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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시시포스 Jan 08. 2024

검단산, 새해맞이 산행

@검단산에서 한강 쪽 조망

일주일 늦은 새해맞이 산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한 친구는 고향에 계신 모친의 병세로, 다른 친구는 갑자기 찾아온 독감 기운 때문에 산행이 어렵다고 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단독 산행을 결행키로 했다.


오전 일곱 시에 미치지 않은 시각 집을 나서 탄천 운동장 부근에서 분당-수서 고속화도로로 들어서서 수도권순환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하남 검단산 들머리에 도착했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 부근에서 검단산의 북쪽 능선으로 오르는 들머리로 들어섰다. 베트남 참전 기념비 옆을 지나 울창한 노송군락 사이로 잘 정비된 너른 등로를 따라 오르자니 닭이 회를 치며 날이 밝았다고 알린다.


깊이 들이마시는 찬 공기에 몸속 내장이 냉기 마찰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쾌하기 그지없다. 일곱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인데 벌써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산객들도 간간이 보인다.


능선마루로 접어드니 좌측 한강은 안개에 묻혔고 건너편 예봉산 등 여러 산군과 검단산 사이는 서서히 어둠이 물러나고 있는 여명의 계곡이다. 조금 더 치고 오르니 발아래 한강이 온전히 보이고 그 너머에 산정 부근에 아침 햇살을 머금은 예봉산이 또렷한 윤곽을 드러낸다.


산기슭엔 눈이 쌓여 있고 산길은 얼어 있어 경사진 길을 조심조심 발길을 옮긴다. 이쪽 코스는 오를수록 경사가 가팔라지고 시시각각 하는 한강 등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묘미가 있어 좋다.


일출 전망대의 정자 위로 올라서자 반 뼘쯤 떠오른 태양 아래 한강이 운무의 바다에 깊숙이 잠겨 있고 용문산을 비롯한 산군 능선들이 밀려오는 물결처럼 겹겹이 실루엣을 펼쳐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관을 한참 동안 음미한 후에 산정 쪽으로 발을 옮긴다.


산행이 주는 감흥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남다른 특권이다. 그 특권은 물질이나 권력에 기댄 삐뚤어진 특권이 아니다. 그 특권은 아무나 그저 가질 수 있는 특권도 아니다. 어디든 가까이 아름다운 산천이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특권이요, 남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특권이요, 고통과 인내 끝에 희열이 찾아오는 등산처럼 건전한 취미를 가진 건강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청렴 성실', '근면 자조 협동' 등 교훈이나 훈 등에서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을 권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멀리 조망되는 유별난 도시 서울특별시의 L 빌딩 등 하늘 높이 쌓아 올린 인공물들은 하찮은 장난감 마냥 모두 발아래 굽어 보인다. 산객들의 발자국에 다져진 산길은 눈이 얼어붙어 얼음 빙판으로 변해 있고 햇볕이 들지 않은 능선 우측 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 시고 매섭다.


가파른 계단길과 완만한 능선길이 교차하던 정상부를 느긋한 마음으로 치고 오르니 눈밭으로 변한 너른 산정은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아 백설탕처럼 반짝이고 있다. 해맞이 명소답게 동쪽 편에 마련된 전망대로 다가서니 거칠 것 하나 없이 툭 트인 전경이 온몸으로 밀려든다.


딱새, 멧새, 곤줄박이, 직박구리 등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텃새들이 먹이를 올려놓은 산객들의 손바닥과 전망대 주변 잔목 가지를 오가며 산객들에게 특별한 산행의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먹이를 찾기 힘든 혹독한 겨울은 순화되지 않은 야생의 조류들도 잠시 야성을 내려놓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 코스로 잡은 꽁꽁 얼어붙은 길은 경사가 45도쯤은 될 듯 가팔라서 등산로 양쪽 목책에 설치된 밧줄에 의지하면서 한 발 한 발 발길을 옮겼다. 신발에 채운 아이젠이 아니라면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할 듯싶다. 서편의 하산 코스는 산정으로 오르던 길보다 훨씬 더 가파르고 얼음으로 덮여 있어 그 길로 올라오는 산객들은 모두들 힘에 겨워하는 모습이다.


여러 단체 산객이 모여서 본격적인 산행 채비를 하는 팔각정이 자리한 너른 공터와 호국사 입구를 지나면서 산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충혼탑에 들러 잠시 참배를 하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처럼 잔잔한 한강 수면도 한동안 조망했다.


"산행 중 만나는 고갯길은 변곡점이다. 그 변곡점은 산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통로인 동시에 산객에겐 산정에서 내리막 길을 내려와서 다시 또 다른 정상을 향해 비탈길을 오르는 시발점이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고갯길은 인생 항로를 결정짓는 고빗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려운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오르내리는 비탈길이 많았던 성남 누비길 세 번째 구간을 걸을 때 들었던 생각을 떠올리며, 완만한 경사의 긴 노송 숲길을 따라 날머리로 나섰다. 아직 해는 중천이다.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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