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 때로는 시야를 가로막고,
환자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관계 맺는 능력을 제한 할 수 있다
라고 말한, 미국의 정신의학자 어빈얄롬(Irvin Yalom)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ㅡ 어빈 얄롬, <치료의 선물>
내가 상담을 의뢰받는 많은 경우,
종종 그들 자신 또는 소개하는 타인의 입을 통해 예상되는 진단명을 듣곤 한다.
"분명 조현병 같아요. 지적장애가 있어요. 성인 ADHD, 소시오패스예요..."
"아... 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토록 자신의 진단을 확신하게 되었을까?
DSM의 진단 기준을 상세하게 들쳐보더라도 내담자에 따라서 그 발현 양상이 다 다르다.
그래서 전문가도 심층 면담을 통해 켜켜이 쌓여있는 내면의 현상들을 감별하여 묻고, 듣는다.
그러니까 진단을 내리기 전에 여러 번의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친다.
물론, 임상가나 상담자의 관점에 따라 진단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진단이 자기 충족적 예언으로 왜곡되는 오류가 발생하거나,
진단에 부합하는 특정 정보에만 선택적 주의를 기울이는 과오를 범하는 것은,
내담자 상담자 모두에게 매우 치명적이 된다는 사실에는 의심이 없다.
일상에서 우리가 만약 누군가로부터
"내가 널 아는데.../ 너는 이런 사람이잖아..."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불쾌하고 그렇게 말한 상대방이 무례하다고 느낄 것인가......
하물며 심리치료의 전문가의 영역이라면
더 보수적으로,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가 어느 정도의 자기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자기 불일치, 모순, 불행 앞의 무력감, 실패 앞의 좌절감, 감정 기복과 불안, 고독과 고통감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실존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고,
실존의 한계를 피하거나 없다고 부인하는 것보다 용기 있는 직면이다.
또한 바로 이 지점이
상담자로서 내담자를 만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비유처럼,
상담자와 내담자는 '여행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편견 없이,
가깝고 좋은 관계를 맺으며,
인생의 여정을 함께
모험한다.