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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Nov 30. 2020

월든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문명 비평가이자 환경 운동가였던 소로는 눈앞에 당근을 흔들어 대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물질주의를 비난하며 단순한 삶의 미학을 예찬했다. 그는 숲 속에 살면서 1년에 6주만 일하면 필요한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소로가 보기에 사람들은 그들처럼 불행하게 노동하는 이웃에게 비싼 옷과 큰 집을 뽐내기 위해 50주 이상 죽도록 일하면서 매 순간을 증오하며 산다. 열심히 일할수록 많은 빚을 지게 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 하다가 인생 전체를 소진해버리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은 조용한 절망의 삶을 살아간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마트의 등장으로 기존의 소규모 식료품 잡화점 가운데 3분의 1이 문을 닫았다. 경제위기로 인한 불경기는 소비를 위축시켰고, 좀 더 많은 소비자를 독점하기 위해 시작된 가격파괴 바람은 자본력이 약한 중소상인들을 몰락시켰다.


대기업이 수많은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옹호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일자리를 잠식한다. 대기업은 강력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소규모 경쟁사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제조업체들에게 잔인한 원가절감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따르지 않는 납품업체는 시장에서 퇴출될 각오를 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은 해외 노동력에서 매장 내부 노동력에 이르기까지 최저 가격을 요구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다. 오늘날 기업을 지탱하는 것은 반인권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병들거나 죽어가는, 살아도 평생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들의 피땀과 눈물이다.


대형 마트는 한 곳에서 모든 물건을 구입하는 원스톱 쇼핑을 추구하는데, 이곳에서 파는 문화 상품은 판매기획자의 사전검열을 거친 것이다. 소비자는 자유주의 시장 경제 속에서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기껏해야 캠벨수프 통조림 더비에서 다른 통조림을 고르는 자유 정도를 누릴 뿐이다.


흔히 기업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단지 비즈니스를 할 뿐이라 생각하지만, 거대 유통업체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현실에서 기업 권력이 새로운 빅브라더로 작동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시민의 민주주의가 대기업에 장악된 시장에 의해 통제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너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보라.
그리하면 찾으리라.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천의 지역을,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하면
마음속 우주학의 대가가 되리니.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우리는 이 매트릭스 안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이런 태생적 비관 속에서도 작은 일탈을 꿈꿔본다면, 바로 소로가 경험한 숲생활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는 나는 숲생활을 꿈꾼다. 풀내음 나는 숲 속 천장 낮은 집 마루턱에 걸쳐 앉아 달라지는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더 간소하고 단순하게.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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