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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꽃 Jan 11. 2023

행복하지 않은 선생님은 좋은 스승이 될 수 없음을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일까?

인성이 훌륭한 선생님일까, 점수가 오르도록 잘 가르치는 선생님일까.

아마 모든 선생님들의 고질적인 고민일 것 같다.


나는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후자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지독한 고3병을 앓은 사람으로서 좋은 선생님이 되려는 욕심을 부렸다. 학원을 차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룹 수업이 아닌 일대일 수업을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무도 다른 아이들을 동급생이라는 공통분모 하나에 묶을 수 없었고, 송아지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민 상담하는 아이의 곁에 좀 더 오래 머물러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꾹 다물게 되었다. 글쎄, 언제부터였을까. 학부모에게서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원망의 문자를 받게 된 후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일 직후에는 상처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입을 꾹 다물게 된 건 그런 말들을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봐도 소화해 낼 수 없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수업 시간 사담을 중단하고 수업 방식을 더 체계적으로 바꾸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던 최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답지를 빼앗고, 그래도 인터넷에서 답지를 찾아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프린트를 내주고, 그래도 문제집을 알아내 베껴오면 선생님 앞에서 문제를 풀게 시키고. 소리 없는 기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어딘가에서는 체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우리 민지, 그만두려고요.

아이가 많이 아파요.

마음이 아프대요.

학원 다 중단하고 심리치료받으려고요.

학교도 쉬어요.

저희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학생이 그만둔다는 전화는 예사로운 일이라, 선생인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 웃음을 띠고 있었는데 아이는 괜찮지 않은 거였다. 어쩌면 아이는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뻐하는 아이들은 배려도 잘하고 타인의 입장도 잘 고려해서, 여린 마음에 상처 날 일이 많다. 최근 몇 개월간 고민을 들어주지 못한 것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라줘서 선생님이 너무 미안해. 짧은 끝인사를 나누었지만 기댈 어른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속의 나사가 헐거워졌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학생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득 찬 물 잔에서 흘러넘친 만큼만 베풀으라는 말이 있듯 선생님이 가득 채워져야 무엇이든 나눠줄 수 있었을 텐데, 나부터가 수업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고 그 앙상하게 서있는 가지 마저도 학생의 말, 학부모의 말로 생채기가 가득했다.


말라가는 샘 속에서 아무리 자식을 위한 들

행복하지 않은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

부모와 선생은 그렇게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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