물게 나타나고 대게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60세 이상의 성인에게서 발병한다.
어릴 적 수두에 걸렸었기 때문에 대상포진이 발병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무엇보다 신경, 근육계 질환을 앓고 있는 내가 창궐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대상포진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이라 견딜 수 있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나빠지는지 속에서 썩어가니 알 턱이 있다. 인식하지 않으면 잊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눈에 직접 보이는 질병은 체감이 달랐다. 정말, 소리 소문도 없이 밖으로 존재를 드러냈다.
대상포진 발병 D-5, 가족 중 한 사람이 양성 판정으로 자가격리 상태였고 코로나 증상 중 비슷한 증상이 속해있었기 때문에 멀쩡한 코만 죽어갔다. 발병 전 경미한 증상이 있긴 했다. 사지 근육통이 그것이었다. 약간의 오한과 근육들의 생생한 두근거림은 정말 이질적이었다. 성장통 같기도 하고 근육통 같기도 한 것이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면역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면, 20대도 걸릴 수 있다고 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피부과 데스크 앞에 붙어있던 [ 20대부터 예방하세요. 대상포진!] 이 안내문구에 해당되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이야. 아이들이 많이 오는 매장에 근속 중이었기에 병가(업무 외상병)를 가야 했다. 진단서와 처방전을 받고 약국으로 가는 그 잠깐의 거리를 눈물샘이 참지 못했다. 곧장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더 서럽게 울었다.
" 오빠.. 저 대상포진이래요... 엉엉엉.. 흐어어어엉.. "
목디스크로 인한 휴직 3개월, 그리고 복직 4개월 만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마음은 헌신짝이 된 지 오래였고, 몸은 걸레짝이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몸을 수습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나였다. 쉬어야 했고, 이제는 정말 놓으라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몸이 "그만"을 말했다. 약을 처방받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길, 마스크 안으로 열심히 되뇌었다.
' 나는 이제 곧 백수가 된다. 백수가 되어야 한다. 백수가... 되어야.......... 될 수 있나? '
마침표에서 물음표로 끝나버린 짧은 다짐이긴 했지만 병가 기간 동안 할 것들을 생각했다. 퇴직금 예비 정산, IRP계좌 개설, 헬스장 알아보기, 도수치료 다니는 병원 예약 미리 해두기, 매달 쓰고 있는 가계부에서 평균 생활비 계산하기 등.
하지만, 나 자신을 너무 믿었던 탓일까. 퇴사 전까지는 그냥 멍청이가 되기로 했다. 숨만 쉬어도 아픈 새벽과 깨어있으면 가려운 부위를 긁고 싶은 시간의 연속이었으니까. 최선을 다해 덜 아픈 몸으로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몸이 하는 말을 잘 듣자. 아니, 몸에게 잘하자. 피부로 얻은 근육 아픈 교훈이었다.
어릴 적 유행했던 혈액형, 별자리에 이어서 더욱 과학적이지만 꾸준히 화두가 되고 있는 MBTI 성격유형검사. 그중에서도 나는 계획성이 모자란 'P'의 성향을 가진 'ENFP'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외향형 중에서는 가장 내향적이고(아무도 믿지 않는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지만 용두사미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겠다. 벌리는 일은 많으나, 마무리하는 일이 정말 손에 꼽고 꼽는다.
데드라인이 생기면 완수하기는 하나, 그것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이 없다는 건 또 아니다. 일에 관련된 것만큼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완수한다. 나를 인정해주는 타인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에. (이래서 ENFP가 소심하다는 것. 물론 이것조차 아무도 믿지 않는다.)
사람의 성향을 16가지로 정의 내리는 게 어렵다고는 하지만, 극강의 ENFP인 내가 퇴사를 기한이 정해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울 것이었으니 오히려 쉬는 기간을 제한 짓는 게 빠를 일이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매장 사람들에게 너무도 부끄러웠다. 가장 바쁜 주말이 당장 다음날이고, 심지어 시간대 가장 긴 연장 근무자였다. 무엇보다 며칠 뒤면 휴가였기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무너졌다. 복귀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또. 또! 아프다니.
빈번하게 자주 아프니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나서 아픈 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병 키병'이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으로 '병을 키우는 병X'의 줄임말이다. 분명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게 몸을 불태우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전에 예방하거나, 병을 키우는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면 될 텐데 침 바르면 낫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처럼 방치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서서히 고장 나던 몸이 직장이 생기니 본격 파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20년을 버텨준 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이 '노동'말고 '운동'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노동과 운동은 같은 개념이었고, 오히려 운동보다 더 힘든 것이 노동이었다. 운동을 안 해본 사람이라면 분명 고개를 끄덕일 텐데, 일을 하고 나면 운동을 할 체력이 없는 게 사실이다.
전체 체력을 100으로 생각한다면,
기상 30
매장 출근길 10
근무 50
퇴근 10
에너지를 쓰고 나면 이미 방전 직전의 종이인형이었고, 이불속에 파묻혀 <충전 중입니다>를 시전 했다. 바리스타 직급에, 비교적 어릴 때에는 급속 충전이 가능했다면, 관리자 직급에 연장근무가 늘어나니 급속 방전이 가능해졌다. 기초대사량과 비례일지도 모르지만 매일의 에너지를 '일'외의 것에 쓸 힘이 없으니 운동을 제외한 것들에 신경을 쓰거나 노력할 힘이 없었다.
옛날 어른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몸이 안 좋은 걸 알고 있으면, 고칠 생각을 해야지, 버틸 생각만 했다. 언제나 지는 것은 나였고. 몸을 바꾸려면 머리를 개조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