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이 끝나고 요 며칠, 컴퓨터를 켜기도 싫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숙제는 잘 못 냈지만 그래도 글쓰기에 마음을 쏟은 것은 분명했다. 시간과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에서 한동안 완전히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안 쓰면 그만 아닌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런데 마음 한편에 쌓인 언어들이 제발 나를 밖으로 배출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이 내내 불편했다. 아무 말이나 좋으니 흰 종이에 제발 까만 것을 뱉어내 달라고 속에서 뭔가 계속 말하는 것 같았다.
에세이 쓰기 수업을 듣는 내내 인풋이 없는데 아웃풋을 어찌하냐고 징징거렸다. 이 수업이 끝나면 책만 주야장천 하루종일 읽어야지 생각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니 어찌나 아쉬운지, 하루에 한 편은 못쓰더라도 일주일에 한편은 꼭 써야지 마음먹었다.
1. 월요일에 쓰고 화수목금토 퇴고해서 질 좋은 글을 올리기
2. 에세이 클럽 후기 작성하기
3. 그동안 글을 읽어주신 멘토님께 감사 인사 전하기
4. 첨삭받고 마무리하지 못한 글까지 모두 써서 올리기
해야지 생각만 한 채 이주가 지났다. 쉬고 싶어서 (뭘 했다고), 제대로 늘어지고 싶어서(도대체 왜) 넷플릭스를 보며 소파와 한 몸이 되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서 빈둥거리는 나를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는 동안 잘하고 싶었던 것이 글쓰기뿐이었을까. 그동안 수 없이 결심했던 이루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나의 결심이 꺾이는 순간은 너무도 많다.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드라마에 빠져서, 아이들과 정신이 없어서, 감기에 걸려서, 신상카페가 생겨서, 나가서 놀고 싶어서, 맥주 한 잔 하고 싶어서 등등 수천수만 가지 이유가 나의 결심을 꺾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건 핑계임을 안다.
글쓰기는 언제나 나에게 두려운 영역이었다. 장문의 카톡을 쓰기가 힘들었고 어버이날 카네이션 꽃다발에 넣을 카드 문구 몇 줄 조차 쓰기가 어려웠다. 여행지 숙소의 방문록 작성 지를 앞에 두고 반나절을 고민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못쓰고 책을 읽고 나서 밀려오는 감동을 글로 써보려고 종이를 앞에 두기만 하면 감동이 사라졌다. 왜 그럴까.
나의 가방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커피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좋아하고 서점에서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마음이 어지럽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는 도서관에 찾아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책 제목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는 했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혼자서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책을 좋아하면 글도 잘 쓴다고 생각하겠지? 사람들이 내가 못하는 걸 알게 되면 어떡하지? 내 글쓰기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냐고 비웃으면 어쩌지? 글 쓴다고 여기저기 떠들어 대더니 이 정도라니. 혼자서 소심한 생각에 갇혀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다. 진짜 나의 결심이 꺾이는 순간은 두려울 때였다.
엊그제, 글쓰기 특강에서 이백일 동안 매일 쓰기를 했다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콕 박혔다.
“우리가 무슨 박완서 작가나 김훈 작가 같은 글을 쓰려는 게 아니잖아요.”
글을 쓰는 노력도 안 하면서 바로 대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어 한 나의 마음이 부끄러웠다. 글쓰기 문우님이 누누이 말한 ‘등가교환의 법칙’이 떠오르면서 거저먹으려고 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이런 소심함을 동반한 두려움은 한 걸음 나아가려 할 때마다 번번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어느 누가 나의 인생에 그렇게 관심을 가진다고 스스로를 옳아 매고 나아가지 못했던 걸까.
엘리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나라로 간 것처럼 나도 갑자기 이상한 나라로 들어온 것 같다. 우연히 만난 에세이 클럽이 바로 이상한 나라이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만나고 마음을 나누는 이상한 나라에 빠져 다른 세상에서 사는 기분이다. 글을 쓰면서 여러 각도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세상에선 이제껏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도 좋지 않을까? 갑자기 나에게로 온 새로운 세상. 이 행운을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