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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인산 Jun 14. 2024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

마음 따라 가는 방랑

임진왜란 전적지 중 하나였던 독산성을 둘러보러 차를 몰아 오산으로 향했다.

독산성 공영주차장에서 젊은 여성 둘이 주차장을 둘러보며 무언가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띈다. 오산시청에 근무한다는 두 여성은 주차장 안에 공영화장실을 새로 만들려는데 위치를 두고 현장을 둘러보러 나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눈에 잘 띄는 입구에 놓아야 된다는 의견이 있다며 내 의견을 묻는다. 출입구 우측 끝과 대각선 맞은편 등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주니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치는 그녀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보였다. 한때 공직사회에 유행하던 'GOLF(Go and see + Listen to the Field)'라는 현장 중심 행정을 강조하던 구호가 떠오른다.


주차장 맞은편 한자로 '독산성 세마대 산문(禿山城洗馬臺山門)'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린 산성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일주문 옆에는 '경기도 삼남길', '오색둘레길 4코스', '보적사 1.4km' 등의 안내표지도 눈에 띈다. 산문으로 들어서자 널찍한 오르막 포장도로 좌우로 울창한 수림이 하늘을 가렸고 산새들이 한가로이 지저귀며 탐방객을 반긴다.


평일 아침나절이라 그런지 산성으로 오르는 길에 마주치는 사람은 몇몇 뿐이고 간간이 차량이 포장도로를 스쳐 지난다. 입구에서 500여 미터쯤 오르자 독산성과 양산봉 갈림길 이정표가 산성 남문까지 390미터라고 알린다. 좌우 양측으로 비탈과 간이 주차장을 낀 나무데크 길이 산성 위로 인도한다.


좌우 산록의 무성한 초목은 여백 하나 없이 공간을 녹음으로 빽빽게 채우고 있다. 기욤나무와 앙증맞은 잎사귀가 무성한 산뽕나무는 꽃받이와 검은 열매를 바닥에 수북이 떨구어 놓았다. 산성 언저리 등로 옆에는 봉분과 수목장 등 묘지도 눈에 띄는데 그중에는 2022년 3월에 조성된 것도 있다. 196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지 부근에 개인의 장지들이 산재하고 있는 것이 의아하다.


독산성의 정문 격인 남문 앞으로 올라서자 좌측의 허물어져 내린 산성 부근에서 포클레인 불도저 등 중장비를 동원한 산성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남문 입구 안내판이 사적 제140호로 지정된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는 1,095m의 테뫼식 산성과 산 정상부에 복원되어 있는 권율 장군의 승전과 관련된 장대(將臺)를 말한다. 독산성은 오산, 수원, 화성에 쳐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독산성은 백제 시대에 처음 쌓았고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여주 파사성, 용진 토성 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임진왜란 중인 1594년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일 만에 고쳐 지었고, 선조 35년인 1602년에 방어사 변응성이 석성으로 다시 지었다. 정조대왕 때인 1792년에 큰 규모로 공사를 했고 1796년에 수원 화성이 완공된 이후 협수(協守) 체제를 구축했다. 산꼭대기에 세마대를 복원했고, 동문 안에 보적사가 있다. 내부 시설물로 성문 5개, 치(雉) 8개, 우물 1개, 수로 1개가 남아 있다."


예전 남문 위에 있었다는 진남루 누각은 볼 수 없고 돌로 쌓은 3미터쯤 높이의 성곽 사이로 덩그러니 출입문이 나있다. 복원공사가 한창인 성벽 쪽 가림막 뒤로 우회하여 시계방향으로 성곽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툭 트인 전망과 성곽 바로 아래 가파른 비탈은 이곳이 적군이 감히 범접할 엄두를 내지 못할 천혜의 군사 요새였음을 말해 준다. 특히 성벽 가장자리 바깥 급전직하 가파른 비탈은 그 자체가 성벽 구실을 하여 남한산성 등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굳이 성 안쪽에 석벽을 높이 쌓지 않은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독산성은 경기도에서 복원한 삼남길의 일부인 제7길 '독산성길'로도 명명되었다. 서문 쪽으로 향하는 길에 서있는 삼남길 안내판은 독산성을 찾았던 정조대왕의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깊은 효심과 백성들을 사랑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서문은 1790년 정조대왕이 독산성으로 행차했을 때 출입을 한 문이라고 하는데, 문 바깥쪽 가파른 비탈이 너른 산자락을 펼치고 있다. 서문 쪽 성벽 위에서 시야를 멀리 향하니 저 멀리 지난주에 다녀온 태행산과 태봉산, 건달산 등이 산군을 이루며 길게 펼쳐져 있다. 서문 아래 황구지천을 따라 지나는 평택화성고속도로는 독산성 남쪽으로 휘도는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와 함께 이 지역 교통망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산성 안쪽에는 탐방객들과 산책을 나온 주변 주민들이 여럿 눈에 띈다. 사방에서 여러 갈래의 길이 산성으로 이어져 있어 어디서든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있을 듯싶다.


북문은 사람이 주로 다녔던 통로로 문루는 물론이고 별다른 이름도 없는 평거석 덮개가 덮인 문으로 급전직하 비탈인 정북 쪽에서 약간 아래쪽으로 비껴 위치한다. 성 바깥 비탈에 초록 잎사귀에 유액 빛깔 꽃이 뒤엉킨 밤나무 고목 두어 그루가 액자 속에서 뚫고 나올듯한 야수파 화가의 강렬한 필치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이향숙 시인은 시 <밤꽃>에서 유월의 밤나무를 잘 묘사하고 있다.


네 끝에 붓이 있다

휘 휘

산들에 초록물감 뿌리니

참을 수 없는 밤나무 폭발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거품처럼 품어내는

욕정의 발아

옆구리 사이로 미끄러져가는

신음소리들

온전히 나를 던져

혼미하게 흔들려야

젖가슴 빠는 힘까지 모아야

비로소 내게 와 안기는

유월의 바람 속에

꽃이 피고 있다

향기가 터지고 있다

_ 이향숙 시인의 <밤꽃>

@naver blog 玄山書齋에서 인용


북문을 지나 비탈길을 오르니 100미터 거리 산성 정상부에 세마대가 자리하고 있다. 세마대 앞 널직 널찍하게 어울려 서있는 소나무와 참나무 고목 숲은 천상의 쉼터처럼 보인다.


기둥 10개가 기와지붕을 떠받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세마대 누각은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파괴되었던 세마대는 1957년 8월 15일

민관으로 구성된 세마대 중건위원회에 의해 팔지붕을 올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누대 처마 안팎의 봉황 조각상이 인상적인 세마대는 남북 면 처마에 각각 한자로 '세마대'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북쪽 처마에 걸린 편액(洗馬臺)과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쓴 남쪽 처마의 편액(洗馬坮)은 모두 필체가 유려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손이 떨려 불편하다는 서울에서 오셨다는 노신사 두 분이 스마트 폰을 내밀며 세마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한다.


그중 한 분이 1593년 1월 권율(權慄)의 호남 근왕군(勤王軍)이 이곳에서 일본군 제8번대 수장 우키타 히데이(宇喜多秀家)가 이끄는 2만의 왜병에 맞서 싸운 ‘독성산성(禿城山城) 전투’의 승리가 그해 3월 행주대첩의 기틀이 되었다고 귀띔한다. 올해 팔순으로 친구 사이라는 두 분에게 오래도록 나란히 좋은 곳 많이 찾아다니라는 인사를 하며 세마대 바로 아래 보적사로 발길을 옮긴다.


독산성 동문 바로 안쪽에 백제 아신왕 10년인 401년에 창건했다 보적사(寶積寺)가 자리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로 세마대 아래 대웅전, 삼성각, 삼층석탑, 요사채 등이 모여 있는 단출한 절집이다.


지장보살상과 나반존자 탱화 등이 모셔져 있는 삼성각 안에서 불자 한 분이 정성스레 치성을 올리고 있다. 요사채 옆에는 '식수'라는 푯말이 적힌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는데, 세마대의 유래가 떠오르며 수원(水源)이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도원수 권율이 독산성(禿山城)에

들어갔다. 성 안에 샘이 적어 오래 지키기에 어려웠다. 적이 염탐하여 그것을

알고서는 급히 성을 공격하고자 하였다. 권율은 군사에게 적을 향하여 말을

세우고 쌀을 흩날리게 부어 씻게 하였다. 그것을 본 왜적이 성안에 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포위를 풀고 갔다. 훗날 그곳을 세마다(洗馬臺)라 일컬으니 곧 지금의 장대이다."

_1531년 「화성지(華城誌)」


보적사에서 독산성 동문으로 빠져나와 독산성 산림욕장의 양산봉(陽山峰) 쪽 숲길로 방향을 잡았다. 느린 내리막 비탈의 숲길 주위로 그물다리, 외줄 타기, 장애물 언덕, 벤치, 평상, 철봉 등 놀이와 휴식 시설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독산성과 그 주변 양산봉 등 산림 20만 7,000m²에 오산시가 조성하여 1999년 12월 중순에 개장했다는 이 산림욕장은 시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식처가 될 듯싶다.


숲길은 갈림길에서 양산봉으로 치고 오르는 비탈길을 내놓는다. 힐링객들이 스쳐 지나는 숲길 옆에 안동 권 공 묘소와 그 옆 묘소는 시절을 잊지 않은 개망초가 무성한 숲을 이루었고 숲 너머 멀리 동탄 벌은 고층 빌딩이 밀림을 이루고 있다. 점심때가 지난 한시 반경 이층 팔각 정자라 자리한 해발 179.3미터 양산봉 정상에 올라섰다. 숲이 사방을 가려 조망이 없는 정자 위로 오르니 솔솔 부는 바람이 시원하게 땀을 씻겨 준다. 


이정표나 훌륭한 멘토가 드물었던 인생 항로에서는 시행착오를 겪기 다반사였지만, 작은 산이지만 골과 줄기가 많은 이곳은 갈림길마다 자리한 이정표가 요긴해 보인다. 양산봉이 세마동을 감싸며 내리 뻗은 줄기를 따라 마을로 내려서며 힐링하듯 돌아본 독산성과 산림욕장 탐무리한다.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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