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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Nov 16. 2020

구토

나는 내 밑에 깔려 있는 것을 본다.
만사는 보이는 그대로 존재한다.
사물의 배후에는 무, 무, 무만이 있다.
이성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로캉탱은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것도 받지 않으며,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고독하게 호텔, 카페, 시립도서관을 전전한다. 그는 모든 활력을 잃은 채 체념 속에 산다. 다만 존재할 뿐이고 의미와 목적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진리란 없으며 오직 존재가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저열한 혼란을 혐오한다.
(존재가) 오르고 올라 하늘처럼 높게 올라간다.
모든 것을 그것의 아교질의 미끄러움으로
가득 채우며... 나는 이러한 구역질 나고
부조리한 존재에 대한 분노로 숨이 막힌다.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로강탱은 존재의 진정한 본질에 구역질이 난다. 그에게 존재란 ‘뒤죽박죽의 고통’이고, 존재의 본질은 두렵고도 구역질 나는 고통의 근원이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왜 나는 생각할까?
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왜냐하면...
으윽! 나는 도망한다.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로캉탱의 구토는 진정한 본질의 인식이다. 그가 갇혀 있는 이 세계는 본질적인 질서와 의미가 결여된 곳이다. 현실이라고 여겼던 질서와 목적은 사실상 의식이 현실 위에 세운 구조물일 뿐이다. 세계를 창조한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다. 인간의 의식은 세계에 질서와 목적을 부여할 뿐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하는 상태로 실존하며, 실존하는 인간은 반드시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의식을 통해 인간은 자기와 자기 아닌 존재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식은 언어를 통해 규정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인간은 의식을 통해 불안 속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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