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산행을 위해 안양으로 차를 몰았다. 관악역 부근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온통 샛노란 색 물감으로 치장하고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고 알린다. 산행을 함께할 친구들을 태우고 병목안시민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 산행은 병목안을 출발해서 관모봉 태을봉 슬기봉 수암봉을 거쳐 원점으로 회귀하는 대략 12km 코스로 대여섯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병목안시민공원은 1930년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용 자갈을 채취하던 안양 수리산 일대 폐채석장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2006년에 개원한 것이라 한다. 수리산 능선에 둘러싸인 지형이 호리병을 닮은 공원 안에는 광장, 인공폭포, 체력 단련장, 정원, 어린이 놀이시설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공원 위쪽 계곡 주변에 조성된 캠핑장에는 야영객들의 텐트도 몇 채 눈에 띈다. 도심 지척에 이렇듯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원 안쪽의 캠핑장을 지나고, 산문(山門)처럼 들머리 양쪽에 우뚝 솟은 원추형 돌탑을 지나, 좌측 기슭의 둘레길을 거쳐 북측 관모봉으로 오르는 비탈로 들어섰다. 산기슭은 온통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었고, 등로는 애기 손보다 작은 앙증맞은 크기의 단풍잎으로 뒤덮였다. 잠시 잠깐만에 가을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선 느낌이다.
둘레길이 주 등로와 만나는 지점, 운동기구와 벤치가 놓인 곳에서 노 산객 예닐곱 분이 휴식하며 앉아 있다. 관모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비탈은 예나 지금이나 오르기 힘겹다. "아주 천천히 지나갈게요. 그동안 푹 쉬세요." M의 너스레에 나무 계단 보수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입가에 미소를 띤다.
피라미드 모서리처럼 양면이 트인 비탈길을 오르자니, 시원한 바람과 함께 짜릿한 쾌감이 밀려온다. 수리산 산행이 처음이라는 B는 '동네 뒷산' 쯤으로 생각하며, 지레 예상했던 '가벼운 산행'이 빗나간 모양이다. 지난주 남도 3박4일 연속 산행의 피로 탓도 남아 있었을 터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시간 반 만에 관모봉에 올라섰다. 예전 모습 그대로 관모봉 위에는 높은 깃대 위에 태극기가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을 둘러보았다. 시야는 안양 안산 시흥 서울을 넘어 멀리 인천과 서울의 외곽까지 뻗친다.
태을봉과 태을봉 전망대를 지나고 병풍바위 구간을 휘돌아 그 위의 전망대로 올라섰다. 네 해 전에 찾았을 때와는 달리 거친 암릉과 가파른 비탈 등에는 계단과 덱이 놓여 산행이 한결 편해졌다. 군부대 시설이 차리한 슬기봉 밑 우측으로 휘돌아 수암봉으로 가는 덱은 마치 눈앞에 펼쳐놓은 거대한 풍경화를 마음껏 감상하라고 마련해 놓은 것 같다. 산행 코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벤치가 놓여 있는 수암봉 직전의 안부 갈림길 부근은 제법 많은 산객으로 붐빈다. 수리산의 산줄기들은 안양 군포 안산 시흥 등으로 넓게 뻗어 있어, 부근 주민들에게 더없이 좋은 운동과 힐링의 공간이 되고 있다. 벤치에 걸터앉아 과일 빵 등으로 허기를 달랬다.
수암봉에 올라서면, 지나온 수리산 능선이며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전망을 펼쳐놓으며, 이곳이야말로 수리산 산행의 백미가 아니냐며 생각을 고쳐 잡으라고 한다.
수암봉을 지나서 병목안시민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의 노송 솔밭길과 참나무 숲길이 연이어 나타난다. 활엽수들이 잎을 떨구는 조락의 계절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하늘로 치솟은 노송들은 용트림하며 승천하는 용의 무리를 보는 듯하다. 그에 반해 참나무들은 잎사귀를 모두 떨구고 몸을 가벼이 한 채 시린 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병목안시민공원으로 내려서며 원점 회귀 산행을 마친다. 산행 거리나 시간은 예상한 대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병목안로 노변 식당에서 도토리수제비를 한 그릇씩 들며 산행을 갈무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에 겨울을 재촉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 '만산홍엽'의 가을 산행을 제대로 즐긴 호젓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