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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 Nov 16. 2020

S# 19 바다의 보리, 톳

- 오독오독 씹는 맛으로 먹는

길이는 8~9자 정도다. 한 뿌리에 한 줄기가 난다. 줄기의 크기는 새끼줄 같으며, 잎은 금은화(金銀花)의 꽃망울을 닮아 가운데가 가늘고 끝이 두툼한데, 그 끝은 날카롭고 속이 비어 있다. 번식하는 지대는 지종과 같은 층이다. 맛은 담담하고 산뜻하여 삶아먹으면 좋다. 
-『자산어보玆山魚譜』정약전 1814년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와 같이 바다에서도 물결따라 바닷말이 흔들린다. 검붉은 것들은 김이나 우뭇가사리, 초록은 청각 또는 파래며, 갈빛이 섞인 진한 초록빛 바닷말은 김 또는 다시마다. 제주 바다에선 김과 다시마 보다 톳이 친숙하다. 바다 안에서 보면 진한 녹색이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짙은 갈색인 톳. 마를수록 검은 빛이 더하고 물에 살짝 데치면 초록으로 돌아온다. 그런 톳들이 봄마다 제주엔 지천이다.



자산어보나 동의보감도 톳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도 톳이 먹을거리였다. 요즘은 '바다의 불노초'니 성인병을 예방하는 건강식이니 호들감을 떤다. 그래봐야 톳은 곡식이 귀할 때 허기를 메우는 흔한 바닷풀에 불과했다. 글 줄이나 읽은 선비들은 사슴꼬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녹미채鹿尾菜' 또는 '토의채土衣菜'라 한다. 제주에선 그저 '톨' 전라도에선 '따시래기', 경상도에선 '톳나물'이다. 톳이 맛이 있거나 귀하다면 전복이나 귤 마냥 임금에 진상하느라 제주민들의 뼛골이 휘어졌을 터다.



요즘은 완도 등 전라남도 해안에 톳이 지천이다. 톳을 양식해 대량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톳의 고향은 제주도다. 1980년대 이후 제주에서 톳 모종을 채취해 배양, 양식에 성공한 것들이 전라도 산이다.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먹어본 사람들은 양식과 자연산은 식감이 매우 다르다 한다. 육지에서 먹는 톳은 대부분 제주 바다에 난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이다. 



제주에 살면 톳 무침이니 톳냉국 쯤은 식당에서 흔히 먹을 수 있다. 톳을 넣어 밥을 지은 '톨밥'도 있지만 요샌 흔치 않다. 씹는 식감 외에 솔직히 별 맛은 없다. 맛이 '담담하다'고 한 정약전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육지의 보리 노릇은 제주에선 톳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뭔가 맹숭맹숭한 맛도 그렇고 자라는 철 또한 그러하다. 무엇보다 춘궁기에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보리와 그 운명이 겹친다. 탐탁찮은 대용인데다 주류에서 벗어난 변방 것들이다.  



봄마다 제주바다에는 톳을 가득 실은 배들이 흘수선을 위태롭게 넘나들며 항구로 돌아온다. 배를 가득 채운 톳톳은 대개 자루째 일본으로 수출한다. 일본인들이 톳이라면 죽고 못 사는 모양이다. 서귀포 바다도 예전엔 매한가지였다. 이른 봄 조간대 암반에 자생하는 톳을 마을 공동으로 채취해 말려두었다 곡식이 부족할 때 밥에 넣어 먹었다. 그러던 톳이 빛을 본건 일제 강점기다. 제주산 톳은 일본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식품이었다. 서귀포산 톳들은 말리는 족족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 후에도 일본 수출은 줄곧 이어져 지금에 이른다. 일본인들이 서귀포산 톳을 좋아하는 까닭은 일본산 보다 맛과 품질이 더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귀포 시내에서 양복점 후쿠야福屋상회를 운영했던 강임룡康任龍의 조카 강우정(86)은 일본인들이 천지연 하류 현재 매표소 인근에서 톳을 말리고 쪄서 가공하는 일을 했다고 기억한다. 제주녹미채제조판내조합은 한림항, 모슬포, 성산포, 김령에 각각 이름이 다른 공장이있고 서귀포에는 이윤희 공장, 다구치기이치로田口加一郞공장, 광전뢰廣傳賴공장 등 세 곳이 있었다. 조합대표는 소화운송주식회사 취체역이기도 한 이윤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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