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메아 비타(내 인생에 대하여)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약간 첫인상이 독특한 어떤 분이 굉장히 책을 즐겨 읽고,
또 소설 말고 인문 교양 책 위주로만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괜히 그 사람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달까. 그 사람이랑 책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완전 강추라고 추천하길래 아무 고민 없이 샀던 책.
근데... 꼭 이렇게 돈 주고 사고 나서 왜 샀지 하는 책이 걸리면 그렇게 맘이 아프다니까...
뭐 그 정도 까진 아니지만 어딘가에서도 썼듯이 내가 이렇게 단편적으로 칼럼처럼 찔끔찔끔씩 칼럼들을 수록해 놓은 듯한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듯, 뭔가 이야기가 맥이 끊기고 공통된 흐름이 없는 느낌이랄까? 책을 덮고 나면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뭐라는 걸까, 하는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듯한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지만 어쨌든 그래서 뭐 그렇게까지 인상 깊게 읽진 않았으나,
그래도 나의 옛날 대학생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라서, 결론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10년 전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를 떠올리게 만든 책이랄까,
그래서 대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은 건가? ㅎ-ㅎ
나도 한 때 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때가 있었지,
그래! 난 지금 청춘이다, 만 원짜리가 구겨진다고 천원이 되겠냐!! 난 지금 잠시 구겨져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용기를 내고 희망을 잃지 말자!!!!!! 우린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고 힘든 청춘들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주는 책이라고 여기고 좋아하는 동생에게도 선물하고 그랬던 책이었는데.. 한 1년 뒤에 다시 읽어보니 나란 청춘 겁나 순수했구나, 싶을 만큼 오그라들었지.
그리고 지금 10년 후에 다시 이런 류의 책을 보니 나는 무딜 대로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제는 너도 할 수 있어! ^_^ 우린 잠시 쉬어가는 것뿐이야 ^_^ 언제나 희망이 있어!!^_^
라는 말만 가득한 '아름다운' 말들이자 '뻔하디 뻔한' 말들을 늘어놓는 자기 계발 서류를 싫어하게 된 건지.
그리고 결론적으로 라틴어를 통해서 인생과 인문 교양을 연결시킨 책인 건 알겠는데 이게 실제 수업으로 들으면 좀 엄청 재밌고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하긴 했지만, 책으로 보기엔 이 라틴어에서 왜 갑자기 이 주제가 나오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작가님의 로마 유학시절을 바탕으로 얻은 인생 교훈 정도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은..? 그냥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데 메아 비타(내 인생에 대하여)" 뿐인 것 같다.
너무 고깝게 읽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ㅎㅎ 뭔가 생뚱맞다고 느낀 챕터가 몇 개 있긴 했고, 근데 이건 그 교수님의 수업을 글로 정리한 거니까 뭐 그러려니 하고 읽었더랬지.
하지만 왜 내가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열정적이었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생각했던, 그냥 생각만 해도 막 눈부시게 느껴지던 나의 대학시절과, 내가 사랑했던 강의시간이 몽글몽글 생각나서이다.
"뭔가를 배우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있어 보이려고, 젠체하려고 시작하면 좀 어떻습니까? 수많은 일의 최초 동기는 작은 데서 시작합니다." (p25)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 수업이 지향하는 지점입니다." (p28)
라는 말들로 시작하는 책의 앞부분. 그리고 한동일 교수가 내준 첫 수업의 과제는 "데 메아 비타"이다.
나의 인생에 대하여.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와 조우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어느 시기의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나의 대학 동기들이 이 부분을 읽는다면 같은 시간을 떠올리겠지.
스무 살, 대학교 입학 후 첫 수업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받은 과제가 바로 "데 메아 비타" 이기 때문이다.
20년 인생, 30대가 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리다고 느껴지지만, 그 20년 내 인생에 대한 자서전을 쓰는 것이 나의 대학시절의 첫 과제였다. 데 메아 비타. 그 과제를 받았을 때 다른 아이들은 불평을 많이 했지만, 나는 엄청난 과제라고 그때도 생각했고,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태어난 병원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등을 직접 찾아가보면서 내 인생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20년 인생을 엮어서 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제. 참 엄청난 과제이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써낸 사람이 있을까. 내가 나를 온전히 마주하고, 객관적인 글로 적어 낸다는 것은 참 큰 용기가 필요하고, 또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11년간 꾸준히 일기를 써오고 글을 끄적거리면서 느끼고 있으니까 나 역시도.
그리고 활자를 통해 위로받는다고 느끼고 있는 이유도 나를 온전히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결국 이 책에서도 말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데 메아 비타"인 것 같다.
내가 만들어 가는 나의 인생,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는 어떻게 다를까, 나의 인생을 적는다면, 나는 어떤 시기의 나와 조우하고 싶을까. 등 이 책 곳곳에 담긴 이야기들이 다 "데 메아 비타"를 향해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뒤편 감사의 글을 보면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나서 한동일 교수에게 남긴 글에서 많은 이들이 다 "데 메아 비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가 살아온 지난날이, 당시에 바랐던 크고 작은 소망들이, 저를 억눌렀던 여러 사건들이, 그로 인해 상처 받았던 어린 시절의 초라한 모습이, 그리고 제가 바라고 있던 이상과 불안했던 마음들이 모두 하얀 종이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렇제 저만의 '데 메아 비타'를 쓰고 나니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쫓기듯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던 저 자신이 처음으로 스스로의 인생과 솔직하게 조우했던 순간이었습니다." (p304)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후기를 읽으면서 나는 잠시 향수에 젖었다.
나의 대학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부록. 사랑하는 교수님들의 명강의.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토론하고, 읽고, 쓰고, 나누고, 지금의 나의 가치관을 만든 교수님들의 수업이 사무치게 그립다.
데 메아 비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중에서 나는 어느 시기의 나를 마주하고 싶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과거의 나와 마주했다. 책의 이야기가 모두 강의시간을 기록한 거니까 읽는 내내 나의 강의실을 떠올렸고,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면서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도 살펴보라고 수업을 일찍 끝냈던 부분에서는 그리운 모교와 봄날의 본관 놀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부분을 읽는 나의 마음속에는 존경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 온몸으로 퍼지던 배움의 기쁨이 피어올랐다. 내가 무엇보다 배우는 것을 갈망하고 좋아했던 사람이었다는 것,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던 순간을 내가 참 많이 좋아했다는 것, 그때의 내가 무척 그리웠다.
그리고 데 메아 비타 다음으로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아는 만큼 본다" 챕터인데 한동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마다 자기 삶을 흔드는 모멘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힘은 다양한 데서 오는데 그게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한 장의 그림일 수도 있고, 한 곡의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잊지 못할 장소일 수도 있고요. 그 책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만났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눈뜨고 한 시기를 지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모멘텀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바깥을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책 한 권을 읽어도 가벼이 읽지 않게 되고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흘려듣지 않게 될 겁니다. 누군가와의 만남도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만남이 될 겁니다. 한순간 스치는 바람이나 어제와 오늘의 다른 꽃망울에서도 우리는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215~216)
너무 아름다운 말들로만 이어진 부분이긴 한데 왜 내가 이 부분이 인상 깊었냐면, 지금 『라틴어 수업』 이 좀 재미가 없어서 굉장히 가볍게 읽고 있고, 또 다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으로 부여잡고 있는 내 마음이 조금 찔렸기 때문이며, 요새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물론 너무 만나고 싶고 즐거운 모임도 있지만 그냥 슬슬 얼굴 봐야 할 시기니까 후딱 만나고 와야지 하는 만남도 있기 때문에 찔렸지. 내가 얼마나 열린 태도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임하거나, 책을 읽을 때나,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의미 있게 받아들이느냐 따라 어쩌면 내 모멘텀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어쨌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열심히 술을 퍼 마시던 어제도, 하릴없이 TV만 보던 순간들도 모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면서 하고 있는 행동인 건데, 이 모든 순간들이 다 내 인생을 만들고 있음을 망각하고, 그냥 킬링 타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한가하고 할 일 없는 요즘 더더욱.
그래서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다 배우고 싶다는 열정으로 눈을 반짝였던 대학시절의 나를 조금씩 다시 찾아보기로 다짐까지는 너무 거창하지만 살짝 마음을 먹었달까.
물론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이고 싫지만 다시 습관을 들이고 있는 책을 쉬지 않고, 구독하는 팟캐스트도 좀 귀찮아하지 말고, 운동도 다시 하고, 식습관도 좀 바꾸고, 사람들을 만날 때는 귀찮아하기보다는 오늘은 이 순간에서 이 사람과 어떤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며 모임에 나가고, 쓸데없이 스마트 폰질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일단 여기까지가 내가 다짐한 것들!
#P.S 이 책은 라틴어 수업인 만큼 라틴어의 특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는 데 사실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은 없고, 라틴어가 굉장히 수평적인 언어라는 것을 알려준다. "언어는 사고의 틀이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린터는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p45).
그리고 언젠가 들어보았던 최우등을 뜻하는 라틴어인 "숨마 쿰 라우데"는 라틴어의 평가 언어 중 하나인데 '잘한다/보통이다/못한다/ 식의 단정적이고 닫힌 구분을 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라틴어는 '잘한다'는 연속적인 스펙트럼 속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평가 언어를 갖는다고 한다. 이러한 스펙트럼 속에서라면 학생들은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p74) 중요한 부분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나와 조금은 나아졌는가? 남보다 나아졌는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면서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p242)
데 메아 비타, 그리고 나의 삶을 만드는 모멘텀, 삶에 대한 열린 자세.
내가 읽은 『라틴어 수업』 의 키워드 3개를 꼽아본다.
오랜만에 읽는 말랑 몰랑한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라 하는 자기 계발서였고 앞으로는 이런 류의 책을 당분간 피하게 될 것 같지만,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요즘의 나에게 열정적이고 활기찼던 10년 전을 떠올리게 해 주었던 책. "데 메아 비타", 내가 만들어 가는 내 인생. 10년 후 어느 날 내가 조우하고 싶은 그때의 내가 오늘이 될 수도 있잖아. 10년 후 내가 그렇게 후회하고 있을 오늘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그리워하고 있을 오늘이 될 수도 있잖아. 내가 지금 10년 전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열심히 살자.
긍정적이고 즐겁게. 행복하게.
마음이 천년만년 갈 것 같아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인간이라고,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으니까.
어쨌든 두서없는 감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