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가 된다면
로또 당첨금액이 이월되어 당첨금액이 큰 명절이면, 우리는 로또에 당첨되면 이라는 주제로 한참 이야기 하고는 했다. 평소같으면 대통령 비난이나 사회 비판에 열을 올릴 삼촌, 이모들도 그런 명절에는 어딘가 있었던 꿈이나 희망을 꺼냈다. 평소보다 웃음은 밝았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구름처럼 방 안에 떠다녔다. 그래서 그런 명절은 평소의 명절보다 좋았다. 작은 할아버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지 이모의 스무살은 어땠을지 궁금해지고는 했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 1년 동안은 주말마다 피씨방을 가는 것이 일과였다. 밤공기를 마시면서 피씨방에 들어가서는 추운 새벽 내내 따뜻하게 게임을 하다가 해가 뜰 때쯤 되서야 나왔다. 피씨방은 지하에 있었고 1층에는 편의점이 있었는데, (주로 토요일의) 아침공기를 마시면서 우리는 바나나우유, 아이스크림, 그리고로또를 샀다. 편의점에서 나와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공대생들은 이번주 당첨금액을 확률로 계산하거나, 당첨되면 뭘 할 건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매주마다 지난 주에 일어난 일에 따라 소망이 바뀌었다. 1년동안 친구들은 5등이나마 몇번이고 당첨이 되었으나 나는 한번도 당첨되지 않았다. 불퉁스러운 마음에 한번 확률을 계산해보니 1년동안 당첨되지 않을 확률은 꽤나 높아서 이내 납득하고 말았다. 1년간의 낙첨 후에는 로또를 사는 일은 그만 두었다. 나는 로또로는 한푼도 벌지 못했지만 당첨되었을 때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보았던 시간들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로또에 당첨돼도 지금하는 일을 할꺼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은 때로 위험했다. 돈이 많아도 나를 계속 만날건가 같은 질문은 상대에게 했을 때 갑분싸된 적이 있었다. 가끔은 큰 불만이 없다가도 로또에 당첨되어도 여기를 다닐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 불만이 자라났다. 아무튼 그러다보면 퇴사를 결심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언제나 돈보다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맘에 안드는 회사에 계속 다니는 건 시간이 아까웠으므로) 그런 경우엔 바로 포기하게 되었다.
지내다 보면 이런 질문들에 아니오인 것들을 조금씩 없애가는 일이 의미가 있었다. 아니오인 질문 하나만큼 나는 돈에 휘둘린다. 돈이 무진장 많아도 대중교통을 탈 건가요? 매일 아주머니를 부를 수 있어도 청소를 할 건가요? 아무데나 살 수 있어도 지금 사는 곳에 있을 건가요? 내게 이런 질문들의 대답은 아니오.고 나는 아니오의 갯수만큼 아쉽다.
그러나 대답은 때로 예 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돈을 넘어선 행운에 감사하다. 로또에 당첨되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 다닐건가요? 강남에 빌딩이 생겨도 계속 글을 쓸 건가요? 슈퍼볼에 당첨되도 롤을 할 건가요? 1조 자산가가 되도 청바지에 후드티만 입을건가요? 이 질문들의 대답은 예이고 나는 그 숫자만큼 그만큼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