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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타 Feb 15. 2021

야상곡

스피커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그곳에서 펼쳐지는 세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소리를
맨손으로 퍼 올리고 거기에서 내 나름대로의
음악적 정경을 마음 가는 대로 묘사해 갈 수 있다.
말하자면 융통무애(사고나 행동이 자유롭고
활달함)한 세계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흐린 오후입니다. 비가 내리는군요.

어두운 방에서 웅크리고 낮잠이나 자고 싶은 날입니다.

스피커에서는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이 흐릅니다.


쇼팽은 오후 낮잠을 즐기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쇼팽은 누운 채 천장의 아라베스크 벽지를

흐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도도도도도.......

잠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양떼를 몰고 쏟아집니다.

쇼팽은 눈을 감습니다.

하얀 솜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그녀를 생각합니다.

쇼팽은 나즈막한 소리로 콧노래를 부릅니다.

그녀를 생각합니다.

쇼팽의 입가에 구름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번집니다.

쇼팽은 잠이 듭니다. 쇼팽의 잠 속에 내리는 비.

얼마나 잤을까요. 쇼팽이 잠에서 깼을 때,

창밖은 어두웠습니다.

부엉이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비가 그쳤나 봅니다.

지붕에 맺혀있던 빗방울이 조용히 떨어집니다.

도옥도옥...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쇼팽은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피아노의 보대 위에 어른거리는 그녀의 미소만이

쇼팽의 손을 이끌어 주는 악보가 될 수 있습니다.

쇼팽은 잠 속에 비가 내리듯이 평온하고도

부드러운 선율을 피아노의 건반에 실어놓았습니다.

부드럽지만 애잔한 피아노의 화음이...

천천히 비 그친 저녁 들판으로 퍼져 갑니다.

부엉이도 우는 소리를 그치고...

그 애잔한 선율에 눈을 껌벅입니다.

쇼팽의 감정은 조금씩 격해집니다.

쇼팽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쇼팽은 뭔가 가슴을 비워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쇼팽은 운명처럼 다가온 그녀를 떠올리며

야상곡을 칩니다.

그녀의 잔잔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쇼팽은 식은 커피를 마십니다.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이제 일어나야겠습니다.

야상곡이 끝났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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