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으로는 오랜만의 나들이다. 명동성당을 둘러보고 명동거리, 남대문시장, 회현 지하상가를 거쳐 서울역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둥근 아치, 두꺼운 벽, 튼튼한 기둥 등 로마네스크 양식에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등 고딕 양식을 가미한 명동성당이 쌀쌀한 공기 속에 다소곳이 아름다운 자태를 여미고 있다.
프랑스인 코스트(E.J.G. Coste, 한국명 高宜善)신부가 설계를 하고, 그의 뒤를 이은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 신부에 의해 1898년 완공된 명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역사의 기념비적 건물이자 산 증인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항쟁 등 우리나라 인권과 민주 투쟁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옛 서울역 역사 앞을 지난다. 남대문역과 경성역에 이어 서울역으로 이름이 바뀌고, 2003년 신축 역사에 역할을 넘긴 옛 서울역 역사는 1925년 9월 30일에 준공된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한국철도 100년 1899-1999'라고 새긴 역 광장 바닥 동판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제물포역-노량진역 간 33km 경인선이 1899년 9월 18일 개통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그해 9월 2일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날 사이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옛 서울 역사(驛舍) 앞 광장에는 백발의 독립투사 강우규(姜宇奎, 1855-1920) 의사의 동상이 의연히 서있다.노 독립투사의 일생과 폭탄의거 스토리는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만큼이나 전율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断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강우규 의사가 순국 직전에 남긴 유시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촉발된, 6월 민주 항쟁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1987년 6월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 반독재민주화 시위는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 위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S 대학 야간학부에 적을 두며 체루 가스에 면역이 생길즈음 입대하여, 제1군수지원사령부 산하 부대에 복역하고 있을 때였다.
일상과 다름없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평온한 모습에서, 어제 늦은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비상계엄'이 발령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청파동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중에 길 건너편에 용산 방향으로 행진하는 긴 시위대 행렬이 보인다. 사물 장단에 걸음을 옮기는 수많은 깃발의 행렬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 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했던 대통령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웃픈'도발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강원도 현리에서 일병으로 처음 만난 38년 지기 친구와 호프 잔을 몇 순배 부딪친 터라, 버스정류장을 가는 도중에 서울역 옆 지하 '온달 만화 휴게실' 화장실 신세를 졌다. 선글라스를 낀 늙수그레한 주인장은 만화 가게라기보다는 막노동자들이 고단한 몸을 잠시 의탁하는 장소라고 귀띔했다.
서녘 하늘엔 동화처럼 신월(新月)이 떴다. 서울 수색의 단칸방에서 사회 초년병이 바라보던 초승달은 비도처럼 날카로웠었다. 드라마 <서울의 달>이 안방을 점령했던 1994년 노량진 달동네의 달은 고달픔 속에 희망이 버무려진 달이었다. 남산 자락을 휘도는 9300번 버스 차창 밖에는 산기슭에 안긴 마을 불빛이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 불빛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을 헤쳐 나가려고, 저마다 하나씩 가슴에 품은 작은 희망의 등불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